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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마언니 Jun 08. 2020

다들 그렇게 살아내는 거지

타국에서의 부부의 세계



“잘 지내나?” 로 시작된 오랜 친구와의 통화

끼리끼리 라더니 누가 친구 아니랄까 봐 무소식이 최고의 희소식임을 지향하며 드문드문 연락하는 편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학창 시절의 그때처럼 편안한 녀석


“그냥 비도 오고 니 요즘 어째 지내나 싶어 가, 근데 니는 도와주는 사람 하나 없이 그 멀리서 아 둘을 어째 낳고 키우고 있노? 니 진짜 대단타”


나보다 5년 일찍 결혼했는데 아이가 쉬이 생기질 않아서 친구는 마음고생을 꽤 했었더랬다.


“괜찮다, 내 아 별로 안 좋아하는 거 안다 아이가, 그래가 아직 안 주시나 보지, 기다리야지 별 수 있긋나”


마냥 괜찮다 하던 녀석이었건만 내가 첫째를 낳고 둘째를 임신했던 재작년 드문 없이 전화한 녀석은 받자마자 대성통곡을 하며 울었었다


“기다리고 또 기다리면 내한테도 보내주시기는 하시긋제?

내가 그동안 뭘 마이 잘못했었는갑다, 이래 벌을 오래 주시네"


"마음을 비워야 한다는 데 그게 어디 쉽겠나, 곧 주실 끼다 나도 매일 기도하께"


전할 수 있는 말이 겨우 이 뿐이라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지만 나 역시 오랜 기다림 8년 만에 첫 아이를 가졌었기에 친구의 마음이 한편으론 너무 와 닿았고 어느 순간부터 늘 기대하고 준비하는 친구가 조금은 마음 편히 내려놓기를 바랐다.

첫 아이를 가질 때 간절히 바랐던 그때처럼 친구와 나를 위해 매일 기도했다


둘째 임신 8개월이 되던 날, 임신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전화기를 붙잡고 우리 둘은 축하한다, 진짜 잘됐다,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는 말만 연신하며 기쁨의 대성통곡을 함께 했었다.


그렇게 각자의 삶 속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엄마라는 이름 아래 매일을 바쁘게만 지내던 어느 날

비가 와서 내 생각이 났다는 녀석, 물론 지금껏 유독 비 오는 날 우리는 많은 통화를 했었다

늘 비 오는 날 인사겸 안부는 "막걸리 한 잔 하기 좋은 날이다, 니 뭐하노? 콜로세움 앞에서 만나까?" 였는데 (물론 친구는 한국에서 살고 있다)

이 날은 조금 달랐다   


"왜? 니 뭔 일있제? 뭔데?"

"내는 집에 엄마도 있고 애도 하나뿐인데도 와 이래 힘드노, 니는 혼자서 아(애)둘 어째 키우는데?

오빠야가(남편) 많이 도와주나? 안 싸우나?"

"안 싸우는 집이 어딧노? 와? 싸웠드나?"


아이를 낳고 조리원 생활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온 이후부터 남편과 줄곧 싸웠다고 했다.

초보 엄마, 아빠 그리고 신생아, 서로 익숙하지 않은 것들로부터 적응도 미처 하기 전에 신생아의 습격은 아이를 키워본 부모라면 공감하듯 체력적으로도 정신력으로도 분명 쉽지 않은 부분이 존재한다.

귀한 아이였기에 더욱 각자 최선을 다하려 매일을 노력했을 테고 그러다 보니 조금 섭섭한 부분이 더 크게 다가왔을지도 모른다  

행복하기만 할 줄 알았는데 예상 밖으로 매일 싸우게 되면서 너무나 지치고 너무나 힘들다 하소연했다.


나 지금 너무 우울해!

이 한마디에 나는 한걸음도 다가갈 수가 없다는 현실이 갑갑했다.


푸념을 안주삼아 진하게 소주 한 잔 하며 털어버릴 수도, 커피 한 잔 시켜두고 네댓 시간씩 훌쩍 수다를 떨며 기분 전환을 할 수도, 힘들다 하는 녀석 어깨를 토닥여줄 수도 없고 할 수 있는 거라곤 고작 수화기 너머로 보이지도 않는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다.



우리라고 왜 안 싸울까, 다만 끝장 낼 게 아니라면 싸워서 뭘 하나 어느 한 점쯤은 그냥 놓고 사는 듯

미우나 고우나 우리뿐인 타국 생활에서 싸워봤자,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례행사처럼 참 사소한 것들로 투닥거릴 때면 내가 여기서 지금 뭘 하고 있는 건가 별의별 생각이 가득해지고 속상함 절반 답답한 마음 절반으로 훌쩍 집 밖으로 나가려 해도 어디로 가야 할지? 누구를 만나야 하지?


홧김에 조르르 달려갈 친정조차 너무 먼 11시간 거리 타국에서 마땅히 갈 곳도 마땅히 만날 인도 없는 더더욱 외롭게만 느껴지는 내 처지

그러니 자연스레 미우나 고우나 내 가족, 내 편

싸워서 무얼 하나 싶은 거다


부부 사이가 마냥 좋을 수도, 그렇다고 마냥 안 좋을 수도 없지만 적어도 타국의 나에겐 단점을 붙잡고 살 수록 더욱 외롭고 슬퍼지는 건 누구보다 나였었기에 그냥 적정선에서 놔 버리는 거다.


육아 역시 이 타국에 우리 부부 단 둘 뿐이고 도움받을 곳 한 곳 없는 신세에 서로가 서로를 돕지 않으면 이 삶 자체를 이끌어갈 수없다는 생각이 우리는 완연했다.

출산과 육아 자체가 처음이지만 서툰 대로 우리는 나름 잘 해냈고 첫째를 그렇게 우리 손으로 해냈기에 둘째는 쉬운 듯 어려움 또한 존재했지만 고비마다 우리는 주변 도움 없이 (그 흔한 산후조리원, 잠시 잠깐 아이를 맡아줄 사람조차 없이) 넘겨가며 그야말로 전우애(?) 동지애(?)로 점철되어가는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혹은 (그 순간만큼은) 사랑했던 남편이 미워지고 앙칼지게 싸우게 되더라도 잠시 두 귀 막고 두 새끼 부둥켜안고 제 풀에 씩씩대다가 결국 화를 이겨내고 승리하는 존버 하는 마음으로 가까스로 위기를 넘겨가는 것


여느 부부들 또한 마찬가지겠지만 다들 그렇게 살아내는 거지 뭐


어느 날은 세상 부질없다가  또 어느 날은 그래도 내 인생 그나마 참 잘한 일 중 하나일 때도 많으니 그때의 그 힘으로 견디고 또 버텨내는 거다

서로 다른 남남이 만나 한데 어우러진 부부라는 이름의 세계, 단순하지만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그 세계

타국에서의 부부의 세계는 조금은 다른 의미, 조금은 색다른 맛일 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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