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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mantic Eagle Mar 21. 2019

“유튜브 광고”와 타협할 수 있을까

-to pay or Not to pay

Creator와 User의 차이점은

Creator에게

서비스 제공 선택권이 있다는 것이다.


유튜브를 이용하는 입장에서

몇 일 단위로 바뀌는 광고 제품들,

TV에서도 자주 보이는 얼굴들의 등장,

skip하지 않으면 멈출 “이유”가 없는

거의 10 분에 가까운

뻔뻔한 재생시간에

ad Free를 “차라리” 사도록

노골적으로 유도하는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마치 내가 말없이 가만히 있으면

끝까지 할 말 다 하고 보는

몇몇의 잔소리꾼들을 떠올리게 했다.


물론 ad free를  살 수도 있지만

사지 않을 입장에서 조금 더 머물면서

이 상황에서

마치 피해자의 신분인 것 같은 기분의

정체를 알고 싶었다.


유튜브에서 봐야 할 영상은

“있게 되어 버렸는데”,

즉, 일상에서 중요한 “목소리”들이

생겼는데, 그를 보려면 감당해야 하는

내 목적 기준에서는 “잡음”들이

오히려 더 많아진 상황에서


나의

인내에 의지하기에는 한계가 있었고,

광고 영상이 자기 할 말을 다 할 때까지

듣고 있기에는

That was so Unfair!



그러나 불공평할 이유도 없는 건,

“안 보면 되는 거 아닌가?”


이미 사랑하게 된 사람의

본(born) 모습을 알게 되어도

갑자기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경우에 처한 것과 비슷한지도 몰랐다.


내 노트북,

자동 결제 완료된 Spotify,

Melon music, Youtube, Netfix etc.

비로소 자신의 킹덤이 완성되면

Ad Attack 이 상대적으로 적은 “세상”에

살게 되겠지.



그러나

TV와 Online을 떠나

산다고 해도

버스 안에서는 정거장마다

성형외과 광고를 재생하고,

엘리베이터 안에는 배달하던 사람들이

붙여놓은 치킨, 피자, 짜장면 메뉴들이

나의 시선을 이미 잡고 있다.


광고와 타협점은 없다.


내가 광고할 나의

상품이 있고,

유효 수요가 있는 채널이 있고,

내가 지켜야 할 나의 목적과 이유가 있는

모든 상품, 신념은

광고를 통해서나

타인에게 ”그나마”

전달될 테니까,


자신의 이름을 걸고

사는 사람들이 넘쳐나는

이 상황에서 TV나 Youtube는

자기를 알리기 아주

최적화된 플랫폼일 것이다.


광고를 더 하지 못해서 아쉬운,

광고 시간을 더 늘릴 수 없기에 아쉬운

사람들이 더 많은 세상이다.


어쩌면 Youtube나 공용채널이

User를 배려하길 바란다는 것이

더 기막힌 발상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넘치는 광고는

광고주들의 전쟁이었지,

나라는 개체는 이미 타협 대상이 아니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Skip ad는 참으로

« annoying »이라는 단어를

이해하기 가장 적합한 예시이다.



Isn’t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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