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에서 첫 졸업장을 받았다
아이가 다니던 어린이집으로부터 한 통의 메일을 받았다.
"7월부터 여름학교 개강할 건데 등록할 거면 6월 말까지 하고
짐도 찾아가고 사진 담아줄 테니 빈 USB 하나 가져오세요”
2020년 1월 새해부터 다소 늦은 감이 있긴 하지만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기 시작했다
적응한다고 울며불며 혼을 쏙 빼놓았던 1월,
안 그래도 날 수도 짧은 2월, 얼렁뚱땅 적응해서 조금 다니나 싶었건만
어린이집 등 기관에 보내기 시작하면 감기는 늘 달고 산다고 하더니 그나마 원생 몇 되지도 않는데
아이는 감기를 오질 나게도 옮아왔더랬다
줄줄 흐르는 콧물은 둘째 치더라도 (중국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보는 코로나로) 시국이 하 수상한데
심지어 몇 안 되는 원생 중 동양 아이는 오직 우리 아이뿐이다 보니 너무나 멀쩡했던 내 아이가 옮아왔습니다!
다소 억울함 가득이기는 하지만 어찌 됐든 콜록대는 기침 때문에 여간 신경 쓰이는 것이 아니었다
한 주만 어린이집을 쉬어도 많이 호전될 듯하여 한 주는 가정 보육하겠노라, 혹여나 감기 증상이 나아질 기미가 안 보인다면 한 주쯤 더 쉴 수도 있다 언급은 해 두었건만 전쟁 같은 가정보육의 한 주가 지나고 감기 증상이 예상대로 상당히 호전되고 나니 그제야 학비 생각이 드는 거다
사립 어린이집이라 비용이 꽤 만만치 않았고 (월 한화 약 80만 원 선) 매주 목요일 특별활동으로 음악수업은 심지어 7월까지 모두 완납해둔 상황
아침마다 등원하는 게 마치 도살장 끌려가는 것 마냥 울고 불고 생난리를 치더니 목요일 음악수업은 또 재미가 있는지 그날만큼은 연일 신나 하던 발걸음이 아른거려 목요일 음악수업하러 가겠냐 물었더니 냉큼 '응'이라 한다.
아주 먼 세계의 일인 듯하지만 불과 올해 3월이었다.
2월 마지막 주를 집에서 보내고 3월 첫 주 목요일 3월의 첫 등교를 했다.
이 곳에 살면서 나름 늘 신경 쓰는 것 중 하나는 매달 지불해야 하는 것들에 대해서 가급적 날짜를 미루거나 약속을 어기지 않을 것!
그냥 그게 동양인으로 이 곳에서 살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자기 방어의 일종이랄까?
너무나 당연한 거지만 그것이 신뢰고, 두터운 신뢰가 바탕이 된다면 분명 그것만큼 우리에게 득이 될 테니까,,라고 늘 생각하며 살았기에 3월 첫 등교에 아이만 덜렁 보낼 수 없어 아이 등원시키고 그 길로 은행으로 달려가 3월분 어린이집 비용도 납부했다.
그날 하원 길에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아직 확정은 아니지만 로마도 곧 대학교부터 어린이집까지 모두 문을 닫게 될 것 같아!"
그리고 그날 저녁 어린이집 단체톡으로 코로나 사태로 인한 잠정 휴교에 대한 알림을 받았다
3월분 어린이집 비용은 통째로 날아갔다. 딸랑 하루 등원하고서,,,
이때만 해도 사태가 나아질 거라 생각했지만 사실상 7월까지 등록 완료해두었던 특별활동 수업료도 결국은 휴지 조각되고 말았다.
이탈리아는 '환불'이라는 개념 자체가 거의 없다
(요즘은 개중에 가능한 것도 있어 '거의'라고 표현한다)
물품을 사고도 교환은 가능하지만 환불은 대부분 어렵다
그에 반해 내가 알고 있는 한국은 교환, 환불이 너무나 간편하게 시스템화 되어있다 보니
이러한 이탈리아 현지 상황을 미리 인지하지 못한 한국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하는 실수 중 하나 역시 환불 관련이다.
명품 매장이라고 예외는 없다.
