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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민 Dec 07. 2019

아가미 없는 물고기

신입사원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이런 기분 느껴보지 않았을까

#청민의플레이리스트
'또 하루가 가고 내일은 또 오고. 이상하게 세상은 바삐 움직이고.' 한희정의 '내일'과 함께 들어주세요.






생각보다 일이

일이 되는 방식은 복잡했다.


사회는 생각보다 더 많은 순서를 거쳐 우리가 아는 그 얼굴이 되었다. 사람 손이 닿지 않은 일이란 없었고, 사람 손이 닿는 과정이란 수많은 아이디어가 필요한 회의와 다른 이를 설득시켜야 하는 협의를 통해 이뤄진다는 사실을 나는 첫 회사에서 열심히 배우고 있다.



저자와 담당자들이 모여 표지 시안에 관한 얘기를 나누는 자리였다. 내부에서 생각하는 방향과 저자의 간극을 맞추고, 더 좋은 책을 만들기 위해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는 자리였다. 회의의 목적은 단순했고, '더 좋은 책을 만들기 위한 시간'이라는 틀 안에서 대다수가 동의하는 최선의 결론을 도출하면 되는 회의였다. 가벼운 안부를 주고받는 서론의 분위기는 화기애애했으나, 자신의 의견을 제안하고 설득하는 부분에선 모두 열정적인 모습이었다. 


옆에 앉은 마케팅 실 사원은 조목조목 자기 의견을 잘 말했다. 설득력 있었다. 담당 편집자도, 디자이너도 조곤조곤 자신의 의견을 제시했다. 역시 설득력 있었고, 세심한 부분까지 관찰해야만 나올 수 있는 의견이라 좀 멋지기도 했다. 표지의 전체적인 톤은 B보다는 A 시안이 원고의 이미지와 더 잘 어울릴 것 같다거나, 제목 옆에 작게 들어간 일러스트 요소를 더 강조해야 서점 매대에서 눈에 더 띌 수도 있겠다는 뭐 그런 이야기들. 나는 그 일목 정연하게 정리된 의견들 사이에서 제대로 된 의견을 내지 못했다.


회의 테이블에 앉은 이 중 나를 제외하고 가장 낮은 연차는 3년. 이제 2달이 채 안된 신입사원에겐 여전히 낯선 상황이 그들에겐 매일 겪는 일이었다. 나는 어버버하고 그들은 청산유수 같은 게 어쩌면 당연한 건데, 새롭기만 한 환경은 자꾸 나를 눈치 보게 하고 당황하게 만들었다. 그냥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말하면 되는데, 내가 이렇게 말해도 되는 걸까, 어느 선에서 어느 선까지 의견을 내고 받아들여야 하는 건가, 홀로 긴장하며 머릿속에서 계산하기 바빴다. 나를 뺀 모두가 회의 테이블이란 바다에서 마음껏 헤엄치는 물고기 같았고, 나는 그들의 유연한 몸짓을 해변서 부러워만 하는 어떤 존재가 된 것 같았다.



이런 생각을 하는데, 회의실 문 밖에서 물이 스멀스멀 들어왔다. 갑자기 웬 물인가 싶었다. 물은 발목을 채우고 금방 무릎을 덮고 곧바로 내 머리까지 급하게 채웠다. 회의실은 금방 물로 가득 찼다. 마치 정말 바닷속처럼. 숨이 턱 막혀서 꿈뻑꿈뻑 옆에 앉은 동료를 쳐다보는데, 모두 아무렇지 않다. 나만 숨을 못 쉬어 얼굴이 붉었다 하얘졌다 다시 붉었다 했다. 그들은 평온하게 미리 챙겨 온 말들 꺼내어 자신만의 의견을 어필했다. 모두 아무 일 없듯 평온하게 자리를 지키는데, 나만 숨이 막혀 입만 뻐끔뻐끔거렸다.


아가미가 없는 물고기가 된 기분이었다.

아가미도 없는데 바다에 뛰어든 어느 멍청한 물고기가 된 것 같았다.


