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n’t look back!!
가을이 시작되면서 오랜만에 근교의 연천 평화누리길을 트래킹 겸 산책을 다녀왔다. 오래간만에 10km 가까이 걸었던 탓인지 늦잠을 잤다. 그리고 브런치를 챙겨 먹고 채널을 돌리다가 우연히 유퀴즈 프로그램 재방송을 보았다. 미국 뉴욕 맨해튼의 극장가인 브로드웨이 44번가의 ‘스타라이트(Starlite) 델리’라는 샌드위치와 커피 등 간이 음식을 팔던 이 식당의 한인 사장 김정민(71)씨의 이야기였다.
뉴욕 브로드웨이 극장가에서 39년간 샌드위치 가게를 운영한 그가 마지막 영업을 하던 날, 가게 앞에서 단골 고객들이 그의 은퇴식을 열어주었다. 주위에는 브로드웨이 배우와 극단 관계자 등 단골 수십 명이 박수를 치며 눈시울을 훔쳤다. 그 가게의 영업 종료를 앞두고 단골들이 작별을 고하며 그의 새로운 출발을 축하하기 위해 일부러 찾아온 것이었다.
TV화면은 브로드웨이 단골들이 김 씨 부부를 위해 미국에서 작별할 때 상대방의 행운을 비는 의미로 부른다는 노래, ‘해피 트레일(Happy Trail)’을 합창하고 각자 감사의 뜻을 적은 커다란 액자를 선물했다. 또한, 은퇴 선물은 펀딩으로 모금한 1만 7839달러(약 2400만 원)를 김 씨 부부에게 전달했다.
이들의 가슴 뭉클한 이별 장면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널리 퍼졌으며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던 모양이었다. 나 역시도 그의 아내와 함께 유퀴즈에 출연해 대담을 하던 그분의 선한 얼굴을 바라보면서 그분이 살아온 삶을 유추할 수 있었다. 단순히 뉴욕 한복판에서 샌드위치 가게를 오래 운영해 왔다고 뉴스가 되진 않는다.
그분이 그 가게를 통하여 고객과 이웃들에게 얼마나 많은 선행을 베풀었으면, 또한 그 이웃들을 진짜 가족처럼 생각해 왔는지는 계속되는 인터뷰 내내 확인할 수 있었다. 팬데믹 때는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노숙자들에게 샌드위치를 나눠주었고 높은 임대료, 고령에 따른 체력문제로 은퇴를 했다고는 하지만 그분은 삶의 철학자였다.
“그는 우리를 먹여 살린 형제이자 친구이다 “, “여긴 점심 이상의 것이 있다. 마치 가족, 친구 집을 방문하는 것 같다 “라는 단골들의 멘트가 아니더라도 50km 떨이진 롱아일랜드에서 뉴욕 도심까지 매일 새벽 4시 반에 출근하고 12시가 넘어 귀가하는 39년간의 고된 삶에도 불구하고 이웃을 가족이나 친구처럼 대할 수 있었던 힘은 그분의 긍정정신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우리가 빨간 신호등을 기다릴 수 있는 것은 곧 파란 신호등으로 바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분의 삶을 생각하면 저절로 고개가 숙여지고,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일을 대하는 태도에 있어서 좋은 롤모델이 될 것이다. “한때 이 땅에 살았다는 것으로 인해 단 한 사람이라도 살기 수월했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성공이라는 에머슨의 시처럼 살았으니, 이제 앞으로는 소원하던 잠도 푹 자고 자신을 위한 새로운 삶을 영위했으면 하고 박수를 보냈다. 그러나 그는 유퀴즈 인터뷰에서 가게 문을 닫고 난지 이주일만에 벌써 그 가게가 그리웠다고 말했다.
그 가게 앞 은퇴식 때 고객들이 불러주었던 그 노래의 가사처럼 “Happy trails to you, until we meet again”, 그 단골들과 우연히라도 다시 만날 때는 새롭고 행복한 삶의 여정이 함께 하기를 기원했다. 그만하면 이미 충분히 성공적인 삶을 살았으니 그 샌드위치 가게를 운영할 때의 희로애락은 뒤돌아보지 말고 새로운 삶, 행복의 길로 나아가기를 응원했다. Don’t look back!!, 그 어떤 일이라도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을 뿐이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땄든, 총리를 했든, 노벨상을 수상했든, 그 후에도 삶은 계속된다. 사회생활을 할 때 무슨 일을 했든 학력과 경력에 관계없이 일에서 은퇴하면 모든 것을 내려놓고 평소 꿈꾸었던 자신의 삶을 즐기면서 매사 감사하게 생활할 일이다.
일은 삶의 과정일 뿐 목적은 아니다. 어느 분야에서 일을 했든 마지막 정점의 화려했던 시절을 그리워하고 자꾸 뒤돌아보는 것은 지금의 자신을 더욱 초라하게 만들 뿐이다. 인생은 어느 한순간도 우리에게 소중하지 않은 순간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