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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마언니 Jun 17. 2020

침대 하나에도 평등을 생각했다





아이 침대 하나를 구입하는 데 있어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내가 아이 엄마라니!'


너무도 낯설지만 설렘 가득한 마음으로 신생아용 침대를 구입하기 위해서 인터넷 서칭을 얼마나 했는지 모른다.

아기침대 사용 빈도가 낮으니 굳이 구입하지 않는 것이 좋다던 평들 덕에 과감히 구입목록에서 삭제했었건만 대체로 내가 보았던 리뷰는 ‘한국스타일’ 한국 엄마들 기준이었다는 점을 간과했다.

바닥 온돌 문화가 아닌 이탈리아에서 아이를 출산하고 육아해야 하는 내 기준으로 아기침대는 필수였던 거다.



갓난쟁이일 때는 물려 쓰던 유모차 베시넷에서 잠재우는 것이 충분히 가능했고 아니 어쩌면 바퀴 달린 베시넷으로 적당히 흔들어주며 더 수월했던지도...

베시넷에서 더 이상 재울 수 없을 이후부터 아차! 싶었다.


‘이제 어디서 잠을 재우지?’


이제와 고가의 아기침대를 구입하자니 (당시만 해도 둘째 계획이 없었기에) 솔직히 아까운 마음이 커서 모유수유 핑계를 톡톡히 한 몫하며 부부 침대에서 함께 했는데 육아 초보 엄마 아빠의 첫 아이는 그저 만지면 바스라질까, 혹여 잠결에 나도 모르게 아이를 짓누를까, 자다가 이불이 아이를 덮어버리면 어쩌지

극도의 두려움을 동반하며 꼬물거리는 작은 아이를 사이에 두고 그야말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도통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절충형으로 아기 침대 하나 사자!

(계획엔 없었지만 어찌 됐든 23개월 차이의 둘째가 태어나면서 이 부분 또한 아쉽다. 그냥 그때라도 제대로 살 껄)


절충형으로 구입한 아기침대는 십분도 엄마 성에 차질 않았다.

그런 엄마 마음을 고스란히 읽기라도 한 듯 아이는 침대에 눕자마자 자지러지듯 울어댔고, 울어대는 횟수가 길어질수록 지치는 마음에 수면교육이고 나발이고 아기 침대에서 홀로 잠재우길 포기해버리고 말았다.

첫째 혼자일 땐 부부 침대에서 함께 잤다지만 그사이 둘째가 태어났다.


둘째 역시 신생아 일 땐 첫째 수순 그대로 베시넷에서 재웠고 이 녀석 또한 아기침대에 뉘이기만 하면 발랑 뒤로 자빠지며 울어대는데 이쯤 되면 침대가 문제인가 싶을 정도인 거다

아이와 함께 부부 침대에서 잠자는 것에 대해 꽤 많은 후회를 했던지라 둘째만큼은 시작부터 본인 침대에서 재우고 물론 잘 자주 길 바랐건만 이번엔도 역시 틀린 건가  


이미 우리와 함께하던 첫째, 완강히 아기침대를 거부하는 둘째

다 함께 잘 수 있으면서 각자의 숙면에 최대한 방해받지 않을 방법을 모색하다가 결국은 우리 부부 침대 곁에 더블 침대를 하나 더 놓아 패밀리 침대를 만들었다.


모두가 한데 어우러져서 자는 것 까지 참 좋았는데 넓어진 침대 면적으로 아이는 사방으로 굴러다니며 잠자기 시작했고 저녁만 되면 침대는 장난감과 베개 쌓기 등 놀이장소로 변모했다.

도저히 이렇게는 안 되겠다 싶어 그 사이 조금 더 큰 (곧 만 3세) 큰 아이 침대를 완전히 분리해보고자 운을 띄우니 흔쾌히 혼자 잘할 수 있다는 아이


이탈리아는 출산과 동시에 병원에서 출생신고가 이루어진다.

때문에 아이의 이름 결정을 위해 성별을 일찍이 알려주는 편인데 갓 16주쯤 되었을 때 둘째 또한 사내아이라는 소식을 접하고 그때부터 오호라! 이 녀석들 장가가기 전까진 무조건 한 방을 쓰게 할 테야! 하고 엄마인 나는 다짐했었다.


내 경우가 그랬다.

3살 차이의 여동생과 나

각자의 뜨거웠던 사춘기 시절까지 함께 보내면서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었고 매번 사소한 것들로 치고받고 싸우기도 엄청나게 했다.

딱히 집에 방 갯수가 모자라서 그랬던 것도 아니고 빈 방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한사코 우리가 함께 방을 쉐어해야 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지만 엄마는 끝끝내 각자의 방을 허락치 않으셨다.

20대가 되고 30대가 되어 언니인 내가 결혼을 하고 이탈리아로 삶의 전체가 옮겨지면서 그 순간 우리가 한 방에서 지냈던 시간들이 얼마나 값지고 소중했는지 절실히 깨닫게 되었다.

사소했던 그 모든 것들이 함께했기에 모두가 추억이 되었다. 그제야 엄마의 깊은 속 뜻을 어느 정도 알아차리게 되었고 훗날 내게도 자식이 생겨 형제 또는 자매가 된다면 그 어떤 불평불만에도 지지 않고 한 녀석이 결혼이라는 매개체로 종지부를 찍을 때까지 한 방을 쓰게 하리라 다짐했던 것 같다.

그래서 너넨 한 놈이 결혼해서 그 방을 나갈 때까지 룸 쉐어를 하는 거야!!



아이가 둘이 되면서 가장 우선시하는 건 나름 평등이다.

유모차를 구입할 때도 그랬다.

쌍둥이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미 나는 정말 예정에도 없던 그 둘째, 심지어 연년생은 생각조차 하지 않았지만 무슨 바람이었던지 연년생 유모차, 쌍둥이 유모차를 첫째 아이 혼자임에도 불구하고 덜컥 구입했다.


결론은 23개월 차이로 연년생 아닌 연년생 형제가 되면서 아주 요긴하게 사용 중인 아이템이다.

쌍둥이 유모차의 다양한 선택지 앞에서도 평등을 가장 중시 여겼다.

어느 하나 앞으로 앉고 뒤로 앉고, 혹은 위아래로 앉지 않는 다소 부피는 커질지라도 평등하게 나란히 앉을 수 있게 했고

침대 또한 막연하게 둘이 함께 할 수 있는 2층 혹은 서랍형 침대만 떠올렸다가 문득 2층엔 아무도 자려고 하지 않으면, 또는 둘 다 2층으로만 가고 싶어 하면?

또다시 누군가에게는 '네가 양보해라'라고만 해야 하는 그 상황이 달갑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이 또한 평등하게, 이 또한 부피는 꽤나 차지하겠지만 각자의 두 침대를 나란히 둘 수 있게 할 예정이다



엄마 곁을 떠나서 혼자서 잘 자보겠다는 첫째에게 첫 침대를 선물하기 위해 또다시 서칭의 세계에 빠졌다.

다양한 디자인의 프레임을 다채로운 높낮이의 매트리스를 인테리어의 조화로움을 상상했지만 모든 건 금액 앞에 굴복될 뿐, 현실적인 가격선에서 이리저리 끼워 맞춰 홀로서기의 첫 시작, 첫 침대를 마련했다.


이 침대 하나를 위해 엄마는 수많은 고민을 했다.

좋은 꿈만 꾸렴 내 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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