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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한국적인 것, 부조리.

영화인 이야기

by 봄날



"한국적인 것이 무엇이냐는 물음에 그가
‘부조리’라고 답한 게 굉장히 새로웠어요.
우리는 보통 한국적이라면 전통문화, 한의 정서 이런 것들을 생각해왔잖아요."


미국에서 『필름스 오브 봉준호(Films of Bong Joon Ho)』(럿거스대학 출판부)를 이달 말에 출간하는 이남(60) 채프먼대 영화과 부교수가 모 일간지 인터뷰에서 들려준 말이다.


영화는 일반적으로 어느 나라에서나 특히 사회의 부조리나 부패, 불합리한 그 시대상을 반영하고 비판적인 관점에서 영화를 만들고 사회에 반성과 비판의 화두를 던져주는 역할을 하곤 한다. 그래서 가끔은 독선적인 지도자에 의해 군부 독재 시대에나 있을법한 탄압을 받고, 블랙리스트에 오르고 불이익을 받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몇 해 전에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 ‘변호인’ 등의 제작에 참여한 많은 영화인이나 예술가들이 피해를 입기도 하고, 그 제작 및 투자사의 고위 임원은 해외로 망명인 듯, 망명 아닌, 망명 같은 생활을 위해 오랫동안 떠나 있어야 했다.


영화 ‘기생충’(2019,봉준호 감독)


올해 초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영화 ‘기생충’으로 최고의 영예인 작품상 수상 소감을 시상식 무대에서 마지막으로 하는 그녀를 보면서 감회가 남달랐다. 한국 영화에 대한 남다른 애정으로 한국 영화를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과 감독상을 수상하는데 큰 역할을 한 그녀였으니까 두말할 필요도 없었다. 물론 그에 대한 평가는 각자 다를 수 있겠지만, 그날만큼은 이견의 여지가 없어 보였다. 마음껏 축해해 주고 싶었다. 우리나라가 세계 경제 규모 10 대 대국일 뿐만 아니라, 이제 문화 선진국의 대열에 당당히 합류하는 그런 날이었다.


하지만, 이런 경제 및 문화 선진국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언론 신뢰도는 바닥이고 부패지수는 아직도 후진국 수준을 겨우 넘어서고 있으니, 봉준호 감독의 그 인터뷰 내용을 되새겨 볼 일이다. 지금 우리 사회의 부패와의 전쟁과 적폐 청산에 대한 강한 저항과 더디기만 한 속도를 보면 충분히 그의 말에 공감을 하게 된다. 그가 왜 세계적인 감독이 되었으며, 또한 왜 영화를 사랑하는 세계인들로부터 사랑받고 추앙받는지 이해가 된다.


비상하는 새


“봉준호 감독에겐 일관되게 한국사회를 관통한 눈이 있죠. 세월호 참사가 터졌을 때, ‘괴물’이 소환됐듯이. 그 희생자 가족들을 정부나 기관들이 대하는 태도가 ‘괴물’ 속 가족을 대하는 태도와 똑같았다는 거잖아요. 말도 안 되는 부조리한 이야기, 한국사회를 관통하는 시선이 그의 영화엔 있죠.”



그 이유는 사람 사는 세상은 어디나 오대양 육대주를 통틀어 보편적인 사회악과 부조리와의 전쟁이긴 마찬가지이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 사회 각 분야의 갈등에서 이해 당사자들은 국가와 사회를 위한다고 말은 거창하게 하지만, 그 갈등의 근원을 살펴보면 모두 돈과 관련된 지나친 탐욕 때문임을 알 수 있다. 남들보다 좋은 대학에서 공부하고, 해외 유학해서 타고난 저마다의 소질을 개발하고 인류공영에 이바지하지는 못할망정, 그 좋은 학습과 경험을 가지고 사실을 왜곡해서 표현하고, 사람마다 다른 ‘선택적 정의’와 ‘법과 원칙’을 적용하고, 그들의 의도를 감추기에 바쁘다.



그냥 어떻게든 부조리함이나 배타적 기득권을 유지해서라도 돈을 더 많이 벌고, 축적해서 부귀영화를 누리고 싶다고 쉽게 말하면 될 것을, 이런저런 핑계와 이유로 돌려서 말하니 알아듣기가 어렵다. 한편으로는 그 탐욕의 본질은 감추고 다른 말로 어렵게 표현하는 것을 보면 다행히 부끄러움은 아는 모양이다. 누군가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천박함은 인생의 재앙이고, 수치심을 잃은 것은 시대의 재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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