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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민 Dec 05. 2020

직장인이 되고 나서 10kg가 쪘다

나이를 먹는다는 건, 욕심이 많아진다는 뜻일까.

직장인이 되고 나서 10kg가 쪘다. 물론 코로나의 영향으로 가속이 붙긴 했지만, 이전부터 살은 서서히 찌고 있었고, 어느 날 정신을 차리고 보니 10kg가 찐 나를 마주했다. 충격적인 몸무게, 생애 처음 보는 숫자에 충격을 금할 수 없었다. 몇 kg가 더 붙으면 아빠와 몸무게가 같아진다니. 사실 숫자보다 나를 더 충격적으로 만든 건 속옷이었다. 세상에, 속옷이 작으면 그건 진짜 살이 찐 건데. 친한 언니가 말했다. 네, 언니. 지금 그 정도예요. 그제야 실감이 나는 무게들.     



확실히 직장을 다니며 몸에 변화가 찾아왔다. 정수리에서 오른쪽에 짧은 흰머리가 하나 둘 나기 시작했고, 처음으로 염색을 해야 하나 우울한 고민을 시작했다. 눈 아래 깊어진 다크서클과 기미는 점점 짙어지기 시작했고, 체력적으로도 조금만 움직여도 쉽게 피로해졌다. 이쯤 되니 이건 직장인이라서가 아니라 그냥 나이가 들어가면서 생기는 문제인가 싶어 우울해졌으나, 다시 베이컨을 잔뜩 넣은 파스타를 먹거나 사이다를 먹으며 기분을 풀었다. 예전과 생활 방식이 달라진 게 크게 없는 것 같은데, 몸의 생기는 예전 같지 않달까.     


한 번도 뚱뚱하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습진 때문에 식단을 조절한 적은 있지만 다이어트를 마음먹고 해 본 적이 없었다. 마음껏 먹어도 55kg를 넘어간 적이 없었고, 조금만 잘 차려입으면 늘씬하고 멋지다는 소리도 들었었는데. 뭐랄까, 지금껏 쌓아온 나의 세계가 와르르 무너지는 듯했달까. 거울 속엔 10kg가 찐 몸을 가진 사람이, 탄력이라곤 하나도 없는 사람이 서 있었다. 처음에는 이 변화가 낯설었지만, 코로나가 지속되고 있는 요즘 나는 자괴감을 느끼다가, 운동을 해야겠다고 다짐을 했다가 금세 까먹는 생활에 적응을 해버렸다.     



그러다 2년 전 찍은 사진을 보고서야 정신이 후딱 들었다. 여행지에서 찍은 사진이었는데, 내가 저렇게 말랐었다니, 건강하게 아름다웠다니! 저때는 하루에 30km씩 걸어도 힘들지 않았는데, 지금은 계단 몇 개를 오르락내리락하면 숨이 금세 차곤 한다. 어디서부터 나는 가장 먼저 내 몸을 포기해버린 걸까 싶은데, 번뜩 떠오르는 지난날의 내 모습들. 퇴근 후 밥을 먹자마자 침대에 누워 넷플릭스를 보고, 주말엔 새벽 늦게까지 밀린 영화를 몰아보고, 맵고 짠 음식을 먹고 거기에 달달한 젤리와 케이크까지 먹던 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이 정도는 먹어도 된다는 보상심리가 더해졌다.     


나이를 먹는다는 건, 욕심이 많아진다는 뜻일까. 하루하루 뭔가 쟁취하는 것은 많은데, -이를 테면 매달 들어오는 월급이라던가, 월급으로 예쁘지만 쓸데없는 물건들을 살 수 있는 능력이 생겼다던가, 한두 번씩 비싼 음식을 먹을 수 있게 되었다던가 하는 것들- 이상하게 자꾸만 공허함이 피어오른다. 모두 꽉꽉 채워 생활하고 있는데, 음식은 가득, 집은 사고 싶었던 잡동사니와 책으로 가득, 옷장에도 입지 않은 옷들이 가득 있는데, 왜 자꾸 어딘가 한쪽이 허전한 건지 알 수가 없다. 가지면 가질수록 왜 자꾸 빈 마음이 드는 걸까.     



