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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민 Nov 28. 2020

옛 선배가 들려준 회사 이야기

그냥 이렇게 허공에 대고라도 말을 남기고 싶은 날이 있었다.


선배는 가끔 SNS에 감정을 꾹꾹 눌러 담은 글을 올리곤 했다.


개인 SNS에 업로드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면 바로 부정적인 감정을 드러내는 일이라고, 다른 건 괜찮아도 그런 건 올려서 잃을 것 밖에 없다고, 선배 친구들은 함께 밥을 먹는 날마다 선배에게 툭툭 말하곤 했지만, 선배의 피드에는 여전히 먹먹하다는 말이나, 월요일이 오지 않았으면 하는 말들이 올라오곤 했다. 선배의 글에는 늘 주어가 없어서 얼핏 보면 그냥 개인적인 일이 있구나 정도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이상하게 나는 선배 마음을 알 것도 같았다. 무엇이 선배를 외롭게 했는지도.     




선배와 대화가 단절되기 시작한 것도 그즈음이었다. 회사를 다니지 않는 나에게 선배는 회사 이야기를 했고, 정확하게 말하자면 회사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을 내게 쏟아냈다. 회사를 다니지 않는 나로서는 대체 상무라는 직책이 어느 정도의 권한을 가진 사람인지, 조직개편이 무엇인지, 팀장은 본인 책임을 왜 선배에게만 미루는지 잘 이해할 수 없었다. 선배는 그냥 선배의 이야기를 했고, 나는 그냥 선배의 이야기를 멍하니 들을 뿐이었다.    


선배 이야기 속 회사는 이상했다. 회사란 대체 어떤 조직이기에 이토록 아침 드라마 같을까. 꼭 누가 누구를 싫어하지 않고선, 굴러갈 수 없는 구조를 가진 걸까. 선배 말처럼 돈을 위해 하루의 대부분을 견뎌야 하는 공간이라면, 나는 왜 그토록 회사에 가고 싶어 하는 건지 점점 알 수 없었다. 선배의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견딜 수 없는 건 내 쪽이었다. 회사에 대한 불평 아닌 불평들이 지겨웠고, 더 이상 선배의 감정 쓰레기통이 되고 싶지도 않았으며, 솔직히 고백해 보자면 우습게도 그런 선배의 모습조차 부럽기도 했다.     



직장인이 되고 가끔 선배 생각을 했다. 다행히 나의 일터는 선배가 이야기했던 선배의 일터 같은 곳이 아니었고, 막내의 의견도 귀 기울여 들어주는 좋은 선배들이 있었다. 하지만 사회생활이란 게 내 마음대로 흘러가는 일은 하나도 없었다. 오늘 싫은 이에게도 내일 웃으며 인사해야 했고, 꼬일 대로 꼬인 흐름 속에서도 최선을 다해 실오라기를 풀어야 하는 일도 있었다.     


유난히 힘에 부치는 날엔 집에 돌아와 멍하니 누워서는 SNS를 보았다. 차마 피드엔 올리지 못하고, 24시간 후면 사라지는 인스타그램 스토리를 열어 마음을 적었다. 그냥 월요일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으으으~ 오늘 힘들다! 같이 영양가 없는 말을 올리곤 했다. 꼭 누가 알아주길 바란 것도, 답답함을 풀어보겠다고 한 일도 아니었고, 그냥. 그냥 이렇게 허공에 대고라도 말을 남기고 싶은 날이 있었다. 그런 스토리를 올리는 날엔 꼭 팔로워를 취소하는 이들이 생겼다. 아무래도 여기에서까지 슬픈 내용은 보고 싶은 사람은 없을 테니까. 이런 업로드는 내게 아무 도움이 안 되는 것도 알고, 이런다고 달라지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도 알면서 종종 나는 그랬다. 

    

가끔 선배를 떠올린다. 자연스레 멀어져 이젠 어디서 뭘 하고 있는지 모르지만, 그냥 선배도 이런 마음으로 내게 전화를 걸었던 게 아닐까 싶어서. 몇 년을 다닌 회사라도 매일 불안한 마음을 한쪽에 늘 안고 산다던 그 말이 떠오르는 요즘. 그냥 선배는 좀 벅찼었구나, 좀 힘들었었구나. 지나간 기억을 이렇게 이해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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