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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민 Nov 16. 2019

우리는 언젠가
서로의 곁을 떠나겠지.

그래서 눈을 감고 사랑하는 얼굴을 떠올리는 연습을 한다.

#청민의플레이리스트│권영찬 - 유년

잔잔한 멜로디와 함께, 사랑 받았던 어떤 시절의 기억을 꺼내 읽어주셔요. 축축한 겨울의 냄새를 맡으며.





때때로 눈을 감고 사랑하는 얼굴을 떠올리는 연습을 한다.


만약 신이 내게 중요한 무언가를 가르치시기 위해 최후의 방법을 사용하신다면, 내 눈을 앗아가지 않으실까 하는 두려움이  있다. 눈에 보이는 것으로만 판단하는 잘못, 시선으로 지은 잘못이 늘어날 때마다 어떤 두려움을 느끼곤 한다. 그럴 때면 눈을 감고 사랑하는 얼굴을 떠올리는 연습을 한다. 혹 눈이 멀더라도, 사랑하는 얼굴을 기억할 수 있게. 눈이 멀지 않더라도 언젠가 그들에게 닿을 수 없게 될 때, 그들을 충분히 기억하고 그리워할 수 있도록 말이다.


막상 눈을 감으면 사랑하는 얼굴이 쉽게 그려지지 않는다. 매일 보는 얼굴인데도 막상 눈을 감으면 낯선 사람들이 된다. 까만 배경 앞에 얼굴은 없고 생각만 가득하다. 그의 눈꼬리는 어떻게 생겼더라, 작고 귀여운 점이 볼에 있었나 눈썹 아래에 있었나. 사랑한다면서 이렇게까지 그를 몰랐나 싶어, 그와 얼굴을 마주했던 모든 시간이 아깝게 느껴지곤 한다. 그럴 땐 그가 가지고 있던 이미지나 특징 같은 걸 떠올려 본다.





얼굴 하나


엄마는 라일락 향이 좋다고 했다. 촌 동네서 자란 엄마에게 끝이 보이지 않는 외국의 라일락 밭은 얼마나 충격이었는지, 엄마는 여행을 다녀온 후엔 짬만 나면 라일락 사진을 돌려 보고, 라일락 얘기를 하고, 거리에서 라일락 비누 같은 것을 팔면 발걸음을 멈췄다.


스물다섯이 되던 해, 엄마는 내게 젊은 시절 엄마가 입고 다녔던 정장들을 물려줬다. 얼마나 깨끗하게 아껴 입었던지 옷들은 세월을 하나도 타지 않았다. 그중에서도 엄마가 마지막까지 손에 쥐었던 건, 연보라색으로 된 원피스 정장이었다. 엄마는 미색이 어울리는 사람이었지만, 연보라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나에게 엄마는 연한 보랏빛의 라일락. 보라색 재킷을 입는 날이면 젊은 날의 엄마가 떠오른다. 나이 오십이 훌쩍 넘어서야 자신이 라일락을 좋아한다는 걸 깨닫고 소녀처럼 웃은 엄마, 미색 가득한 옷들 구석에 연보라색 정장을 드라이해서 곱게 넣어 보관한 엄마.


라일락의 꽃말은 젊은 날의 추억. 엄마가 물려준 연보라색 원피스 정장을 입을 때마다 엄마가 가장 예뻤다던 서른여덟의 엄마를 떠올린다. 땡그란 얼굴에 땡그란 눈, 단발머리에 웃을 때 사랑스럽게 피어나는 광대. 그래, 엄마의 얼굴은 이렇게 생겼었지.






얼굴 둘


크게 웃을 때마다 금니가 보이는 사람. 촌스럽게 금니라니. 요즘 누가 금니를 하나 싶은데 그래도 금니를 씌우는데 꽤 많은 돈을 썼다고 아빠는 말했다. 엄마가 라일락이면, 아빠는 홀씨가 피운 작은 민들레 같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당연하게 거기 있었던 존재. 온 동산에 핀 민들레처럼 어디에도 있는 존재이자, 어디에도 없는 존재.


