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뉴 노멀 시대의 뉴 장발장(?)
딱히 관리라고 할 것도 없이 그저 자연의 섭리 그대로 두지만 잊지 않고 때때마다 탐스러운 열매로 눈과 입을 즐겁게 해 주는 덕분에 어쩌면 봄과 여름 사이가 더 재미난지도 모른다
“할아버지께 여쭤봐, 무화과는 언제 수확해야 하는지”
마침 우리 울타리 건너 옆의 텃밭을 가꾸시는 할아버지가 뜨거운 태양에도 아랑곳없이 밭 일 중이셨다.
할아버지와 할머니 두 분이서 소일거리로 혹은 우리네 시골 할아버지 할머니처럼 자식 손주들 직접 먹이기 위해서인지 할아버지 텃밭은 매년 크기와 종류 또한 제각각인 토마토는 기본이고 호박, 가지, 오이, 고추 등등 다양한 식재료들로 풍성했다
그 양이 실로 엄청 나 수확철쯤 주렁주렁 열린 걸 보고 있노라면 분명 두 분이서 다 드시진 못하실 거란 일종의 확신까지 들 정도였다
올해는 텃밭 중앙에 무화과 묘목도 새로 하나 심으셨더랬다
“엄마, 무화과는 언제 수확해야 해?
다 익으면 저절로 떨어지려나?”
나의 첫 무화과는 외할아버지 댁의 무화과나무에서 똑똑 따먹던 바로 그것이었다
잘 익은 무화과 하나를 똑하고 따면 그 사이 우유같이 뽀얀 진액이 손에 잔뜩 묻었다
손에 뭐 묻는 게 극도로 싫은, 성인이 된 지금도 여전히 손에 뭘 묻히는 게 싫어 늘 가방 속엔 비닐장갑을 여벌로 가지고 다니고 (굳이 안 먹으면 될 텐데) 과자를 먹을 때도 꼭 나무젓가락으로 집어먹는 등 여전히 손에 묻는 게 싫은데 그런 내가 끈적끈적 싫어하면서도 절반 쪼개어 잘 익은 무화과 과육을 한 입 베었을 때의 그 달콤함의 매력에 홀딱 빠져 따고 또 따서 먹었던 그 무화과 맛을 여전히 잊지 못한다
감나무와 석류나무, 무화과나무 나란히 있던 할아버지 댁 정원에서는 무슨 연유였던 지 감나무만 빼고 나머지는 모두 베어버려 그 이후 무화과는 한 동안 잊혀졌던 과일이기도 했다
그런데 너무나 반갑게도 이탈리아 마트에서 만났다
해마다 여름이 무르익어갈 즈음 마트 과일코너에서 쉬이 만날 수 있었다. 건조용이 아닌 생 무화과 얼마만이더냐
우리 집은 큰 대문 안에 총 30여 가구가 살고 있는 주거단지이다.
처음 이사 왔을 때 한국식 2층, 이탈리아식 1층이며 탑층인 복층 집에 살았는데 아이가 없던 시절이라 둘만 살기엔 집이 좀 크기도 했고 탑층이라 40도 웃도는 이탈리아 여름철엔 너무나 더웠다
3년을 살고 임신과 함께 이사를 생각하던 차 마침 건너편 집이 비었는데 혹시 관심 있냐는 주인 할머니의 권유에 무심코 보러 갔다가 그날 바로 계약까지 했다.
집 내부는 소담하지만 작은 정원과 마당, 테라스가 제법 넓은 편이라 좋았다
할머니 피셜에 따르면 이전 세입자들은 이 집에서 살다가 자가 구매로 이사했다고 하니 집 기운도 좋은 듯했고 아이가 태어나면 땅의 흙을 밟고 자랐으면 하는 내 가치관에도 부합할 만큼 정원도 있고 살구, 체리, 포도 그리고 무화과나무가 별책부록처럼 따라왔다.
