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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민 Nov 09. 2020

언젠가부터 나는 내내 참고만 있었던 게 아닐까.

#63. 사람들은 이런 날 어떻게 보내는지 궁금하다.


참고만 있는 게 아닐까.

퇴근을 하다가 멈칫, 걸음을 멈췄다.


‘큰 일’이라고 말할 사건도 없는 하루였는데, 옷깃에 스미는 겨울바람처럼 저린 생각이 발걸음을 묶었다. 언젠가부터 나는 내내 참고만 있었던 게 아닐까. 문득 찾은 깨달음은 오늘의 바람만큼이나 추웠다.     




견디기 싫은 날이다. 평소에도 있던 가슴팍 위의 부스러기가 유난히 무겁게 느껴진다. 마음의 입구에 놓인 부스러기들이 꼴도 보기 싫은 날. 오늘 하루 동안 참았던 순간을 세어 본다. 누군가가 싫어도 아닌 척, 듣기 싫은 말 앞에서도 모른 척, 곤란한 상황 앞에서도 괜찮은 척, 당신이 너무나 필요한 날인데도 혼자 잘할 수 있는 척. 자잘하기에 괜찮다고 여겼고, 이건 참는 게 아니라 정말 괜찮을 정도로 작은 거라고 여겼지만, 그것들에게도 무게는 있었다.     


나는 언제부터 참았을까. 언젠가는 또 언제부터였을까. 하루를 넘어 더 많은 시간을 되짚어 보려 해도, 뒤집을 힘이 없었다. 회사에서 오늘의 에너지를 남겨두지 않고 다 써버렸다. 그냥 집에 빨리 돌아가 넷플릭스나 보며 밥을 먹고, 눕고 싶었다. 그리고 알아버렸다. 귀찮아서, 힘이 남아있지 않아서 나는 생각을 포기했구나. 그때부터 나는 참는 게 익숙한 이가 되어버렸구나.     




참고 있다는 건 싫고 불편하고 힘들다는 뜻이기도 했지만, 나는 주로 참는 쪽을 택했다. 참는 게 더 편해서 일 때도 있었고, 먹고사는 사회의 위계질서 때문이기도 했으며, 내 사랑을 지키는 방법이기도 했다. 이해가 가지 않는 회의에서 ‘이건 별로예요’라고 말하는 대신 침묵을 택했고, 대놓고 느껴지는 나를 향한 경계와 분명 들었음에도 못 들은 척하는 이의 무시를 나도 못 본 척했으며, 무거운 기분에 눈물이 찔끔 나면서도 자영업을 하는 연인에게 나는 오늘 괜찮았다고, 그냥 쉬고있겠다며 속에도 없는 말을 했다. 혼자 있는 쪽을 택했다. 그럼 싸우지 않아도 되고, 누군가와 얼굴 붉힐 일을 만들지 않아도 되며, 일하는 연인에게도 속 넓은 이가 될 수 있었으니까. 가장 쉬운 선택이 나를 가장 잃는 선택이었지만, 누군가를 참지 않는 일보단 그게 편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문득 참고만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나를 덮치는 날엔 발걸음 하나에도 멈칫하게 된다.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 잘 살고 있는 걸까 고민하게 된다. 우습게도 눈물도 그렁그렁 난다. 눈물이 겨울바람 때문에 나는 건지, 외로움 때문에 나는 건지, 살아보겠다고 발버둥 치다 담이 와서 아파 울컥 하는 건지 때로는 헷갈리기도 한다. 사람들은 이런 날 어떻게 보낼까. 어떻게 보내야만 가슴팍 주변의 부스러기들을 툭툭 털어낼 수 있는지 궁금하다.


가끔 온통 가시뿐인 사람을 만날 때면, 나도 자라서 저렇게 될까 덜컥 겁이 나곤 한다. 그도 처음부터 미운 사람은 아니었을 테니까. 이런저런 기분에 길에서 엉엉 울고 싶지만, 다시 참는다. 금방이라도 내가 엉망인 걸 거리의 사람들에게 들킬까, 주먹을 꼭 쥔다. 안전하고 불행하지 않은 하루를 보내고 싶을 뿐인데, 마냥 추운 날이 찾아오면 주섬주섬 손을 주머니에 넣고선 몸을 동그랗게 말아 걷는다. 내일이면 사라질 오늘의 기분이지만, 사춘기는 훨씬 예전에 지나 보낸 서른의 어른이지만, 여전히 이런 날은 어렵기만 하다.


다른 이들은, 대체 어떻게, 견디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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