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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민 Nov 09. 2019

언제나 단 한 사람의 말에서 시작됐지.

그러므로 나는 믿는다. 말로 사람을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있다고.

#청민의플레이리스트
9와 숫자들의 평정심을 함께 들어주세요. ‘아침에 기쁨을 보았어. 뭐가 그리 바쁜지 인사도 없이 스치고. 분노와 허탈함은 내가 너무 좋다며, 돌아오는 길 내내 떠날 줄을 몰라. 평정심. 찾아 헤맨 그이는 오늘도 못 봤어. 뒤섞인 감정의 정처를 나는 알지 못해.’ 울음을 한 주먹 입에 머금고 있는 것 같지만, 끝내 참으며 담담하게 부르는 것 같은 목소리. 밤에 들으면 어딘가 뜨거워지는 노래랍니다 :





더러운 사람.

얼굴도 모르는 이가 내게 더러운 사람이라고 했다. 또 다른 이는 내게 남을 흉보고 자기만 착한 척하는 웃긴 사람이라고도 했다. 잘못 읽었나 싶어 몇 번이나 창을 껐다가 켰다. 더러운 사람, 착한 척하는 웃긴 사람이라니. 말문이 턱 막혔다. 혹시나 싶어 카카오톡 메인에 노출되었던 예전 글도 들어가 다시 댓글을 확인했다. 동생에 대한 사랑을 담은 글이었는데, ‘군 복무 중인 동생 소환하는 여자네. (그 시간에) 책이라도 한 자 더 봐라’는 댓글만 덩그러니 남아있었다.

저 사람은 내 글을 읽기는 했을까. 혹 읽었다면 대체 어느 부분이 더럽게 느껴졌을까. 순간 포털 사이트 메인에 걸려있는 연예기사 주인공이 된 것 같았다. 고작 몇 개의 댓글에 마음이 바들바들 흔들리는데, 전 국민이 보는 포털 사이트에 매일 이름이 오르는 연예인들의 심장은 어떨까 싶었다. 침대에 누워 이미 읽은 댓글을 보고 또 보았다. 카카오톡 메인에 브런치에 연재한 글이 소개된 직후였다. 누적 조회수가 평소와 다르게 폭등하더니, 끊임없이 알람이 왔다. 처음엔 알람에 손이 떨렸는데, 계속 댓글을 보다 보니 차분해졌다. 내게 더럽다고 손가락질하는 댓글을 보며 조금 울적해졌을 뿐.



말이란 무엇일까.


하루에도 의미 없이 수십 번도 그냥 뱉는 말이지만, 어떤 말은 사람의 마음에 비수가 되어 단단히 꽂히기도 한다. 사람 마음에 박힌 말은 뱉을 때처럼 쉽게 빼낼 수 없다. 말 하나를 사람 마음에서 빼려면 어떤 말은 몇 년이, 또 어떤 말은 평생이 걸리기도 하니까.

나는 말로 사람을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있다고 믿는다. 말로서 죽어도 보았고 또 살아도 보았으니까. 그래서 오늘 아침 같은 날을 우연히 만나면 속이 메슥거린다. 지난날 겪었던 어떤 말들이 떠올라서. 다시 침대에 누웠다. 이불을 머리 꼭대기까지 덮고 몸을 아기처럼 둥글게 말았다.

언제나 단 한 사람의 말에서 시작됐지.


둘도 아니고 셋도 아닌, 단 한 사람의 말에서. 내가 근처 남자 고등학교 축제에 가서 학교 임원이라 거짓말을 하고, 남자애 오토바이를 얻어 타고 가는 걸 봤다는 단발머리 여자애의 말 하나로 나는 하루아침 학교에서 유명인사가 되었었지. 급식을 받으려고 줄을 서있을 뿐이었는데, 얼굴도 모르는 애가 와선 대뜸 ‘네가 걔야?’ 물을 정도였으니까. 당시 소문이 어느 정도였냐면, 대학에 와서 처음 만난 과동기가 내 소문을 알고 있을 정도였다. 걔는 이과 1반이고, 나는 문과 끝반이었는데.

