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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민 Sep 22. 2019

스물일곱, 취준생의 자화상

언젠가 나도 취업을 하겠지.

#청민의플레이리스트
나상현씨 밴드의 '각자의 밤'과 함께 읽어주세요. '각자의 밤이 찾아오면 이 도시에 모인 우린 모두 외로운 걸까. 그래 우린 전부 슬픈 거야. 익숙하게 봤던 얼굴들에 다른 표정이 보여. 외로운 시간이 찾아오면 나는 울적해져 가.' 각자의 밤을 보내는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노래입니다 :)







나이와 성장은 비례하지 않는 것 같다. 그게 아니라면 지금의 나는 적어도 스물일곱 해만큼의 어른이 되어 있어야 하는데, 여전히 청소년기도 벗어나지 못한 아이 같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하던 스물일곱은 이런 게 아니었다. 이 나이쯤 되면 정기적으로 꼬박꼬박 들어오는 월급을 받고, 목에 사원증을 걸고 점심시간에 테이크아웃 커피를 마시며 회사 근처를 산책할 줄 알았다. 그러니까 나의 노력에 보람이 바로바로 보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가장 친한 친구가 취업을 했다. 이력서를 밤낮으로 썼던 결과다. 경쟁력 있는 중소기업에 입사했다. 그는 새벽에 출근해 밤이 되어야 집에 도착했다. 예전만큼 연락을 자주 하진 못했지만, 그래도 우리는 꽤 자주 시간을 내어 안부를 물었다. 우리의 대화는 그가 학생이었을 때와 완전히 달라졌다. 일을 지칭하는 용어도 달라졌고, 대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호칭도 달라졌다. ‘부장님이, 과장님이’하는 주어는 회사를 다녀보지 않은 내게 생소하게 다가왔고, 그가 설명해주는 일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는 최선을 다해 이해하도록 노력했다. 호칭이 주는 힘 때문일까, 아님 내가 알지 못하는 세계이기 때문일까. 문득문득 알 수 없는 감정이 무기력하게 가슴 한 곳에 자리 잡았다.


부러웠다. 이제부터 자기가 일한 만큼 돈을 벌 수 있게 된 그가 부러웠다. 그에겐 이제 직함이 새겨진 회사 명함이 생기고, 매달 꼬박꼬박 월급을 받을 뿐만 아니라 이제 곧 자동차도 생긴다니까.. 마치 그가 거대한 사회의 일원이 된 것만 같고, 나와는 조금 다른 엄청난 어른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야근이 많다고 했지만, 어쨌건 그는 그 야근의 보상으로 돈이라는 것을 받을 것이고, 나와는 다르게 매달 통장에 힘듦의 대가가 꼬박꼬박 찍힐 테니까. 나는 그런 이유들로 그가 돈을 번다는 것이 부러웠다.



나도 돈을 벌긴 번다. 생활비를 충당하기 위해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나머지 시간엔 책에 실을 원고와 연재할 원고를 쓴다. 부지런히 생각하고 부지런히 아르바이트를 간다. 다른 시간엔 가끔 이력서를 쓴다. 내 일상도 꽤 바쁘게 돌아가는데, 무언가 뚜렷한 결과가 없다. 많은 시간을 들이고 자주 밤을 새워서 원고를 쓴다만, 막상 내가 쓴 초고를 보면 헛웃음이 나다 못해, 겨우 이 정도인가 싶어 울고만 싶다. 그런 게 연재라는 이름으로 소개가 되는 날에는, 견딜 수 없는 부끄러움에 휩싸여 베개에 얼굴을 묻고 울곤 한다. 돈도 없고, 결과도 없으면서 꿈이란 허황만 좇는 것 같은 내 모습이 부끄럽고 또 부끄러워서.


보잘것없는 하루하루지만 지금처럼 버티다 보면, 십 년 후쯤은 희미하지만 무언가 되어있을 거라 믿으면서도, 당장 보이는 것이 없는 것은 나를 지치게 한다. 마감을 치르고 돌아서면 마감 시계는 다시 카운트다운을 시작하고, 나는 다시 새로운 소재를 생각하고 또 그렇게 일주일이 지나간다. 나이는 늘어나는 데 결과는 없는 것 같아 슬럼프를 겪고 있는 내게, 가장 친한 친구의 취업 소식은 나를 우울하게 만들었다. 사랑하는 사람의 첫 발자국을 샘내고 있는 나를 보며 나는 십 년 전 오늘보다 얼마나 더 성장했을까 그리고  나이를 먹는 것과 인생의 성장이 함께 간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한다. 그가 걷는 길과 나의 길은 다를 뿐인데, 내가 틀린 것이 아닌데. 부러움과 동시에 뭔가 틀린 삶을 살고 있는 기분도 살짝 들곤 했다.




