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였을까. "요즘에는 기대되는 게 없어" 혹은 "마음을 설레게 하는 무언가가 없네" 같은 말들을 입버릇처럼 중얼거리게 된 것이. 비슷비슷한 풍경의 하루가 복사기처럼 다음 날을 찍어내고, 새로운 사건마저도 그 결말이 어느 정도 예상되는 나이가 됐다. 이제는 가슴이 두근거리는 감각은 오래전 기억처럼 희미해졌다. 심장이 멈춘 듯, 영혼이 잠든 듯, 어떤 설렘도 허락되지 않는 시간들이 이어졌다. 삶의 페이지는 매일 같은 그림으로 채워지고, 예측 가능한 서사만이 반복되는 듯 느껴진다.
최근 들어 이런 무덤덤함의 골이 더욱 깊어졌다. 어떤 특별한 약속이나 행사가 달력 위에 붉은 글씨로 적혀도, 마음은 잔잔한 호수처럼 어떠한 파동도 일으키지 않는다. 그저 평평하고 고요할 뿐, 어떤 활력도 찾아볼 수 없다. 솔직히 말하면 이건 사는 것이 아니라 버티는 것에 가깝다. 끈적하게 늘어지는 시간을 억지로 밀어내고,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눈만 깜빡이는 상태. 그런 날들이 뫼비우스의 띠처럼 끝없이 반복되고 있다.
그러다 문득, 오래전 책상에 앉아 꾸벅거리며 넘겼던 책의 제목 하나가 떠올랐다. 들뢰즈의 '차이와 반복'. 솔직히 복잡한 철학적 개념은 반도 이해하지 못했다. 다만 살아있는 모든 것은 매 순간 스스로를 복제하는 것이 아니라, 미세한 차이를 만들어내며 끊임없이 새롭게 생성된다는 내용만 기억에 남아있었다. 겉으로 보기엔 반복처럼 보이는 일상조차 사실은 단 한 번도 똑같이 반복된 적이 없다는 이야기. 매 순간은 이전이 미묘하게 다르며 그 차이들이 쌓여 새로운 존재를 만든다는 개념이었다.
지금의 나도 '차이와 반복'의 과정을 통과하고 있는지 모른다. 겉모습은 어제와 비슷한 하루를 되풀이하는 듯 보여도, 내면에서는 쉴 새 없이 새로운 생각들이 작은 파문을 일으키고 있으니까. 5분 전, 나는 잠시 그분의 얼굴을 떠올리다가 지금은 이렇게 키보드 위에서 문장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렇게 글을 쓰는 동안에서, 낯선 생각들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중이다. 하나의 문장이 다음 문장을 낳고, 하나의 생각이 또 다른 질문을 던진다. 나의 의식은 멈추지 않고 미세하게나마 움직이고 있다.
이렇게 멈춰있는 듯 보이는 내 일상도, 안에서는 무언가가 계속 생성되는 중이라면. 무의미해 보이는 시간의 반복이 결국에는 나를 지금과는 다른 어떤 존재로 만들어주지 않을까. 오늘은 예측할 수 없는, 아주 조금은 달라질 내일의 나로. 어쩌면 무감각의 심연 속에서도, 미세한 변화를 통해 새로운 나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