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하고 설날에 만날 사람만 있으면 인생 숙제는 끝이다

인생의 숙제

by 봄날


하늘이 높아지고 아침저녁으로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바람이 차가워지더니 이제 제법 가을이 왔다. 이래 저래 집에 택배가 많이 오는 걸 보니 곧 추석이 다가오는 모양이다. 코로나 사태까지 겹쳐져서 이번 추석은 물류대란이 일어날 전망이라고 난리다. 택배 노조에서 배달하시는 분들 과로사하게 생겼다면서 배달 상품 ‘분류 작업’을 분류 작업 담당자를 채용해 대신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나름 추석이나 설 명절에 선물 배달을 많이 해 본 나는 그 말이 무슨 말인지 금방 이해가 가고 공감이 된다. 서울 외곽에 있는 물류센터에 지원을 나가서 배달 작업을 할 때 정말 놀라고 신기했던 일이 있었다. 그 많은 배달 상품을 가지고 제일 먼저 했던 일이 배달 전표를 보고 물류센터를 출발해서 배달하는 지역에 도착하면 처음 배달하고, 다음 순서대로 계속 배달을 마치고 돌아오는 순서대로 배달 전표와 배달할 상품의 순서를 맞추는 일, 즉 분류작업이다.


부용대


그리고 먼저 배달할 상품을 트럭에 배달할 순서대로 싣는 일을 한다. 오랫동안 물류센터에서 근무해오신 물류센터 직원 분께 배달할 지역의 배달 전표를 보여 드리고 부탁을 하면 이미 배달한 곳을 다시 가거나 유턴하는 일이 없게 기가 막히게 배달 전표의 순서를 잡아주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오랫동안 일해온 전문성에서 나오는 ‘생활의 달인’이었다.


지금처럼 내비게이션이나 택배 시스템이 없던 시절이라서 배달 가는 지역의 배달 전표와 배달할 상품을 순서대로 세팅하는 분류작업에 따라 최소 두세 시간은 절약할 수 있는 효율적인 일이었다. 그렇게 절약된 시간만큼 배달을 일찍 마치고 집에 도착해 가족과 함께 저녁을 먹을 수 있었다.


물류센터에서 오랫동안 배달 일을 해오신 분들은 서울의 모든 길과 아파트, 골목까지 훤하게 꿰고 있었던 것이다. 택배업에 종사하시는 모든 분들도 건강을 잘 챙기고 가족과 함께 따뜻한 저녁을 드실 수 있도록 그들이 요구하는 분류작업만큼은 별도 시스템이나 제도 정비가 있었으면 한다. 지금 코로나 시대에서 가장 고마운 사람들, 그들에게도 ‘저녁이 있는 삶’이 함께 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옥연정사

요즘 정치인들은 왜, 무엇 때문에 정치를 하고 있는지 한 번쯤은 스스로를 돌아보았으면 좋겠다. 서로 상대방의 허점이나 약점, 아픈 데를 후벼 파고 긁어내서 어떤 실리나 이익을 도모할지는 모르겠으나 유권자들의 큰 공감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그들에게는 하나마나한 소리겠지만 좋은 정책을 가지고 경쟁하고, 사회적 약자들을 위해서 그들의 아픈 곳을 어루만져주고, 그들의 고단한 삶을 위해서 미흡한 시스템이나 제도를 정비하고 입법하는데 힘써야 할 것이다.


정치란 누구의 도움 없이도 잘 먹고, 잘 사는 사람들은 별 필요가 없다, 오히려 성가시게 할 뿐이다. 힘없고 기댈 곳 없는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정치를 했으면 좋겠다. 명절이 다가오면 모두가 편안하고 행복한 명절이 되어야 태평성대라 할 수 있다.


하회마을

물론, 명절 차례 준비 전후의 가사노동에 대해 평등하고 공평한 분담이 이루어질 때를 전제로 해야 남녀 모두에게 태평성대가 될 것 같다. 지금까지의 전통적인 추석이나 설날 명절은 여성들에게만 일방적인 가사노동을 강요해 온 농경 시대로부터 전해 내려온 시대에 맞지 않는 문화일 뿐이다. 지금 맞벌이 시대의 도회적인 삶 속에서는 합리적이지도, 공평하지도 않아서 오히려 많은 부작용을 낳고 있다.


또한 우리들의 슬기로운 명절문화를 퇴색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여성들 특히, 며느리들이 명절이 다가오면 받는 스트레스가 없어지는 그날까지 개선되고 바꿔야 한다. 그런 면에서는 코로나 사태로 인한 자율적 이동제한으로 이번 추석명절이 그들에게 큰 위로와 휴식이 되었으면 좋겠다. 최근 어느 시골 마을 입구에 내 걸린 어르신들의 현수막 글귀가 생각난다.




“불효자는 니다”



추석이나 설날 같은 명절이 다가오면 바쁘게 살아가는 삶 속에서도 서로의 안부를 전하거나 가까운 사람들끼리는 꼭 한 번은 만나게 마련이다. 그중에서도 가족끼리는 차례를 함께 지내기도 하지만 꼭 함께 모여 명절을 보내는 것이 우리네 전통이고 삶이다. 이런 추석과 설 명절에 한 번씩 만나서 서로의 안부를 묻고 덕담을 주고받으며 맛있는 음식을 함께 나누어 먹는 것만으로도 또 다음 명절 때까지 살아갈 힘과 용기와 이유를 얻는다.


누구든 추석이나 설날 같은 명절에 만날 사람이라면 가장 소중하고 가까운 식구 같은 사람일 것이다. 추석이나 설날, 반드시 갈 때가 있고 꼭 만나야 할 사람이 있다는 것은 우리 인생의 숙제를 모두 끝냈다는 뜻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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