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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민 Dec 28. 2016

토끼와 용왕님

사랑의 임계점은 어디까지일까.




이모는 누구에게나 반가운 사람이었다. 친척들이 모일 때마다 옛 이야기를 유쾌하게 풀어놓곤 했다. 이모는 부모의 사랑을 이길 자식은 없다며 할머니의 희생을 치켜세웠고, 그러면 할머니는 “됐다, 고마 해라.” 언성을 높였다. 동그랗게 모여 앉은 친척들은 이모의 너스레에 깔깔 웃었다. 말을 얼마나 재밌게 하는지 다들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이모는 언제나, 딸이 없어서 그게 아쉽다는 이야기로 끝을 맺었다. 이모에겐 아들만 둘 있었다. 그들은 소위 무뚝뚝한 경상도 보리 문디들이었다. 그중에서도 첫째 아들, 나에게는 사촌오빠인 박요한은 어렸을 때부터 유난스럽게 고집이 셌다.


“요한아, 옆집 아처럼 엄마한테 사근사근하면 안 되겠나.” 이모는 종종 오빠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러면 오빠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엄마는 가 엄마만큼 우리 얘기 잘 들어주나.” 하며 반박했다. 최근에야 무뚝뚝한 남자들을 위해 츤데레라는 말이 나왔지만, 나에게 오빠는 그저 자기 엄마에게 무뚝뚝한 문디 자식이었다. 착하기는 한데 어딘가 묻은 무뚝뚝함은 씻어낼 수 없는 문디 자식. 그런 오빠에게도 순정이라는 것이 있었다. 오빠가 대학에 갓 입학했을 때. 그러니까 스물, 고작 스무 살 때였다.




이모는 간암을 앓았다. 간암은 쉽게 재발했고 그때마다 고주파 열치료술을 받았다. 몸에 작은 바늘을 꽂아 종양을 태우는 힘겨운 치료였다. 다섯 번째 치료를 받던 날, 결국 이모는 주치의와 의논 후 간이식을 결정했다. 주치의가 제안한 방법은 이모의 간을 완전히 떼어내고 기증자의 간 일부를 이식하는 어려운 수술이었다. 그래서 무엇보다 기증자의 건강이 중요했다. 기증자는 젊으면 젊을수록, 건강하면 건강할수록 좋다고 했다. 농담 삼아 말하길 의사들이 가장 좋아하는 간이 젊고 싱싱한 간이라나. 하여튼 농담 한 번 무서웠다.


이모네 젊고 싱싱한 간은 요한 오빠였다. 오빠에게 간이식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는 이모부의 모습이 꼭 별주부전의 거북이 같았다. 용왕님을 살리기 위해 토끼의 간을 가져가야 하는데 하필이면 그 토끼가 아들이라니. 토끼와 거북이는 햇볕이 따뜻하게 들어오는 거실에서 만났고, 거북이는 어렵게 토끼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아빠, 그건 당연한 거다.” 가녀린 토끼의 첫 대답이었다. 배를 갈라 자신의 간 절반 이상을 떼어줘야 하는 대수술을 앞에 두고 당연하다니. 토끼에겐 망설임이 없어 보였다. 생각지도 못한 반응에 오히려 당황한 거북이가 더듬거리며 그 이유를 물었다. 그러자 토끼는 말했다. “내가 엄마 아들이잖아. 그건 당연한 거다.”




이식을 결정하고 동의서를 쓰는 토끼에게, 의사 선생님은 전신마취를 할 거라는 이야기와 혹시 모를 상황들을 설명해 주었다. 잔뜩 겁을 먹은 토끼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전신마취와 관련된 영상이며 자료를 다 찾아보았다. 그러다가 우연히 전신마취의 부작용에 관한 영상을 보게 되었다. 토끼는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 의사 선생님에게 달려갔다. 의사 선생님은 기증자가 위험하면 수술을 중단할 거라 몇 번이고 설명했지만, 눈으로 직접 부작용 영상을 확인한 토끼의 입장은 달랐다. 덮쳐오는 두려움이 토끼의 밤을 더 깜깜하게 했다. ‘만에 하나라도 잘못되면 죽을 수도 있겠구나. 이 밤의 온도를 더 이상 느끼지 못하겠구나.’ 그날 밤 토끼의 두려움은 누구와도 공유할 수 없는 것이었다. 고작 스물이었다.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토끼의 눈동자가 파르르 떨렸다.


그럼에도 토끼는 아무도 몰래 최고의 간을 만들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그렇게 싫어하던 운동을 하고, 튀기거나 몸에 좋지 않은 음식은 아예 입에 대지도 않았다. 의사 선생님이 토끼에게 요구한 젊고 싱싱한 간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하고 싶은 것도 먹고 싶은 것도 많았던 스물. 토끼는 한 번뿐인 청춘의 시간을 ‘용왕님께 바칠 싱싱한 간’을 만드는 데 들였다.