스무 살에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 수업 전 화장실에 갔다가 교실로 들어가려는데, 한 동기 여자애가 내 얘기를 시작했다. ‘난 쟤처럼 모자 안 어울리는 애는 처음 봤어. 대체 왜 쓰고 다니는 거야? 늙어 보여.’ 스무 살, 3월이었다. 아직 이름도 다 모르는 동기 여자애들이 그녀의 말에 동의하듯 아주 큰 소리로 웃었고, 덕분에 나는 교실 문 밖에서 모자를 쓸지 말지 한참을 고민하기도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여자애는 꽤 오랫동안 내 욕을 하고 다녔다고 한다. 내가 모자가 잘 어울리지 않아서가 아니라, 자기가 친하고 싶었던 사람이 나랑 친했다는 이유로. 그 선배가 네 문자에 답장하지 않는 게 내 탓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몇 번의 소문을 겪으며 알게 되었다. 사람들은 자기가 믿고 싶은 것만 믿는다는 걸. 그리고 소문은 언제나 한 사람이 쉽게 뱉은 말에서 시작된다는 걸. 이불을 머리 끝까지 덮고 있으니, 마음고생했던 지난날이 떠올랐다. 소문이 거짓임을 한 사람 한 사람 붙잡고 해명해야 했던 지난날의 나도 떠올랐다. 그때도 마지막엔 지쳐서 지금처럼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워있었던 것 같은데. 나는 왜 예전과 똑같이 굴고 있는 걸까, 억울하게.

겨우 이불을 벗어나 식탁에 앉았다. 아침을 먹으며 이런 댓글이 있었노라 얘기했다. 얘기가 다 끝나지도 않았는데 엄마가 더 흥분했다. 어떻게 너를 그리 표현할 수 있느냐고, 어떻게 그런 말을 쉽게 할 수 있느냐고. 밥을 다 먹을 때까지도 엄마는 감정을 감추지 못했다. 놀란 탓에 차마 내지 못했던 감정을 나 대신 표현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게, 나를 잘 알지도 못하는 어떤 말에 함께 맞서 싸워줄 편이 있다는 게, 참 좋더라.

그러다 엄마는 말을 뚝 멈추고 말했다. 사랑한다고. 엄마가 너를 사랑하고, 엄마에게 너는 소중한 사람이라는 거, 넌 그것만 기억하면 돼. 조금은 뜬금없지만 따듯한 말 한마디. 짧지만 단단하고 뜨거운 엄마의 말 한마디에 우울했던 감정이 흩어졌다. 정말 그 말에 거짓말처럼 괜찮아져서, 고마워서 피식 웃음이 났다.

세상엔 이런 말도 있다. 상처 받은 마음을 치료하는 따듯한 말. 사랑한다는 말, 내가 너를 사랑한다는 것만 기억하면 된다는 말. 그러므로 나는 여전히 믿는다. 말로 사람을 죽일 수도, 살릴 수도 있다는 걸. 그러니 소망한다. 내가 오늘 뱉은 말이 누군가를 아프게 하지 않기를, 누군가의 마음에 가서 박히지 않기를, 적어도 내가 지난날의 나 같은 사람을 만들지 않기를. 다짐하고 또 다짐하며 소망하는 아침이었다.




2019년 11월 9일 토요일, 청민의 말


1년 전 있었던 이야기예요.

어쩌면 별 것 아닐 이야기인데, 그 날은 이상하게 별 것처럼 마음에 턱 걸렸던 날이었지요.


자주 뒤를 돌아봅니다.

오늘 나의 말은 어떤 모양을 가지고 있었는지, 누군가를 향해 사용하지는 않았는지 고민하고요.


새롭게 알게 되는 사람이 많아지고, 깊어지는 사람이 많아지는 요즘.

무엇이든 조심하는 어른이 되고 싶단 생각을 자주 합니다.


천천히 회사와 하고 있는 ‘일’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그래도 오늘은 토요일, 회사 생각 없이 편안하고 따듯한 주말 되셔요.


감사합니다 :)









청민 Chung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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