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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민 Nov 02. 2019

이렇게 브런치는 나를 또 살린다.

삶이 주는 어떤 어려움조차 감사로 기억하게 만드는, 이 곳.

#청민의플레이리스트
오늘은 어떤 곡을 고를까 생각하다가, 어느 퇴근 후 종로를 거쳐 광화문까지 걸었던 노래를 남깁니다. 키비의 얼굴입니다. 이 곡이 이 글과 어울릴지는 모르겠지만, '오늘 내 얼굴 얼마나 웃었고 또 얼마나 많이 찡그렸는지. 오늘 내 얼굴 누굴 마주치고 누군가 마음속에 있는지'라는 가사가 좋아서요 :)








야근을 하려고 마음을 단단히 먹었는데, 윗배가 따갑다 못해 배알이 꼬이는 느낌이 들었다. 단전부터 시작된 고통은 남은 업무를 해야 하는 나의 시간을 무너뜨렸다. 또 시작이네. 1년에 한두 번, 꼭 이렇게 갑작스러운 위염으로 고생했지만, 올해는 한 번도 없어 웬일로 잠잠하다 했는데. 역시가 어디를 갈까.


아픈 배를 부여잡고 우선 사무실서 가장 가까운 약국으로, 거리의 바쁘고 지친 수많은 사람들을 뚫고 갔다. 얼굴이 얼마나 허옇게 질렸는지, 약사 선생님이 내 앞에 서선 약을 직접 까주셨다. 선생님이 건넨 약봉지를 받아 입에 한 번에 털어 넣었다. 선생님 뒤편의 냉장고 표면에 일그러진 표정의 내가 비쳤다. 약 기운이 빨리 돌기를 간절히 바랐지만, 집으로 돌아가는 한 시간 내내 배는 여전히 아팠다.


지하철 노약자석에 주저앉아 배를 부여잡고 엎드려 있는데, 괜한 서러움과 아픔에 눈물이 뚝뚝 흘렀다. 자리에 앉아 한참을 울었다. 데리러 올 사람도 없었다. 이 통증은 오직 나만 책임질 수 있었으나, 누구든 좋으니 기적처럼 나타나길 바라기도 했다. 누구든 좋으니 나타나 나를 좀 데리고 가 줬으면, 안전한 나의 공간으로 데려다줬으면. 사실 이런 모든 희망은 반복되는 통증의 속도처럼 후딱 지나갔다. 나는 그냥 아팠고 아파서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이럴 때면 응급실을 갔었다. 대학 때도, 고향 집에 살 때도 응급실에 달려가 링거를 맞으면 좀 살아나곤 했다. 혼자 이렇게 아픈 게 처음도 아닌데, 통증은 무뎌지지도 않는다. 지하철에 배를 부여잡고 앉아 속으로 끊임없이 계산했다. 응급실 갈까, 말까. 갈까, 말까. 가면 10만 원은 나올 텐데, 나는 10만 원 치 통증인가 아닌가. 6만 원 치 통증인데 괜히 사치를 부리는 게 아닐까. 한 시간 내내 노약자 석에 앉아 옆 사람이 들을까 입을 막고 울면서도, 통증에 값을 매기는 나를 보며 아, 나도 서울에 사는구나 싶었다.





결국 응급실에 갔다. 익숙한 절차를 거쳐 진찰을 받고 링거를 맞았다. 살 것 같았다. 링거를 맞아 응급실 침대에 누워 눈을 감았다. 자연스레 눈물과 통증은 그쳤다. 남은 것은 내가 앞으로 치러야 할 통증의 값과 두 정거장 건너의 집까지 가기 위해 치러야 할 값뿐이었다.


집에 돌아오고 이것저것 정리를 하다 보니, 새벽 1시. 여전히 배엔 잔여 통증이 있다. 내일 반차를 낼까 하다가 오늘 지불한 통증의 값과 내일 오전에 잡힌 매출 회의를 생각했다. 겨우 머리를 누였다. 핸드폰을 쥐고 세상 행복해 보이는 사람들의 일상을 습관처럼 구경했다. 자다가 깨고 또 자다 깼다. 이상하게 유난히 꿈도 많이 꿨다. 감기가 걸릴까 유난스레 뜨겁게 댑힌 방의 온도 때문이었다. 긴 밤의 끝에 다시 아침이 찾아왔다.


오늘은 매출 회의가 있는 날.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 광고 시트를 1차로 채우고, 출근해 2차 자료를 채워 평소처럼 본부에 메일을 보낸다. 어제 내가 얼마나 아팠던가 상관없이 삶은 잘도 흘렀다. 내가 아픈데도 시간은 성실히도 흘렀다. 지난밤의 통증은 마치 없었던 일 같기도 했다.




