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로마언니 Jan 17. 2024

Bocca al Lupo 행운을 빌어요

이탈리아에서 내 집 마련하기 #9


경매 3일전 서류를 제출할 때 두팀이 왔었다던 로잔나의 말이 무색하게 경매시간이 다가올 수록 사무실 초인종은 멈출 줄을 모르고 띵동 띵동 울렸다.


집 2건, 땅 5건에 총 13팀이 모였다.

어쩌다보니 남편과 난 정중앙에 자리하게 됐고 내가 앉은 왼편으론 직전 경매 때 봤던 (아마도 집으로 경매신청을 했을 것 같은) 아는 얼굴들이 제법인데 반해 남편 오른편으론 죄다 시꺼먼 정장차림의 혼자 온 남자들.. 변호사? 건설업체? 집 일까? 땅 일까? 도무지 그 속내를 읽을 수가 없다


모두가 숨 죽인 채 봉투 하나 하나가 열리고 Lotto (건물 번호) 호명될 때마다 긴장했다.

8번째 봉투, 집 두 건은 이미 4:3의 경쟁으로 치열해질대로 치열한 상황, 땅 번호도 하나 불렸지만 우리의 경쟁은 아니었다.

다음은 9번째 우리 봉투였다.

Lotto 33, 여기저기서 안도의 한숨이 터져나오며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순간 웃음 바다가 되었다.


남편이 말했다.

- 알죠? 우린 오늘이 3번째예요, 더는 실패하고 싶지 않다구요


여기저기서 엄지손을 치켜올려 주었지만 아직 경매가 끝난 건 아니었다.


봉투가 열릴 때마다 어김없이 집 번호가 불렸고 그린벨트로 일부가 묶이긴 했지만 꽤나 저렴한 땅 번호도 두번이나 불렸다.


마지막봉투가 뜯겼다.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나즈막하게 NO NO NO를 외쳤다.


5:5의 박빙, 2:1의 경쟁, 그 속에서 Lotto 33

우리만 살았다!

판사의 경매낙찰 공지가 있고 우린 부둥켜 안았다.

많은 이탈리안 사이에서 낯선 이방인 한국인 부부만이 낙찰을 받았다.

판사, 공증인, 참여자 너나 할 것없이 모두 축하해주었다. 그 기분 정말 이루 말할 수가 없다.

다음 절차 진행에 필요한 이메일과 연락처를 남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Bocca al Lupo (행운을 빌어요)


경매 첫 날 모두가 낙찰받아 떠날 때, 우리만 경쟁으로 남았을 때 그들이 우리에게 해주었던 말!

그 말을 하는 그들이 한없이 부러웠던!

나도 이 자리에서 꼭 한 번 하고 말테다 다짐했던 바로 그 말이었다.


모든 꿈을 (일단은) 이루었다.

경매낙찰로 드디어 우린 땅을 가졌고, 단독으로 낙찰되어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집을 짓기까지 더 끝없는 여정이 펼쳐지겠지만 아니 앞으로 더 큰 험난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지금만큼은 이 순간이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이 안갈만큼 믿기지가 않는다.


심장이 여전히 쾅쾅쾅, 구름위에 둥실 떠있는 듯 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미래의 손주들아, 집 한 채는 남겨주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