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볼 일 없는 삶(산책 예찬)
미세먼지 농도가 조금 내려간 오후, 가까운 서울숲으로 운전을 하고 산책을 나섰다. 날씨가 쾌청하고 햇볕이 좋은 날에는 집 근처 공원으로 산책을 나서곤 한다. 특별한 준비는 필요 없다. 편안하지만 맵시 있게 옷을 입고 집을 나선다. 나름 산책을 대하는 나만의 예의다. 무심한 듯 편하게 차려입지만 그렇다고 대충 아무렇게나 입고 집을 나서는 일은 없다. 운동삼아 매일 루틴 하게 하는 산책이 아닌, 가끔씩 계획하는 산책은 내게는 소중한 의식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다음 주 차가운 가을비가 내린다는 일기예보가 있어서인지 서울숲 주차장 진입로부터 대기차량이 줄을 서있는 게 보였다. 나는 바로 새로운 산책 장소를 찾아 워커힐을 향해 차선을 변경했다. 겨울이 지나고 따뜻한 봄날이 오면 워커힐 언덕의 벚꽃축제를 갈 계획을 하지만, 늘 교통체증을 생각하면 지레 겁을 먹고 그만두기를 반복했던 터라 조금 오래 걷고 시장기를 느낄 때 피자도 사 올 겸 워커힐을 대안으로 선택했다. 워커힐 주변의 단풍나무숲 산책로를 익히 알고 있는 것도 이유가 되었다.
가을엔 책을 몇 권 읽는 것도 좋지만 자연과 함께 혼자 산책을 하면서 사색을 하는 것은 그 이상의 효과를 낸다고 한다. 산책의 사전적 의미는 ‘휴식을 취하거나 건강을 위해서 천천히 걷는 일’을 말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몸의 건강을 위해서 만보 걷기를 하는 것과는 조금 차이가 있다. 산책은 오히려 마음을 릴랙스 하고, 어떤 일이나 근심을 흩뜨려 마음을 다스리고 많은 생각을 정리해주기도 한다.
티베트 속담은 잘 살면서 더 오래 살 수 있는 비밀은 “절반만 먹고, 두 배로 걷고, 세 배로 웃고, 한없이 사랑하라”라고 말한다. 그만큼 산책의 의미는 걷는 것만으로도 우리를 더 잘 살게 하고, 사색하면서 스스로의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을 갖고, 자신의 행동을 돌아보게 해서 스스럼없이 자신과 이웃을 사랑할 수 있게 만들어 준다. 특히 집 주변을 가볍게 산책하는 것도 좋지만, 일부러 짐(Gym)을 찾아 운동을 하듯 계절마다 자연의 변화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곳을 일부러 찾아가서 산책을 하는 것이 더 좋다.
이제 차가운 가을비가 내리고 나면 찬란했던 단풍도 하나 둘 떨어지고, 우리는 곧 초겨울을 맞이하며 가을과는 이별을 해야 한다. 매일의 바쁜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는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이 오고 가는 무심한 듯 시크한 계절의 변화와 소소한 풍경들을 놓치고 사는 것이 일반인의 삶이다. 그래서 때로는 그냥 그렇게 매일매일의 하루를 다람쥐 쳇바퀴 돌듯 한치의 여유도 없이 루틴 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볼 때, 우리는 ‘별 볼 일 없이 산다’고 말한다.
가끔은 계절에 따라 구름 한 점 없는, 또는 하얀 뭉게구름이 수놓은 하늘을 무심하게 쳐다볼 때도 있긴 하지만, 일부러 시간을 내서 밤하늘의 별을 보고 사는 일은 드물기 때문이다. 하지만, 별 볼 일 있게 살던 어린 시절에는 밤하늘을 올려다보고는 북두칠성의 별자리를 찾던 시절이 누구에게나 있다. 아마도 힘든 세상에 맞서 치열하게 생활하면서 동심을 잃은 탓도 있지만, 도시 생활을 하다 보면 미세먼지 등 공해로 인해 밤하늘에서 별을 찾기란 말 그대로 하늘의 별따기와 같다.
이 가을이 가고 겨울이 깊어지기 전에 가까운 서울 근교에 있는 천문대로 밤하늘의 별을 보러 떠나야겠다. 이른 저녁에 도착해서 천문대 주변을 산책하며 가을을 떠나보내고, 늦은 밤 새벽 공기가 싸한 바람을 맞으며 보석을 뿌려 놓은 듯 수없이 반짝이는 밤하늘의 별들을 바라보며 잃어버린 동심도 찾아오고, ‘밤하늘의 트럼펫’을 들으며 ‘별 볼 일 있게’ 사는 나 자신과 마주하고 싶다, 세상에 태어나서 무엇이 되는 것보다, 무엇을 하고 사는지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