아빠는 어떻게 생겼더라. 매일 거울로 보는 내 얼굴을 닮았지. 눈썹 뒤편이 없고, 나처럼 낮고 걸걸한 목소리를 가졌지. 그리고 무엇보다 나를, 언제나 사랑하지. 아빠를 떠올리면 흔하고 흔한 것이 떠오른다. 세상 어디에도 있고 어디에도 없어서, 민들레처럼 당연해진 작은 생명 같은 것들이 떠오른다.


사람이 사람을 얼마만큼 사랑해야만 저리 표현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들 정도로 아빠는 가족을 나를 사랑한다. 좋은 걸 먹고 돌아오는 길엔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꼭 같이 가자고 했고, 잊지 않고 우리를 데리고 갔다. 아빠는 그런 사람. 우리 네 가족이 함께 모여 있는 순간이라면 모든 어려움을 이길 수 있다고 믿는 사람. 내게 어떤 아픔이 생길까 봐 내 앞에 놓인 모든 돌부리를 자기 손으로 치우는 사람.


아빠의 가장 큰 특징은 싱거운 아재 농담을 많이 한다는 것. 열 번 정도 하면 아홉 번 내게 무시당하고 한 번 정도 히트를 친다. 초승달만 뜨면 어젯밤 손톱을 깎다가 튄 조각이 하늘에 달렸다고 꼭 말하고 꼭 내게 타박을 받는 사람. 그러니까 내게 너무나 당연한 사람. 나를 웃게 만드는 사람. 내게 당연한 듯 사랑을 주는 사람. 그래서당연하지 않은 사람.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는 민들레를 닮은 사람. 민들레의 꽃말처럼 나에게 행복만 주는 사람.





얼굴 셋


어렸을 땐 테레비에 나오던 꼬마들 보다 훨씬 잘 생겼었는데, 갈수록 잘생김은 어디로 갔는지 도통 모르겠는 애. 내가 못생겼다고 놀리면, 그 말은 누나가 누나 얼굴에 침 뱉는 행동이라고 말하는 애.


동생은 개띠다. 어려서부터 장난기도 많고 호기심도 많아 동네를 쫄랑쫄랑 잘 돌아다녀서, 너는 개띠일 수밖에 없다고 동생을 놀리곤 했다. 동생은 어렸을 때부터 머리를 쓰다듬어 주거나 등을 토닥여주는 걸 좋아했는데, 특히 엄마가 발바닥을 살살 문질러주는 걸 좋아했다. 그게 버릇이 되었는지 엄마가 재워주지 않는 날에는, 작은 몸을 꼬물꼬물 움직여 자기 발바닥을 살살 문지르며 잠이 들었다. 그 모습이 얼마나 귀여웠는지.


동생과 뛰어 놀 때면, 나는 동산에 흔한 강아지 풀 하나를 꺾어 동생 뒤에서 서서 귓불이나 볼에 살살 문질렀다. 그럼 동생은 간지러워 나를 피해 도망가고, 나는 끝까지 동생을 추격해 간지럽혔는데, 우리의 추격전은 나나 동생 둘 중 한 명이 넘어져 무릎에 피가 날 때까지 계속되었다. 언제나 먼저 넘어지는 건 내 쪽이었다. 동생이 엄마 뒤에 쏙 숨어버렸으므로.


아빠를 닮아 높은 코, 아빠를 닮지 않아 짙은 눈썹, 아빠를 닮아 썰면 두 접시는 나올 것 같은 두꺼운 입술. 엄마를 닮은 속눈썹, 엄마를 닮지 않은 도톰한 콧볼, 엄마를 닮은 매끈한 손. 웃을 때마다 아빠를 닮은 주름이 광대뼈에 슬쩍 그려지는, 그래 너는 이렇게 짓궂게 생겼었지.





