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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mantic Eagle Mar 27. 2024

사랑이 '무료'일 때의 부작용

모르는 것은 이미 알 수 없는 것이 인생이라면



상대가


한번도 상처받아 본 적

없는 

눈으로 

나를 보고 있으면



몸둘 바를 모르겠다. 





내가 그 첫 상처가

되고 싶지 않지만

그럴 수도 있을까봐 






그리고 그 상처받은 적 없는 눈이

나를 원망하는 눈으로 

바라볼 때, 



그 때는

내가 나를 보호해야 함을

안다. 




내가 그 대상에게 

첫 상처를 남기더라도, 




더이상 잃을 수 없는 

'자신'이 있다. 





그리하여 

그 상대에게도 

'첫 상처'의 여정이 

시작된다. 




나 또한 영원히 지킬 수 

없었기에,




나 또한

나에게 불가피하게

첫 상처를 겪게 한 대상이

있었기에,





어쩌면







인생은




불가피한 상처의 기억을

'입고'





살아가면서

그 상처를 '치유' 하는 운명을

타고난 건 아닌지.



그렇게 

자신의 길을 

밟고 찾아가면서



기쁘고, 

화나고,

애정하고,

즐거움 또한




경험하게 되는 





개인이 자신만의 

'지역 사회'를 만들어가는 

여정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사랑한다는 명목으로 

하나 둘 주기 시작하면

끝도 없다는 것을 

벼랑의 바로 앞에 서서 

깨닫게 된다. 





목숨을 줘도 

결국 진정으로 고마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면





마지막 한 걸음으로 

내 생을 끝내고 싶은 것은





'그렇게 돌보지 않은 자신'이

화가 나서

내리는 결정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어쩌면





다른 사람을 결과적으로 

통제하는 것은

자신이 자신을 통제하는 

방식이었고, 





처음부터 많은 것을 

내어줄수록 






상대방은 '나'로 인해

무조건적 '자원'을 

'무료'로 경험하는 방식으로 





내면의 '악함' 또한

빨리 경험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 또한 어찌 


다 해주는 것의 

결과를 직접 목격하기

전에 알았겠냐마는,





그렇게 되고 있는 상황을

보자 보자 하니까,

이건





서로가 

삶을 꽤 오해하고 사는

길이었다. 







끝없는 요구, 

들어주지 않는 요구에 따라오는 

짜증과 증오, 

결국 들어주게 되면

'기쁘지 않는 희열'을 

선사하는 방식으로 





내일은 또 내일의

'약탈'이 시작되었다. 





물질적이든,

감정적인 방식으로든, 







어쩌면

이제와서 하는 생각이지만





모든 것을 쉽게

받는다는 것으로 

무조건적

로맨틱한 사랑을 경험하지만,





결국




한 사람과의 관계로 

이어지는 것이 인생이 아니기에





결과적으로 

집 밖으로 나가야 하면서

겪게 되는 온갖

혼돈과 무시와 

부정의에 대한 

연습을 하기 위해서는






계획적 통제가

어느 정도는 필요한 지도 모르는 방식으로 







내 어찌

그때 알았을까 






내 어찌 

그 때 그것을 알 수 있었을까 싶다.







그랬다고 하더라도

지금 

여기 이상으로도 

이하로도 존재하고 있지

않을 것임은 분명했다. 








모르는 것을 

알 수 없었던 것이

인생이고, 






그리하여 알게 되는 

일련의 것들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해는 하지만







실제의 삶으로 

도입해서 사는 것이

조금 어렵다는 것도

이해한다. 







실패만 하는 것 같지만

그 안에서 분명

매일 매일의 '진화'는 

일어나고 있었으며

육체적 '퇴화'도 분명

일어나는 중이었다. 







어쩌면

이미 벌어진 상황을 

기분 좋게 이해해주고, 







오늘 소심하게 

얼굴을 내미는

햇빛과 멋쩍은 조우를 하고, 







가야하는 곳에 가서

사람들을 만나고 

무시도 적당히 당하고, 

알아봄도 적당히 당하고, 

웃을 일도 조금 만들고, 

다이소나 씨유나 들렀다가

집에 오는 것으로 








적당히 

타협하며

즐겁게 사는 것이







현재 이후로 살면서

최고로 '현명하게' 

사는 방법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여기에서 '현명하다'는 의미는



필요 이상으로 자신을

괴롭히지 않는 것을 

의미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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