이 집에서 현재 4년째 살고 있다
6월 한참 무더위 시작될 때 이사를 했건만 솔직히 첫 해에는 과실수 열매들이 어땠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다음 해부터는 살구나무가 샛노랗게 보일만큼 가득 살구를 수확했다
둘이서 소비하기에 양이 너무 많아 살구 청도 담고 쨈도 만들고 쥬스로도 먹고 이웃에도 나눠주고 그러다 작년 때아닌 강풍에 알알이 잘 맺혔던 살구 손실은 물론 살구나무가 뿌리째 쓰러졌다
다시 세워 고정해두고 아, 올해는 살구를 맛볼 수 없겠구나 했는데 양이 좀 줄긴 해도 여전히 탐스러운 열매를 맛보게 해 주었었다
올해 역시 살구는 잘 익었고 올해부터는 꼬마 조수까지 함께해 더욱 즐거운 살구 수확이었다
별도 사다리 없이 손 닿는 높이의 살구만 수확했고 사다리를 이용해야 하는 높은 곳은 좀 더 내버려 두기로 했다
작년까지는 부진했던 무화과나무도 올해는 열매를 많이 맺었다.
옛날 생각하며 하나를 맛보았는데 아직 덜 익은 듯, 좀 더 놔두기로 한다.
“살구가 왜 없지?”
- 바람에 다 떨어졌나 보지
분명 손 닿지 않은 높이의 살구를 제법 남겼는데 살구나무가 텅텅 비었다
고개가 연신 갸우뚱대지만 애써 그런가 보다 했다
오전, 엄마와 통화하며 재차 물었다
“엄마 무화과 언제 따면 될까?
얼마 전엔 좀 덜 익은 거 같아서 그냥 뒀는데 지금쯤은 괜찮을까?”
통화가 끝나고 수영장에서 놀겠다는 아이들을 남편이 케어할 동안 세탁 끝난 빨래를 가져 나와 테라스에 널면서 무심코 정원을 바라보았는데
없다!!
무화과가 없다!!
“오빠! 오빠! 무화가가 없어!!”
- 바람에 다 떨어졌나 보지
혹여나 남편 말처럼 떨어졌나 싶어 정원 바닥을 아무리 보아도 떨어진 무화과는 없었다
“아니 없어! 없다고! 무화과가 없다고!”
계속되는 나의 호들갑에 조금은 귀찮은 듯 남편은 내 옆으로 와 무화과나무를 바라봤다
평소 이런류에 관심이 전혀 없던 남편은 모르긴 몰라도 무화과가 있긴 있었어? 이런 표정이었다
얼른 촬영해뒀던 무화과 사진을 보여줬다
그제야 약간의 심각성을 깨달은 남편
침입자다!!
인정하기 싫지만 분명 누군가가 정원에 들어왔다
한창 제 스스로 문 닫기 좋아하는 아이 덕분에 현관문은 찰떡같이 닫았다 이건 분명하다
그렇다면 누군가가 담을 넘어 들어왔다는 거다
담이 그렇게 높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쉬이 넘나들만큼 낮지도 않다
무엇보다 집들이 마주 보고 있는 구조이기에 거리가 있긴 해도 우리 집은 앞 집에서 완전히 보이기도 한다 낯선 자가 하나의 대문 안에 형성된 주거단지 내에서 대범하게 담을 넘어다니기엔 보는 눈이 많았을 터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담을 넘었다고 봐야 한다
치밀하게도 무화과가 열렸던 가지채 잘라갔다
오밀조밀했던 나무가 열매가 열렸었던 중앙부위만 휑해졌다
살구 역시 이 자의 소행일까?
정원과 테라스는 한 끗 차이인데 테라스엔 여러 물품들이 있다
신발장도 테라스에 있고 그 속엔 소위 명품 신발들 또한 제법, 값나가는 브랜드의 유모차도 테라스에 떡하니 있는데 그런 건 전혀 손댄 흔적이 없다
오직 사라진 건 살구와 무화과
코로나 뉴 노멀 시대의 뉴 장발장 이던가?
해프닝으로 그치자니 한 번이 두 번, 세 번 될까 두렵고 이슈화 하자니 사라진 건 살구와 무화과뿐이라 그야말로 웃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