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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민 Dec 07. 2020

신입사원의 비공개 인스타그램

주간업무일기: 인스타그램을 보다가 발견한 작년 가을의 피드.


인스타그램을 보다가 발견한 작년 가을의 피드. 코로나로 모든 게 지루하고 미적지근해서, 지난해 나는 뭘 하고 살았나 궁금해 홀로 쓰는 비공개 인스타그램 피드를 거꾸로 구경하다 작년 가을의 나를 만났다.     



‘진지하게 고민된다. 나는 이 일에 재능이 없는 것 같다. 정말 하나도 없는 것 같다. 그만두고 빨리 다른 일을 찾아봐야 하는 게 아닐까.’     


고작 1년 전, 이런 생각을 했다니. 완전히 잊어버리고 살고 있었다. 저 때의 나는 저런 생각을 하고 있었구나. 인스타그램 피드를 조금 더 슥슥 내려 본다. 또 무슨 생각을 하고 살았는가 싶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다.      


‘빨리 그만두고 다른 일을 알아봐야 할까. 그럼 나는 뭘 먹고살지. 나의 의료보험과 월세와 관리비와 먹고 사는 비용은 어떡하나. 좋아하는 걸 잘하면 얼마나 좋을까. 내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그나마 택했는데, 진지하게 재능이 없는 것 같은데. 나는 잘 가고 있는 게 맞을까. 잘 적응하고 있는 게 맞을까. 문득 불안함이 목구멍까지 치고 올라온다. 딱 일 년만 버텨보자. 일 년 후에도 같은 마음이면 오늘의 고민을 다시 이어서 해보자. 그때까지는 우선 열심히 배우자.’     


‘인생이 다 그런 게 아니겠니 싶다가도 또 인생은 왜 다 그런가 싶다가도. 오래된 친구라도 있음에 가끔 마음을 녹이는데, 자꾸만 삶에 무감각해지고 더 서툴러지고 무신경해지는 요즘을 나는 무어라 불러야 할까. 기회일까 성장일까 아니면 나도 그저 그런 사람이 되어버리고 있는 걸까.’     


처음 사회에 나와 일과 조직을 배우고, 그 배움의 과정에서 부딪히고 깨어지는 과정에서 튀어 오르는 파편 같은 조각들. 고작 일 년 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이 감정들을 잊고 지냈다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머쓱하기도 하다. 지나고 나니 다시 보이는 문장들도 있고. 특히 감정이 오버되는 부분들이 도드라져 보이는데, ‘그만둘까 진지하게 고민된다’와 ‘재능이 하나도 없는 것 같다’는 부분이 그렇다.     


부족하긴 했지만 완전한 ‘0’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100에서 90은 못하더라도, 적어도 10은 하고 있다고(작은 숫자지만 플러스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실수를 하거나 따라가지 못할 때, 그래서 자꾸 뒤처질 때마다, 이 일은 나와 맞지 않는 걸까, 다른 일을 찾아야 할까 고민했지만, 그러기엔 팀이 좋았고 배우고 있는 일이 재밌었고 책이 좋았으며 그걸 좋아하는 내가 싫지 않았다.     



오른쪽은 약간 장난처럼 쓴 피드.


기억은 나지만 벌써 어렴풋하게 흩어진 기억들. 오랜만에 마주한 지난 기억을 읽으며 다 써둘 걸, 더 기록해 둘 걸 싶었다. 그러니까 뭐든 어렵고 어렵던 신입사원의 '결'을, 오직 그때만 가질 수 있는 어떤 ‘결’과 두려움과 실망과 기쁨을.     


이제는 어제 일도 잘 기억하지 못하는, 아니 당장 1시간 전에 나눴던 대화도 헷갈려할 만큼 업무에 이리저리 치이는 사람이 되었다. 조금씩 직장인의 삶에 적응하고, 처음과는 다른 시선으로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이 되었다.달라진 태도를 가진 올해의 나를 발견할 때다 문득 무언가 아쉽고 두려워진다. 무엇을 놓치고 또 무엇을 얻고 있는지도 잘 모르는 채, 시간만 계속 흐르고 있는 것 같아서.   


내년 이맘때 즈음, 3년이란 경력을 쌓은 나는 올해의 나를 어떻게 기억할까. 작은 것에 화를 내고 쉽게 지치는 사람으로 기억하고 싶진 않은데. 내년에도 머쓱하게 읽히는 오늘의 문장이 있을까. 있다면 어느 부분일까. 내일을 생각하니 오늘의 일기를 슬프게만 기록하지 말아야지 싶다. 작년의 기록을 보면서 오늘의 나도 함께 씁쓸한 것처럼, 내년의 내가 오늘의 나를 보았을 때 '그래도 잘 지냈구나' 싶은 마음이 들었으면 좋겠다. 어려웠지만 너는 그 시간들을 기어코 이겨냈구나, 버텨냈구나. 조금은 언니의 마음으로 기특해했으면 좋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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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민│淸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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