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소고
추운 겨울이 지나고 따뜻한 봄바람과 함께 일기예보에서는 먼 남쪽에서부터 보리의 새싹이 돋고, 꽃이 피는 봄소식을 하루가 멀다 하게 전해주고 있다. 겨우내 부족한 운동도 할 겸, 움츠러들었던 몸도 챙길 겸 여행을 떠날 날이 다가오고 있다. 아내와 국내 여행을 다니다 보면 몇 가지 불편한 진실을 마주할 때가 많다.
첫째, 우리나라가 선진국에 진입했다고는 하나 아직도 호텔 등 여행 인프라에서는 한참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특히 특별시, 직할시가 아닌 작은 도시는 잠잘만한 호텔이 부족하고 여행 앱에서 어렵게 찾는다 하더라도 청결도나 부대시설이 미흡한 곳이 많다. 뭐 대단한 잠자리를 찾는 것은 아니지만 여행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집 같은 편안함과 안전하고 맛있는 음식이기 때문이다.
둘째, 음식에 관한 것이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 미리 인터넷 검색을 통해 소개된 맛집을 찾아가는 경우, 한 번도 그 소개 글처럼 맛난 음식을 제대로 먹어본 적이 없다. 초심을 잃고 몰려드는 손님을 대하는 태도는 불친절하기 짝이 없고, 음식과 반찬들은 고객중심이 아닌 효율 중심으로 미리 준비해 놓은 것들이 전부다. 음식은 정성과 손맛이다. “나는 맛있는 것을 먹고 싶은 건 참을 수 있지만, 맛없는 건 절대로 안 먹는다”는 박완서 작가의 글이 생각난다.
마지막으로, 특정 지역과 그 특산물을 명시하여 편견을 가지게 할 필요는 없기에 예시할 수는 없지만, 지방의 유명 특산물 산지마다 그 도시나 마을 입구에 전혀 창작의 고민이라고는 1도 찾아볼 수 없는 그 특산물을 허접하고 크게만 만들어 놓은 조형물을 만날 수 있다. 둘러보기도 전에 그 지역에 대한 편견을 먼저 만들어주니, 별 흥미가 안 생긴다는 것이다. 여행은 편견의 확인이 아닌, 그 편견과의 대결이기 때문이다.
이제 지방 살림살이도 좀 나아졌을 테니 굳이 설치할 거면 디자인 전문가들에게 기획과 자문을 좀 받았으면 좋겠다. 나는 유럽의 어느 도시에서 오렌지가 많이 난다고 해서 거대한 오렌지 조형물을 본 적이 없다. 단지, 거리의 가로수가 오렌지 나무일뿐이다.
특정 해산물이 많이 난다고 바닷가 도로에 그 해산물이 얹힌 대형 아치, 무슨 과일이 유명하다고 도시 입구에 거대한 그 과일 조형물, 어떤 물고기가 특산물이라고 바다 한가운데에 흉물스러운 철골 물고기를 세워놓았다. 한 가지 공통점은 있다. 주변과 너무 안 어울리게 조잡하고 크기만 대형이다. 하지만 세상은 양(quantity)에서 질(quality)로, 이젠 격(class)의 시대가 되었다.
“손님이 오지 않으면 천사도 오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선진국이라고 하면서 생각은 이제 겨우 후진국을 벗어난 정도의 식견으로는 문화강국이 되기 어렵다. 작은 나라에서 그리 필요도 없는 선거용, 선심성 지방공항, 도로, 다리는 이제 그만하면 충분한 것 같다. 각 지역마다 전통과 역사, 문화에 기초한 격조 있는 관광 인프라 구축에 더 투자할 필요가 있다.
검이불루 화이불치 (儉而不陋 華而不侈),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다."는 말처럼 지역의 특성과 문화에 맞는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게 유럽의 어느 작은 마을처럼 기품과 품격이 있는 시설과 조형물, 그리고 거리의 디자인이 살아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