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의미

by 낭만피셔

아이의 성장은, 무의미하던 소리들이 점차 의미의 윤곽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처음엔 그저 입술 사이로 흘러나오던 옹알이들이 이제는 특정한 대상을 지칭하는 소리로 변모한다. 아직은 아이가 구사하는 단어가 몇 개로 한정돼 있다. '아빠', '하부'(할아버지), '미미'(외할머니). 이 세 단어는 아무런 의도 없이 그저 가장 익숙하고 발음하기 쉬운 소재이기에 아이의 입술 사이로 흘러나오는 것처럼 보일 때가 많다. 일상의 배경음악처럼 자연스럽게 맴도는 소리들.


하지만 익숙한 목록에 이따금 예고 없이 다른 단어가 끼어든다. '엄마'. 주로 나와 단둘이 있을 때 허공을 향해 던져지는 단어. 어떤 때는 아무런 맥락 없이 소리 자체로 '엄마'를 발음하는 듯하고 또 어떤 때는 정말로 엄마를 생각하며 부르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그럴 때마다 내 심장은 미세하게 떨리고 설명할 수 없는 감정들이 휘몰아친다. 기대와 불안, 깊은 슬픔들이 뒤섞인 감정들.


주말 오전 아이와 함께 대형 키즈카페를 찾았다. 플라스틱 놀이기구들이 내는 삐걱거리는 마찰음과 아이들의 찢어질 듯 높은 비명, 알록달록한 원색의 향연이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정신없이 북적이는 소란 속에서 나는 잘게 자른 돈가스를 아이의 작은 입에 넣어주고 있었다. 아이는 밥을 받아 삼키면서 멍하니 내 뒤편의 광경들을 응시했다. 그리고 분명한 목소리로 말했다.


"엄마"


이번에는 달랐다. 이전의 소리들과는 주파수부터 다르게 들렸다. 단순한 음절의 반복이 아니었다. 그것은 명확한 호명이었다. 아이의 목소리는 시끄러운 키즈카페의 소음 속에서도 귀를 뚫고 들어와 마음에 박혔다. 나는 아이의 표정을 살폈다. 아이는 특별한 표정 없이, 여전히 키즈카페의 특정 지점을 응시하고 있었다. 마치 허공에 박힌 어떤 존재를 바라보는 것처럼.


그 순간, 내 머릿속에 하나의 가설이 섬광처럼 세워졌다. 아이가 '엄마'를 발음하는 것이 어쩌면 소멸해가는 기억에 대한 최소한의 저항이 아닐까. 손가락 사이로 흩어지는 모래알 같은 기억을 붙잡기 위해서. 그 이름을 주문처럼 외우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망각의 흐름 속에서 필사적으로 기억을 지켜내려는 아이의 몸부림. 이 가설은 내 마음을 아프게 때렸다. 아이의 한마디에 담긴 의미가 너무 크게 다가왔다.


아이의 입에서 나온 두 음절은 소음 가득한 키즈카페의 공기 속에 가라앉아 사라졌다. 나는 아이에게 다시 돈가스 한 조각을 건넸다. 아이는 아무렇지 않게 그것을 받아먹었다. 하지만 내 안에서는 아이의 한마디가 만들어낸 생각의 파문의 쉬지 않고 일렁였다. 오후의 남은 시간이 슬로모션처럼 천천히 흘러갔다. 아이의 순수함 뒤에 나의 슬픔과 무력감이 뒤섞이는 시간이었다.

이전 22화몹쓸 것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