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인장 단상
거실 책상에 앉아 노트북으로 뉴스도 보고, SNS를 통해 세상 돌아가는 소식도 보고, 또 가끔은 브런치에 올리는 글을 쓰기도 한다. 언젠가부터 컴퓨터 옆에 선인장을 놓아두면 전자파를 흡수해서 이롭다는 얘기가 생각나서 작은 선인장 화분을 하나 올려놓게 되었다.
그 선인장은 책상의 품위도 높여주었고, 전자파를 빨아들여서 제 역할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 년이 넘게 잘 자라주었다. 그냥 그렇게 잘 지냈는데 어느 날 문득, 그 선인장이 너무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물을 흠뻑 주었다. 몇 주 지나고 연이어 또 고맙다며 물을 주고는 일주일 후, 무언가 선인장이 힘들어하는 게 보였다.
선인장의 생육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조심조심 선인장에 손을 대는 순간 선인장은 힘없이 쓰러지고 말았다. 놀란 나머지 선인장을 자세히 살펴보니 뿌리가 썩어있었다. 아쉽지만 오랫동안 제 역할을 다했으니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다시 건강해 보이는 새로운 선인장을 사 와서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지난번 선인장을 그렇게 보낸 건, 사랑과 관심이 부족했다고 생각한 나머지 새로 사서 올려놓은 선인장은 사랑을 듬뿍 주고 매일매일 쳐다보며 관심을 쏟았다. 새로 사 오자마자 일단 물부터 한번 흠뻑 주고 책상에 올려놓았다. 그렇게 이 주일쯤 지났을 때 결국 그 선인장도 삼 주일을 못 넘기고 똑같이 뿌리가 썩고 허물 허물해져서 죽고 말았다. 과유불급, 선인장의 물 주기를 학습하지 않은 게으른 주인의 잘못이다.
처음 연애를 할 때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상대에게 사랑과 관심을 표현하면 할수록 상대방은 어느새 당연한 권리인 줄 알게 되고, 기대와 달리 시간이 지나면서 그만큼 더 멀어져 있는 모순을 겪는 수가 종종 있다. 그 이유는 지나침을 경계하지 않은 탓이다. 맛있는 음식을 맛보려면 차분히 기다릴 줄도 알아야 한다. 늘 그렇게 온 마음을 다해 진심으로 다른 사람을 대하는 사람이 상처받기 마련이다.
어느 유행가 가사를 떠올리지 않아도 사람은 누구나 좋아하는 사람 앞에만 서면 작아지는 경향이 있다. 호감이 가는 사람에게 잘 보이고 싶기 때문이다. 모순, 여자들은 그런 남자들이 자신감이 없어 보이고, 남자들은 그런 여자들이 내숭을 떤다고 오해한다.
하지만, 잘 보여야 할 이유가 없는 사람 앞에서는 긴장할 이유도, 내숭을 떨 필요도 없다. 누군가 아님 말고, 괘념치 않고 행동할 뿐인데 그걸 또 좋게 보는 사람들이 있다. 선택은 자유지만 최소한 상대방의 진심은 알아주어야 연애에 대한 예의다.
연애를 많이 해본 사람은 상관없겠지만, 설레는 연애 상대를 만난 사람은 그 마음을 감추기 어렵다. 연애 상대방에게 자신의 모든 사랑과 관심을 표현하며 과속하게 된다. 가끔은 모순적이게도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어느 순간, 그 연애에도 세상의 일처럼 갑을 관계가 존재하게 된다. 1%라도 더 좋아하는 쪽이 을이 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초심을 잃고 상대방을 내 취향과 스타일에 맞추려는 행동, 그런 나쁜 연애일수록 시간이 지나가면 감정은 사라지고 오롯이 결과만 남는다.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까지 읽을 필요는 없지만 최소한의 학습은 필요하다. 사랑의 기술이라고 표현했지만 그 기술은 결국 진심일 뿐이다. 처음 느껴본 셀렘과 사랑의 감정을 가지고 연애를 잘 경영해 보고 싶다면, 연애에 대한 학습은 물론이다.
“어떤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결코 강렬한 감정만은 아니다. 이것은 결단이고 판단이고 약속이다.”
(에리히 프롬)
또한, 모든 연애가 영화나 드라마 같지 않을뿐더러, 연애를 포함한 모든 인간관계는 일회성 사냥이 아니라 성실하게 농사를 짓는 경작관리와 같다.
특히, 경험이 없고 처음 하는 연애일수록 선인장 키우기처럼 시작할 필요가 있다. 연애를 많이 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물론 쉽지 않은 일이다. 갑자기 다가오는 연애일수록 더더욱 그렇다. 모처럼 찾아온 연애에서 진심 어린 마음을 주고 깊은 정을 받았다고 해서, 내 모든 것을 걸어버리는 깊은 사랑의 수렁에 빠지지 않기를 바란다. 연애도 하나의 삶의 과정일 뿐, 인생의 전부는 아니기 때문이다. 삶이란 무엇인가 끊임없이 흘러 보내는 것이다.
내가 누군가를 만나고 연애할 자유처럼, 또한 상대방도 누군가를 만나고 헤어질 권리가 있음을 동시에 잘 이해하고 있다면 연애를 할 수 있는 기본 자격이 되는 것이다. 함께 하는 동안 최선을 다해 사랑하고, 서로의 눈빛이 엷어지는 날이 온다 하더라도 자존감만큼은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연애는 둘이 함께해야 시작할 수 있지만, 이별은 어느 한 사람이 결정할 수 있다. 뒷모습이 깨끗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는 것만이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다. 모든 사랑과 연애에 헛수고란 없다. 좋았다면 아름다운 추억이고 나빴다면 좋은 경험이 될 뿐이다. 좋은 사람을 만나려면 내가 먼저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 끼리끼리는 과학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더 나은 상대를 고르려고 하지 말고, 당신을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줄 수 있는 상대를 선택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