숨을 쉬지 못한다는 게 이런 걸까. 회의실에 있는 모두가 물속에서 숨도 쉬고 대화도 잘만 하는데, 나는 금방이라도 숨이 끊어질 것 같아 수면 위로 올라가 숨을 잔뜩 들이마시고, 서둘러 그들이 있는 물 바닥으로 다시 내려온다. 겨우 내려온 물속에서 또다시 아무 말도 못 하고 다시 수면 위로 홀로 오르락내리락하며 겨우 숨을 이어간다. 아무 말도 하지 못하면서 자꾸 헛배만 불렀다.


숨만 가득 찬 채로 회의가 끝났다. 회의실을 가득 채웠던 물은 ‘수고하셨습니다’라는 말과 동시에 욕조의 목욕물이 콸콸 빠지듯 탈출했다. 여전히 붉은 얼굴을 한 나를 뒤로 하고, 회의 테이블은 ‘그럼 작가님 말씀을 참고해 다시 방향을 잡아보겠습니다’하며 웃으며 능숙하게 마무리됐다. 회의의 목적이었던 최선의 결론이 나왔는데도, 폐에 물이 잔뜩 들어간 나는 이상한 감정만 안고 자리로 돌아왔다. 각자의 자리로 돌아간 다른 이들은 산뜻하고 뽀송뽀송했는데, 내 자리는 젖은 발자국뿐이었다. 하지만 회사의 그 누구도 나의 젖은 발자국을 보지 못했다.



새로운 환경에 던져진 나는 아가미 없이 바다에 뛰어든 물고기 같다. 분명 나름 의견을 정리한다고 밤새 원고를 다시 읽고 SNS를 뒤져가며 요즘 유행하는 것들을 알아보았지만, 결국 한 마디도 하지 못했다. 앞으론 스스로 선택하고 누군가를 설득해야 하는 일들이 더 많아질 텐데, 그와 동시에 담당 도서를 누구보다 정확히 파악하고 그에 걸맞은 시장 상황을 꿰고 있어야 할 텐데, 오늘의 나는 바보처럼 숨 쉬는 것조차 어색해 수면만 오르락내리락했다.


첫 회사. 처음이라 이해받을 수 있는 건 언제까지 일까. 앞으로 나는 잘할 수 있을까. 자리로 돌아와 스스로에게 몇 번이고 되물었다. 출판 마케터, 내가 감히 할 수나 있는 일일까. 아예 처음부터 이 일에 재능이란 없는 게 아닐까- 까지 생각은 이어졌고, 대답은 잘 모르겠다는 말로 끝났다. 신입사원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이런 기분을 느껴보지 않았을까 싶으면서도, 나를 뺀 모두가 유능해 보이고 그들의 선택은 다 옳아 보이기만 했다.


아가미 없는 물고기는 바다에 언제쯤 적응할 수 있을까. 환경에 걸맞게 진화하는 세상 모든 생명체들처럼 나에게도 아가미 같은 게 생길 수 있을까. 어쩌면 나는 물고기가 아니라 새가 아닐까, 새가 물고기인 줄 알고 잘못된 바다에 들어와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하면서도, 다시 자리에 앉아 방금 다녀온 바닷속 이야기를 정리한다. ‘표지 시안은 새로 잡기로 하고, 추후 공유 주신다고 하심’ 이 한 문장을 오늘의 업무일지에 적어 넣는다. 짧고 간단한 이 문장을 얻기 위해 나는 아주 긴 숨을 참았다.


바닷속에선 별 것 아닌 것이 아주 별 것이 되기도 한다. 누구도 내게 뭐라 하지 않았으나 홀로 수많은 기분을 느낀다. 이상한 패배감이 나를 휩쓸어도 다시 자리에 앉아 컴퓨터를 마주한다. 꿈뻑꿈뻑 어설프지만 숨을 쉰다. 시간이 지나면 내게도 아가미가 생길까, 여전히 스스로를 의심하며.







2019년 12월 7일 청민의 말:


시간이 성실히 흐르는 것처럼, 저도 성실히 성장했으면 좋겠습니다.

유연한 물고기들처럼, 저도 제 앞의 바다에서 썩 괜찮게 수영을 해보고 싶습니다.


그런 날이 빨리 오진 않더라도

언젠간 왔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기억이 당신에게도 있었나요?


토요일입니다. 남은 주말 꼭 평안하세요.

감사합니다.





* 함께 읽으면 좋은 글 │ 스물일곱, 취준생의 자화상 (https://brunch.co.kr/@romanticgrey/192 )




청민 Chung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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