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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날 Jul 02. 2021

꽃이 지고 나서야 봄날이 간 줄 알았다

결혼 이야기


 어느 신혼부부가 삼 개월 만에 심각하게 이혼을 고려중이란 인터넷 글을 보고 왜 그래야만 했는지 궁금해서 클릭해 보았다. 그 이유는 연애할 때부터 모든 걸 반반 부담해왔는데 결혼을 하고서도 매사 반반 칼 같이 나누어서 하다 보니 갈등이 생겼고 그 문제 제기를 먼저 한 사람은 남편이란다. 시댁, 친정, 등 모두 정확하게 똑같이 하고 가사노동을 반반 나누는 아내랑은 더 이상 같이 못살겠다는 이야기였다. 물론 그 아내의 주장만을 옮긴 것이라 세세한 갈등의 디테일은 알 수 없다.



 결혼초에 아내랑 가장 많은 갈등의 원인이 되었던 문제가 퇴근하기 전에 저녁을 어떻게 할 건지 전화 한 통 없는 나에 대한 컴플레인에서 시작되었다. 늦은 오후에 아내는 내가 좋아하는 메뉴로 저녁 준비를 위해 시장을 보고 설레는 마음으로 퇴근을 기다리면 그날은 반드시 저녁 늦게 전화해서 회식이나 야근으로 귀가가 늦는다는 전화를 했던 것이다. 아내의 입장에서 보면 여간 맥 빠지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내가 정말 잘못했다. 아무리 핸드폰이 없을 때라고 해도 사무실 전화 한 통 하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물론 퇴근 무렵 예고 없는 상사의 회식 제안도 그 원인 중의 하나였다. 나름 특별한 사람이었으면 좋았겠지만, 어쩌면 그냥 그 당시에 회사 생활하는 남자들의 일반적인 모습이었다. 요즘 관점으로 보면 오롯이 가족을 부양하는 생계만 책임지면 되는 줄 알았던 젊은 꼰대였다.



 그때 잦은 부부싸움의 원인이 되었던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는 아내에게 한 가지 제안을 했다. 퇴근 전에 미리 오후 6시까지 저녁을 어떻게 하겠다는 전화가 없으면 나를 위한 저녁은 준비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오후 8시 이후에는 저녁을 먹지 않고 귀가를 하면 스스로 저녁을 차려먹든, 라면을 끓여 먹는 것으로 정리하고 문제를 해결했다.


 저녁 8시 이후의 시간은 아내가 주장하는 가사노동에 지친 전업 주부의 휴식시간을 지켜주고자 했던 나의 배려였다. 그 원칙에 따라 혼자 저녁을 스스로  차려먹을 때도 있었지만 조금도 서운해하거나 불만을 갖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그 약속을 존중하고 생활에서 실천해왔다. 그 후 오랫동안 가정의 평화는 유지되었지만 아내는 늘 아이들에게서 만큼은 예외였다.



 또한, 가끔은 회사 후배들에게 그런 내가 마치 매우 진보적인 생각과 행동을 하고 있는 것처럼 얘기하곤 했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부끄럽기 짝이 없고, 어쩔 수 없는 꼰대 문화의 세습 속에서 자신도 모르게 보고 배운 학습효과의 전형이란 걸 그땐 몰랐었다. 모든 삶의 태도는 그 시대의 정신과 환경 변화에 따른 자연스러운 상호 공감 속에서 출발해야 하기 때문이다. 꽃이 지고 난 후에야 봄날이 간 걸 아는 아쉬움처럼,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가 인생의 여러 봄날 중의 한때였다.



 앞에서 언급한 그 반반 신혼부부도 지금쯤은 연애와 결혼은 다르다는 그 말을 생생하게 실감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오랜 연애 끝에 결혼했다 한들 결혼은 어쩔 수 없이 매일매일을 함께 살아가는 생활인이기 때문이다. 그 결혼 생활로부터 파생하는 임신, 출산, 육아, 양육, 가사노동은 남녀, 아내와 남편처럼 분명하게 반반 나누어서 할 수 있는 경계란 있을 수 없고 서로 배려하고 협력해야 될 일뿐이다.


 연애할 때처럼 서로가 서로를 아끼는 만큼, 배려하는 만큼 무엇이든 니 일, 내 일 구분 없이 서로가 먼저 할 수밖에 없다. 처음 해보는 결혼생활에서 그 반반 신혼부부처럼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결혼생활에서 서로 협력하고 배려하지 않으면 그만큼 서로에 대한 상호 신뢰가 엷어지고 점점 금이 갈 수밖에 없다. 한번 금이 간 유리컵은 아무리 조심히 다룬다 한들 언젠가는 반드시 깨질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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