순간적으로 구입하고 숙소에 돌아가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한국에 비해 딱히 저렴한지도 모르겠고 혹은 단순 변심으로 별로일 때 당연시 환불을 생각하게 되지만 결과는 노노노 불가이다.
이러하니 어린이집 비용이 환불이 되겠는가? 안 되겠는가?
더 기가 찬 건 물론 다들 그러했겠지만 이 코로나 사태가 금방이라도 종식될 줄 알았기에 3월 한 달치를 온전히 날린 것도 배 아픈데 4월분에 대한 납부 통보가 왔다
‘3월 수업일수가 빠졌으니 그에 대해 적정선으로 제하고 (물론 전혀 이해 안 되는 적정선;;)
그럼에도 불구하고 50€ (대략 7만 원 선) 지불하세요!!’라고 말이다
물론 장기화되는 이 사태로 4월분은 납부하지 않게 되었고 6월 말로써 정규수업은 끝이 났다
7월 한 달은 여름학교로 원할 경우 별도 등록을 해야 한다.
이탈리아 코로나 확진자는 많이 줄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매일 신규 확진자가 나오고 있고 어차피 7월 여름학교까지 보낼 생각은 없었기에 짐을 찾아오기로 했다
환불 안될 거라는 건 알지만 혹여나 하는 마음으로 원장님을 뵈면 말이라도 꺼내볼 참이었다
대략 4개월 만에 어린이집을 갔다
다소 비싼 비용이었지만 순간순간 아이를 대하는 선생님들이 너무 따뜻해서 감수할 수 있었다
오랜만에 만나 더없이 반가웠던 마음과 환불에 대해 이야기라도 꺼내보려는 떨리는 마음 절반으로 선생님을 제대로 마주한 순간 이탈리언 특유의 친화력으로 내 두 손을 꽉 잡으며 너무나 보고 싶었다고 하는 통에 마음이 몽글해지려는데 더불어 쐐기를 박았다
“이건 졸업장이고 이건 그동안 활동했던 사진들 앨범으로 묶은 거야, 중간중간 작품 활동했던 작품들도 있어”
언젠가 하원길에 아이의 어린이집에서 활동사진을 보여주길래 사진 전송 좀 받을 수 있겠느냐 물었더니 학기가 끝날 때 앨범으로 주겠노라 했다
한국에서 함께 아이를 키우는 친구들 보면 선생님들이 중간중간 사진 전송도 해주고 따로 올려주는 웹도 있는 걸로 아는데 솔직히 등원 이후 아무런 사진이나 영상조차 볼 수 없으니 대체 적응은 잘하고 있는지 답답했던 것도 사실이었다
학기 종료 후 사진 주겠다더니 아이의 사진 한 장 한 장마다 직접 손글씨로 코멘트 한 100% 핸드메이드 앨범인 거다
첫 장을 넘겨 빽빽하게 쓰인 곳에서 Caro Roi (귀여운 로이에게)라고 쓰인 첫 부분을 보는데 마음이 울컥했다.
고작 두 달, 하지만 적응기간으로 매일이 전쟁 같았던 두 달이었다.
아이는 학교가 처음이었고 우리 부부는 학부모가 처음이었다, 게다가 이탈리아 학교는 너무나 생소하여 이게 옳은지 틀린 지 나조차 가늠할 수 없었고 성인인 우리도 이렇게 낯섦에 힘든데 아이는 오죽할까 싶어 마음고생도 꽤나 했던 이방인 학부모의 길이 결코 쉽지 않았다
그런 우리의 첫 학교에서
나의 첫아이가 졸업을 하고 졸업장을 받았다
원장님을 뵙고 3월 분 원비에 대한 할인이라도 어찌했던.. 그 마음은 어느새 쏙 들어가고 더할 수 없는 감동만이 남았다
한 달치 원비로 졸업장 샀다치자!
나의 첫 아이의 첫 졸업장
우리의 첫 학부모 졸업장
이 것만 해도 그만한 가치는 충분하지 않겠는가
9월이면 아이는 얼렁뚱땅 유치원으로 레벨업 하여 등원하게 된다
마냥 과연 이번엔 무탈하게 잘 적응할 수 있을까? 싶다가 9월에 과연 등교를 할 수는 있게 될까?
학교는 문을 열까?
문을 열면 보내긴 해야겠지?
또 복잡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