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이 어디 있어요, 다 이유가 있지

평가와 판단

by 봄날


며칠째 온화하던 날씨가 갑자기 찬바람이 불면서 추워진 날씨에 저녁 무렵, 아내가 일용할 양식을 구하기 위해 옷을 차려입고 집을 나섰다. 아내가 나간 후 거실에서 음악을 들으며 책을 읽고 있던 나는 부엌으로 가서 점심에 삼겹살을 구워 먹고 난 후 싱크대에 쌓여있는 설거지를 하기 시작했다.


가끔은 설거지하는 게 즐겁기도 하지만 시스템 부엌에 부착된 라디오 음악을 들으며 설거지를 하고 나면 머리가 맑아지고, 무언가 가사노동을 함께 했다는 보람이 있어 좋다. 한 가지 불편한 것은 싱크대가 여자들의 키높이에 맞게 설계되어 있어 설거지를 할 때마다 허리가 아픈 게 문제긴 하지만 그리 긴 시간이 아니니 참을만하다.



추운 날씨에 밖에 나가 저녁 먹거리를 사 온 아내가 부엌에 여러 가지 쇼핑백을 내려놓고 싱크대의 설거지거리가 정리된 걸 보고 한마디 한다.


“설거지는 왜 했어요? 당신, 나이 들면서 내 눈치 보는 거예요? 난 그런 거 싫은데”


“아니 그냥, 내가 눈치 볼 게 뭐 있어요? 당신이 추운 날씨에 시장 보러 나갔는데 나도 점심 먹은 설거지 정도는 해야죠.”


“ 여보, 근데 깨끗하게 제대로 한 거예요? 나 대충 하는 거 싫어하는 거 알죠.”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품위 있게 쉬려다가 기껏 설거지를 해놓았건만 칭찬은커녕, 설거지에 대한 평가를 당하니 마음이 불편했지만 배운 사람답게 행동했다. 언젠가 아내가 했던 말 때문에 가사노동을 도와주는 게 아닌, 내가 함께 해야 할 일이라는 생각으로 태세를 전환했기 때문이다. 아니, 어쩌면 아내한테 가스라이팅을 당한 건지도 모르겠다.


오래전, 아내가 늘 집안을 깨끗하게 유지하고 정리정돈을 잘하는 것에 대해 ‘프로 전업주부’라며 매우 칭찬을 했던 적이 있었다. 그때 아내가 정색을 하면서 말했다. 아마도 오랫동안 가지고 있었던 생각 같았다.



“여보, 당신은 뭔데 집안일을 함께 할 생각은 하지 않고 맨날 나를 평가하고 판단하는 건데.”


라며 크게 무안을 준 적이 있다.


할 말이 없었다. 듣고 보니 정말 맞는 말이었다. 무의식적으로 세습되어온 꼰대 의식이 가사노동을 젠더 역할로 고착화시킨 결과였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가사노동을 반반 나누거나 역할을 교대할 순 없지만, 중요한 것은 최소한 마음속에 “돕는다”는 생각은 하지 않기로 했다. 가사노동을 돕는다고 생각하면 내 일도 아니고, 그날그날 기분에 따라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니 지속 가능한 일도 아닌 것이다.



회사 일도 마찬가지다. 일을 찾아서 하지 않고 시키는 일만 하다 보면 내 일처럼 하지 않게 되고 창의성과 자율이란 없다. 시키는 일을 하더라도 내게 맡겨진 내 일이라고 생각해야 더 잘 해내려는 동기가 부여되는 것이다. 그처럼 가정이든, 회사든 함께하지 않고 어떤 일을 평가와 판단만 하게 되면 결국엔 쓸데없는 충고나 조언만 하게 된다. 직접 해보지 않으니 진심이 없고, 그 일에서 오래갈 수도 없다.


그래도, 내가 한 가사노동이 당연한 일일지라도 아내가 평가와 판단보다는 그냥 칭찬을 많이 해주면 좋겠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데, 사실이다. 가사노동에 대한 ‘회피적 동기’보단 ‘접근적 동기’ 부여가 지혜롭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래야만 스스로 즐겁게 지속 가능할 수 있다. 회사 일도, 아이들의 교육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예를 들면 같은 설거지를 하더라도, 추운 날씨인데도 불구하고 시장을 다녀온 아내가 싱크대에 설거지가 그대로 쌓여 있고, 내가 세상에서 가장 편한 자세로 소파에 누워 클래식 음악을 듣고 있는 걸 보면 열 받지 않을까( 회피 동기) 하는 생각이 들어 설거지를 하는 것보단, 시장을 다녀온 아내가 내가 한 설거지를 보고 기뻐하며 나를 칭찬하겠지(접근 동기)하는 생각으로 설거지를 하도록 만드는 것이 슬기로운 남편 사용법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