그리고 얼굴 넷


마지막으로 눈을 감고 나의 얼굴을 그려본다. 엄마를 닮아 유난히 동그랗고 큰 광대뼈, 웃을 때마다 시원하게 드러나는 윗잇몸과 아빠를 닮아 대문처럼 큼직한 앞니.


내 얼굴이 떠오르지 않을 때면 내가 사랑하는 이들의 얼굴을 먼저 그려 넣는다. 그러면 눈, 코, 입, 광대뼈가 자연스레 수채화 번지듯 머릿속에 그려진다. 그렇게 완성된 내 얼굴을 살며시 들여다본다. 나의 얼굴은 어쩌면 작은 비밀의 화원. 라일락과 민들레, 강아지풀의 포근함이 한 데 섞여 따듯한 풍경을 이루는 얼굴. 서로 의지하고 사랑을 하는 어떤 작은 꽃밭을 담은 얼굴. 그렇게 나는 나를 기억해내기도 한다. 눈을 꼭 감고 어둠 속에서 아무 것도 떠오르지 않을 때, 그렇게 기억해낸다.






하루는 저녁을 먹다가 엄마가 꿈 얘기를 했다. 우리에게 엄청 큰돈을 남겨주고 자신이 죽는 꿈이라고 해서, 나는 한 100억쯤 생각했는데 고작 1억이라 했다. 이왕 꾸는 꿈, 통 좀 크게 쏘지 그랬냐고 하는데, 아빠가 고개를 푹 숙이더니 젓가락으로 밥을 뒤적뒤적했다. 엄마는 갑자기 휴지를 뽑아 눈물을 슥 닦았다. 동생과 나는 당황스러움에 서로 눈빛만 마주하다가, 이게 울 일이냐며 눈이 새빨개진 아빠를 보며 놀렸다. 엄마도 새빨간 아빠의 눈을 보더니 울다가 웃었다.



우리는 알고 있지.
우리는 언젠가 서로의 곁을 떠날 거란 걸.



그럼 다시 엄마와 아빠 둘만 남겠지. 우리는 그렇게 언젠가 서로의 곁을 떠나겠지. 꼭 죽음이 아니더라도. 다 알면서도 눈물을 뚝 흘리며 서운함을 느끼는 건, 우리가 서로를 아주 아주 많이 사랑하기 때문이겠지.


눈을 감고 당신들의 얼굴을 그려 본다. 그리고 생각한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 덕에,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덕에 나는 내가 될 수 있었음을. 거울 속 나를 보며 어쩌면 내 얼굴엔 우리가 주고 받은 사랑이 담긴 게 아닐까 생각한다. 그래서 내가 살 수 있다고, 그 사랑으로 내가 오늘도 산다고. 서로를 사랑한 기억으로 우리는 오늘을 살 수 있는 거라고.


때때로 눈을 감고 사랑하는 얼굴을 떠올리는 연습을 한다. 살다가 힘이 들 때, 내가 쓸모없는 사람이라 생각될 때, 더 이상 살아갈 힘이 없다고 생각할 때. 나는 조용히 눈을 감고 사랑하는 얼굴을 떠올린다.
















2019년 11월 16일 청민의 말


거리에서 겨울 냄새가 납니다.

어딘가 축축하고 어딘가 알싸한 겨울의 냄새.


퇴근을 하고 집에 돌아오면 어딘가 외롭습니다.

텅 빈 집, 혼자인 집.

가족과 살던 유년의 시절이 자주 그리워 슬퍼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씩씩하게 살 수 있는 건,

용기내서 내일을 살 수 있는 이유는,

아마 가족의 품에서 받았던 사랑 때문이겠죠.


그래서 지칠 때마다 다시 힘을 냅니다.

툭툭 털고 일어나 내일을 걷습니다.

사랑은 우리를 다시 살게 하니까요.


행복한 토요일 되세요 :)







청민 Chung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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