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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마언니 May 21. 2020

운전면허증 내놔라

이탈리아에서 운전면허증 갱신하기




운전에 대한 욕심이 딱히 없었건만 아빠는 이 시대엔 운전은 무조건 할 수 있어야 한다 하셨다.

그 무조건이라는 것에 반발심이 일어 괜한 고집을 한껏 부렸지만 본전도 못 찾았고 어차피 2종 오토차 위주로 운전하고 살 거면서 굳이 아빠는 만일을 위해 1종 수동면허를 취득해 두라 하셨다.

혹여나 자격만 취득하고 장롱 신세가 될까 노심초사 아빠는 스파르타 도로연수까지 자처하며 나의 운전실력을 제법 안정적이게 해 주셨다.


내 생에 수동차를 운전할 일이 대체 얼마나 있다고!

볼멘소리를 했건만 그런 만일의 사태는 오래지 않아 현실이 되었다.


나는 이탈리아에 왔고 2020년인 이제야 오토차가 보편화되고 있으니 10년 전엔 너무나 수동차 위주였다.

운전면허시험 칠 때를 제외하고는 클러치를 밟아본 지가 언젠데 대뜸 운전을 하려니 간이고 쓸개고 후달달 핸들 잡은 두 손은 당연히 덜덜덜, 외출 한 번 하고 집으로 돌아오면 온 몸의 근육이 경직되었고 그런 상태로 자고 일어나면 밤사이 흠씬 두드려 맞은 듯 아팠었다.


이탈리아에서 운전면허증을 취득하는 방법은 당연히 한국과 동일하게 운전면허 학원을 통한 교육 이수 후 시험인데 조금 다른 점이라고 하면 필기시험 이외에 Orale(오랄레) 라고 구술시험을 본다.

운전면허시험뿐만 아니라 'TEST'라고 붙은 것에는 대부분 구술시험을 보는 듯하다.

이탈리아 드넓은 땅 그 어디 뫼에도 도로주행코스의 시험장 하나 없는 것이 처음엔 조금 낯설기도 했는데 무슨 배짱인지 필기시험 이후 장내시험 이런 개념 없이 곧장 스파르타 식 도로주행 직행이다.

수동차의 비중이 크다 보니 현재도 도로 위에서 시동을 꺼트리는 사람, 차가 뒤로 밀리는 사람 등을 쉽게 볼 수 있다.   


한국에서 이미 면허증을 취득한 (나 같은) 사람들은 대부분 한국 면허증을 이탈리아 면허증으로 갱신하여 발급받는 편이다.

1종 보통 경우는 갱신에 별 어려움이 없지만 우리나라는 2종(오토) 면허를 기본으로 취득하는데 반해, 이탈리아는 대부분 수동(스틱) 차를 기준으로 하다 보니 주위 한인들의 면허증 갱신을 도와줬던 남편 말에 의하면 한국의 2종 보통 면허를 이탈리아 면허로 갱신하는 것에 대한 어려움도 있었다고 한다.


이탈리아 교민들 사이에서 이탈리아는  '되는 것도 없고, 안 되는 것도 없다'라는 우스갯 소리를 한다

이 역시 마찬가지로 2종 보통은 원칙은 안된다!이지만 이탈리아 답게 안 되는 건 또 없다.

과정이 조금 복잡하고 번거롭긴 하지만 2종 보통면허도 이탈리아 면허로 변경이 가능하다.


이탈리아 면허 적성검사 역시 정확한 기준을 알 수 없는 것이, 사람마다 갱신 기간이 다르다.

나의 경우는 한국 면허증에서 이탈리아 면허증으로 변경하고 다음 갱신 연도를 10년을 받았고, 남편 경우는 보통 5년, 유독 이번 면허증은 짧게 3년을 받기도 했다.


심플한 나에 반해, 남편은 다양한 종류의 운전이 가능하다



물론 남편 경우는 1종 보통, 대형, 특수(트레일러), 2종 보통, 원동기 등 다양한 종류의 운전이 가능함에 있어 적성검사 기준이 까다로울 수는 있지만 보편적 5년의 차이는 짧다고 할 수는 없는 듯하다.


운이 좋게 다음 면허증 갱신 유효기간이 10년이 나왔고 작년 9월 갱신 서류를 접수했다.

9월에 접수하면서 12월 크리스마스쯤 받을 수 있다고 해서 뭐? 크리스마스?라고 했건만 역시나 이탈리아 답게 크리스마스에 면허증은 나오질 않았다.

(오리지날(원본) 면허증이 나오기 전까지는 구 면허증과 갱신 서류 지참으로 운전이 가능하고 경찰 컨트롤에도 문제는 없다)


애초에 이탈리아에서 가장 큰 휴일이라고 할 수 있는 크리스마스에 면허증이 나온다는 것 자체가 이상했다.

연휴 핑계로 대부분 관공서가 일도 하지 않으면서 말이다.

그렇게 2020년 새해는 시작되었고 1월이 지나도 면허증 소식은 없었다.

너무나 이탈리아 답다,라고 생각하며 하염없이 기다리다가 2월엔 연락을 시도했고 9월에 접수했다고 하니 지금 6월에 접수한 사람들 처리 중이니 기다리라는 당돌한 답변이 돌아왔다.

2월 중순부터는 전 세계에 창궐한 코로나 역병으로 외출은커녕 반강제 자가격리가 시작되었고 당연히 관공서도 문을 닫았을 테니 업무도 중단일 테고 어차피 나갈 수도 나갈 곳도 없으니 더 이상 새 면허증의 존재도 불필요했다.


5월 봉쇄 완화가 되었고 면허증의 존재는 기억 저편 어딘가에 있을 때 원본 면허증을 수령하기 위해 신분증을 지참하고 방문하라는 연락을 드. 디. 어. 받았다.

갱신 서류 접수하고 8개월 만이다.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더니, 정말 로마에서 하루에 해결되는 일은 거진 없다.

8개월 만에 면허증을 받았다.

다행히 다음 갱신도 10년, 2030년을 받았다.

이게 뭐라고, 면허증을 갓 취한 것도 아닌데 괜스레 기분이 좋다.


오늘 드라이브는 새 면허증 받은 내가 운전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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