공허함을 인지하니 오래전 받은 편지 속 문장이 떠오른다. ‘건강을 해치는 건 나 하나면 충분해. 그러니 너는 꼭 직장을 다니고서라도 너 자신을 챙겼으면 좋겠어.’ 내게 이 말을 건넨 그도 지금 나와 같은 마음인가 싶어 마음이 살짝 찌릿해진다. 그땐 그냥 그렇구나 하고 흘려들었는데. 지금은 균형을 찾았는지 묻고 싶어 졌지만, 굳이 대화가 길어질 것 같은 귀찮음에 연락을 하진 않았다. 대신 다시 책상에 앉아선, 노트에 해야 할 것 같은 일들을 적었다. 대책은 세우고 싶었다. 올해의 나쁜 것들은 올해에 두고 새해로 가고 싶었으니까. 코로나라는 핑계 삼아, 지금껏 쌓아 둔 버리고 싶은 모습을 뭉뚱그려 버리고 싶었다. 그러지 않고선 내가 너무 미워질 것만 같아서.     

일. 집안 잡동사니 버리기. 집 구역을 나눠 천천히 한 구역씩 정리하기. 여기엔 책 정리도 포함이다. 선물을 하거나 팔거나 버리기. 대부분 읽지 않고 쌓아두기만 하니까. 책을 좋아하고 출판사에서 일하는 나로서는 아주 과감한 선택이다.     


둘. 스트레칭 하기. 앉아서 일하는 시간이 긴 만큼 허리와 목 근육을 꼭 풀어주기. 한 때는 허리가 아파 앉아있기 힘든 때도 있었을 정도니까. 스트레칭이 갑작스레 살을 빼주진 못하더라도, 몸에 좋은 일은 하나라도 해야 할 것만 같았다.     


셋. 엉망으로 챙겨 먹지 않기. 귀찮아도 야채를 사서 씻어 먹고, 튀기고 맵고 짠 음식은 줄여보기. 얼마 전에 건강검진에서 식도염과 위염이 조금 있다고 했으니, 더 나를 괴롭히진 말기.     


그리고 마지막 넷. 변한 나를 너무 꾸중하지 않기. 조금씩 천천히, 느리지만 가고 있음에 기특해해 주기. 퇴근하고 바로 씻지 않아도, 대충 챙겨 먹어도, 생각만큼 잡동사니를 덜어내지 못해도 너무 혼내지 않기. 변해가는 모습도 못생기고 뚱뚱해도 나니까 잘할 수 있다고 믿어주기.     




어떻게 해야 삶을 바로 세울 수 있을지 고민하다가, 가볍게 무엇이든 시작해보기로 했다. 이 네 가지가 가벼운 건지도 모르겠고, 작심삼일이 될지 모르지만. 뭐, 삼일 하고 이틀 쉬고 다시 삼일을 해보면 되지 않을까. 적어도 마음은 잃고 싶지 않으니까. 잡동사니가 늘어나고 뭔가에 자꾸 욕심을 부리는 사람이 되어 버리더라도, 적어도 나도 모르는 사이 빠져나가는 통장의 돈처럼, 나를 야금야금 잃어버리고 싶지는 않다.    

 

오늘은 집의 큰 가구들의 위치를 옮기고, 책상을 정리했다. 나머지는 여전히 엉망이고, 짐을 여기서 저기로 옮긴 것밖에 되진 않지만 적어도 책상은 깨끗해졌다. 작지만 확실한 뿌듯함. 이제 이 글을 마무리하고 스트레칭을 해볼까 한다. 이렇게 하나씩 하나씩, 하루를 살아내다 보면 언젠가 예전 내가 원했던 그 모습들로 돌아갈 수 있지 않을까. 아니, 돌아갈 수 없다고 해도 나 자신을 잃지 않고 챙길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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