회의가 끝날 무렵, 카톡 하나가 왔다. 브런치 메인에 내가 있다며, 내가 대단하고 대견하다는 짧은 톡 하나. 정말 브런치 앱 메인에 내 얼굴이 대문짝 하게 실려 있었다. 지난달 브런치 팀과 새로운 브런치 북 프로젝트 홍보를 위해 카멜북스와 함께 진행했던 인터뷰였다. 글이 업로드된지는 좀 되었는데, 내 얼굴이 이토록 크게 메인에 걸릴 줄은 몰랐다. 다시 인터뷰를 찬찬히 읽었다. 거기엔 스물다섯의 내가 있었다. 비록 이젠 기억을 더듬어 겨우 찾아야 하는 스물다섯이지만, 거기엔 스물다섯의 빛나는, 가장 빛나는 내가 있었다.


아직 회의가 끝나려면 멀었는데. 속에서 무언가 뜨거운 게 울컥 올라오는 기분이다. 정말이지, 브런치는 내 삶의 방향을 이렇게 툭 바꾼다. 처음 글이라 부를 만한 것을 쓰게 했고, 책을 만들게 했고, 수많은 사람 앞에서 강연이란 것을 하게 했다. 지금 앉아있는 출판사에 취업을 하게 했고, 결국 나를 먹고살게끔 만들었다.





이렇게 브런치는 나를 또 살린다. 언제나 그러하였듯이.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브런치는 기회라는 손을 내밀었고, 나는 그 손을 잡고 어려운 날들을 이겨내곤 했다. 내가 어제 아팠던가, 스트레스 위염으로 응급실에 갔던가, 노약자석에 앉아 내내 외로움에 울었던가. 어쩌면 슬펐을 어떤 날들 속에서 브런치는 나로 하여금 고개를 들게 하고 내일을 살게 했다.  


‘이번 크리스마스에 당신의 글이 출간됩니다.’라는 카피로 처음 열렸던 '브런치북 프로젝트 1회'. 브런치가 세상에 태어나 처음 내놓은 브런치북 프로젝트와 브런치로 처음 긴 호흡의 글을 쓰던 나. 처음과 처음이 만났으니 분명 서툴렀지만, 찬란하게 빛났던 시간들이 그 좁은 회의장으로 밀려 들어오는 듯했다. 초라하지만 나는 여전히 풍족한 사람임을 기억했다. 삶이 주는 어떤 어려움조차 감사로 기억하게 만들던, 나의 첫 마음, 나의 첫 시간, 나의 첫 기억.


2015. 10. 30

2019. 10. 30


제1회 브런치북 프로젝트 당선자 발표를 한지 벌써 4년이 지났다. 지난 4년을 돌아보면 마음이 벅차고 뜨겁고 슬픈데 아름답기만 하다. 삶이란 쉽지 않아서 자꾸 게임처럼 레벨업만 하지만, 나는 여전히 어떻게든 쓰고 있으니까. 쓰는 삶을 선택하고 쓰는 것을 갈망하고 씀을 사랑하니까. 며칠 밤을 새도 쌩쌩하고 세상은 모두 아름답다고 말하는 스물다섯의 청민은 여기 더는 없지만, 통증에 값을 매기고 사회는 사회라며 고개를 젓는 스물아홉의 청민이 되었지만, 청민은 여전히 무엇이든 쓴다. 엉망이라도 쓰는 삶을 꿈꾼다. 이 모든 것은 브런치를 통해 가능했음을 고백하며, 2019년 10월 30일. 홀로 스스로를 축하해 본다.


4년 동안 수고했어, 청민.




왼쪽부터 2016년 10월 30일, 2017년, 2018년, 2019년 / 인스타그램 피드


* 제 1회 브런치북 프로젝트

https://brunch.co.kr/@brunch/18



그리고 지금 제 7회 브런치북 프로젝트가 진행 중입니다.

당신의 서랍 속에 숨어있는 글을 세상에 보여주세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기 내서요.

좋은 플랫폼과 좋은 출판사가 여러분을 기다립니다 :)


https://brunch.co.kr/@brunch/207




2019년 11월 2일 청민의 말:


딱 4년이 되던 날, 브런치 메인에서 웃고 있는 저를 만났어요.

뭔가 웃을 듯 말듯한 표정이 저는 웃기기만 한데,

그 표정도 예쁘다고 말해주고 싶은 날이었습니다.


브런치를 만난 지 4년이 되었네요.

이 공간을 열렬히 좋아하면서도 힘들어했고,

도망치고 싶으면서도 다시 돌아오곤 했었지요.


4년 전 이 공간에서 처음 만났던 분들의 아이디를 기억합니다.

성실한 글쓴이가 아니라서 죄송하면서도,

그 긴 시간을 함께해주신 여러분께 감사를 전합니다.


계속 쓰면 힘이 된다고 합니다.

그 힘으로 살고 또 그 힘으로 다시 쓰는 사람으로 살고자 합니다.

엉망이어도 부족하더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요.


따듯한 토요일 되세요.

감사합니다.






청민 Chungmin
* mail _ romanticgrey@gmail.com(매주 토요일에 답장합니다)
* insta _ @w.chungmin :여행/일상 계정
               @chungmin.post : 컬처/브런치 알람/작가 계정 + 휴재 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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