기나긴 수술이 끝나고 용왕님이 힘겹게 눈을 떴다. 그러나 토끼는 쉽게 눈을 뜨지 못했다. 원래 토끼는 간을 60%만 떼어 주기로 했었지만, 간이 생각보다 작아 70%나 떼어줘야 했고, 예정보다 많은 양을 떼어낸 게 토끼에게 무리를 주었다. 여덟 시간이 넘게 토끼는 침대에 누워 쌕쌕거리며 숨만 쉬었다. 토끼가 눈을 뜨지 못하는 내내 용왕님과 거북이는 수술 전보다 더 애를 태웠다. ‘혹시’라는 단어가 머릿속을 가득 채울 무렵 토끼가 눈을 떴다. 다행히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용왕님도 토끼도 모두 무사했다.


그런데 큰일을 겪고 나서도 오빠는 여전하다. 예전보다는 낫지만 여전히 사근사근한 아들은 아니다. 달라진 것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무시무시한 농담의 수위였다. 간을 내주면 사주기로 했던 최신형 노트북을 왜 안 사주냐느니, 내 간 다시 가져갈지도 모르니 문 잘 걸어 놓고 자라느니. 그런데 이상하다. 무뚝뚝한 말 속에 애정이 흐른다. 이모가 소파에 누워 있으면 엄마 간은 엄마꺼 아니고 내꺼니 잘 돌보라거나, 엄마는 덤으로 사는 인생임을 잊으면 안 된다거나. 그러고는 꼭 한마디를 덧붙인다. “엄마, 엄마는 이제 내 딸이다. 그러니까 앞으로는 내한테 잘해라.” 츤데레도 이런 츤데레가 없다.


수술 후 오빠는 아직도 수영장과 목욕탕을 못 간다. 몸에 적나라하게 새겨진 상처 때문이었다. 한참이 지난 후에야 이모는 말했다. 그때는 오빠 마음을 다 몰랐다고, 삶의 기로에 서 보니 귀신에 홀린 것 같았다고. 살아가면서 오빠 마음이 서서히 보인다 했다. 고작 스물의 아들내미가 어떤 결정을 했었는지 나중에야 알았다고. 예전처럼 다시 생사의 기로에 선다 해도 아들 몸엔 절대 칼을 대지 못할 거라고.




수술 전날, 병원 침대에 오른 오빠에게 고마우면서도 미안했던 이모는 지금이라도 두려우면 꼭 수술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했다. 이모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오빠는 또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생각지도 못한 말을 내어 놓았다. “엄마, 내 사실 지금 떨린다. 근데 내가 엄마한테 간 떼 주는 건 당연한 거다. 걱정되는 건 다른 게 아니고, 은강이. 엄마 닮은 내 동생 은강이. 가 나중에 안 좋아지면 간 떼 줄 사람 없는데, 나는 지금 그게 걱정이다.”


당연한 사랑이란 것이 존재하기는 할까. 내가 당신으로부터 와서, 그저 당신이 나를 낳은 엄마라서. 그 이유만으로 사랑은 당연한 것이 될 수 있을까. 언제나 나에게는 철없게만 보이던 요한 오빠의 이야기를 들으며, 궁금해졌다.


사랑의 임계점은 어디까지일까.









글│ 청민  淸旻

사진│청민  淸旻





덧붙이는 청민의 말 │일상 수필, 그  열다섯 번째


사랑의 임계점은 어디일까요.

오빠 이야기를 들으며 가장 먼저 떠올렸던 질문입니다.


당연한 사랑이라는 것이 과연 있기는 할까,

내가 바라지도 요청하지도 않았는데 온 사랑이 있기는 할까.


2016년이 벌써 마지막을 향해 달려가고 있어요.

올 한 해 여러분은 어떤 사랑을 하고, 받으면서 사셨는지 조금 궁금해집니다.

저는 요즘 이상한 날들을 보내고 있어요.

근처 서점에 몰래몰래 가서 새로 나온 제 책을, 딸 유치원 재롱잔치 구경 가는 마음으로 구경하고 있지요.

재롱잔치 비디오를 찍으시는 부모님 마음을 아주 조금 알 것 같달까요..


제가 이렇게 빼꼼 빼꼼 서점을 돌아다닐 수도 있게 된 것은,

<사랑은 수많은 이름으로 불어온다>는 두 번째 책 제목처럼,

올 한 해 제게 불어온 가족, 친구, 소중한 이들의 사랑 덕분인 것 같아

주책 맞게 눈물이 글썽 돌기도 합니다.


올 한 해도 이제 3일밖에 남지 않았네요.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마지막 목요일, 금요일, 토요일...


여전히 한계 없이 사랑하고

끝없이 사랑받으며 행복하시기를 응원합니다. :)


따듯한 연말 되셔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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