어느 날과 같은 저녁이었다. 우리는 평소처럼 전화를 했고, 그는 오늘 새롭게 배운 업무에 대해 설명해줬다. 이해할 수 없는 ‘결제 방식’에 대해 설명을 듣는데, 괜한 서러움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이해하는 척하는 내가 싫었고, 그를 부러워하면서 싫어하는 내가 싫었고, 그런 나를 싫어하는 내가 싫어서. 감정이 터져버린 나는 친구에게 기분을 쏟아내듯 말했다. 네가 부럽다고. 한 달의 결과가 돈이라는 수치로 확인되는 게 부럽고, 네가 나와는 달리 거대한 사회의 성실한 구성원이 된 것 같아 부럽고, 내 삶이 맞는 건지 모르겠다고. 그는 자격지심이 잔뜩 묻은 나의 말을 묵묵히 듣고선, 그저 내게 첫 마음을 다시 생각해보면 좋겠다고 했다. 모든 사람의 삶은 다 다르니까, 각자가 가진 무게가 다 다르니까. 내가 원하는 만큼 마음을 달래주지 않는 그가 야속했지만, 첫 마음이란 그의 말이 밤새 나를 맴돌았다.


나의 처음. 쓸 수 있다면 바랄 것이 없던 날들. 아무것도 없어도 좋으니까 글만 쓰고 살고 싶다고 했다. 딱 십 년만 온 마음을 다해 글을 쓰고 싶다고도 생각했다. 처음 출간 기회가 주어졌을 땐, 대구 시내의 어느 은행 앞에서 환호성을 질렀었지. 거리에서 사람들이 다 쳐다볼 정도로 방방 뛰면서, 홀로 깔깔 웃다가 엉엉 울면서 코미디 한 편을 찍었었지. 첫 책이 나오던 날도 떠오른다. 아르바이트 쉬는 시간 10분 안에 서점으로 뛰어가서 내 책을 사기도 했다. 좋아서, 너무 좋아서 이마에서 땀이 뚝뚝 떨어지는 것도 모를 정도였다. 그게 나의 처음이었다.



내게 삶이 이토록 어려운 이유를 알고 있다. 잘 해내고 싶어서. 잘 해내고 싶은데 잘 안되어서, 자꾸 나를 누군가와 비교해서, 그래서 내 삶을 자꾸 틀렸다고 생각해서. 처음을 떠올리니 오래도록 나를 짓누르던 감정들이 조금은 가벼워졌다. 마냥 좋아서, 그냥 좋아서 썼던 마음을 떠올리고, 좋아서 꿈꾸었던 내일을 떠올리니, 지금 느끼는 이 감정은 내게 이해받을 수 있는 감정이 되었다. 나는 틀린 삶을 살고 있는 게 아니라, 다른 삶을 살고 있을 뿐이었는데. 나는 잘못된 삶을 살고 있는 게 아니라, 꿈을 꾸는 삶을 살고 있을 뿐이었는데.


언젠가 나도 목에 사원 증을 매고 테이크아웃 커피를 마시며 산책을 할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가게를 차릴지도 모르며, 갑자기 외국으로 떠날지도 모를 일이다. 다만, 삶을 살아가면서 겪는 모든 과정을 나는 여정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내가 겪을 모든 인생은, 글을 쓰기 위한 여정일 거라고. 십 년 후에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든 간에, 이 모든 것은 쓰는 것을 위한 여정일 거라고. 여정-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좋아서, 그저 좋아서라는 마음을 다시 떠올려 본다. 당장 달라지는 것은 없겠지만 적어도 오늘 밤의 내 마음은 살짝 편안할 것만 같다.





2019년 9월 21일 청민의 말:


목에 사원증을 매고 테이크아웃 커피를 마시며 산책을 하는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취업 전엔 점심시간의 그들이 멋져 보였는데...

역시 막상 그 입장이 되어 보니, 너무 다른 게 보이더군요.


2년 전에 이런 생각을 했단 게 신기합니다.

삶이란 건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르니까요.

그땐 알았을까요. 제가 직장인이 되어 있을 줄은.


스물일곱의 제게 말해주고 싶네요. 조급하지 말라고.

어떻게든 기회는 생기고 삶은 이어진다고.

지금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 하라고.


2년 후에 저는 지금의 절 보면 무슨 생각을 할까요.

아마 스스로를 너무 낮추지 말라고, 아껴주라고 말할 것만 같습니다.

그리고 괜찮다고 할 것 같기도 하고요.


지금 있는 순간에서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토요일과 일요일 사이. 평안한 밤 되시기를 바라며.

감사합니다.





청민 Chung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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