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 말하는 대로
언젠가 음악 프로그램, 불후의 명곡에서 노래했던 배우 최대철의 ‘겟세마네’를 듣고 난 후 그의 팬이 되었다. 어느 월요일, 저녁을 먹고 거실에서 저녁 9시 뉴스 대신 ‘뜨거운 싱어즈’란 프로그램을 보면서 최대철의 노래 순서가 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연히 보게 된 ‘뜨거운 싱어즈’ 첫 편에서 불렀던 배우 나문희 선생님의 ‘나의 옛날이야기’와 김영옥 선생님의 ‘천 개의 바람이 되어’를 듣고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들의 노래에서 상상이 되는 장면들이 다시 떠오른 탓이었지만, 나이 들면서 여성 호르몬이 과분비된 탓도 있다고 생각했다.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배우 최대철은 그의 삶의 서사와 함께 ‘그것만이 내 세상’을 감동적으로 소화해서 주변을 놀라게 했다. 다음은 그 옆에 앉아 감탄해 마지않던 배우 우현의 순서가 되었다. 무대에 올라 하얀 가죽 재킷을 갈아입고 감정을 잡은 후, 같은 연세대 출신의 가수 박진영의 노래 ‘날 떠나지 마’를 경쾌한 리듬에 맞추어 춤과 함께 열정적으로 무대를 장식했다.
그는 1987년 6월, 연세대 교문 앞에서 이한열 열사의 영정을 든 우상호 학생회장(국회의원) 옆에서 태극기 깃발을 들고 서 있는 앳된 소년 같은 사진 한 장으로 그를 기억하는 우리 모두에게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영화 ‘1987’(2017, 장준환 감독)에서 그는 아이러니하게도 서울대생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은폐하는 치안본부장 역할을 맡아 화제가 되기도 했다.
지금의 미얀마 군부 같았던 시절, 격동의 시대 그 한가운데 서있었지만 그와 다르게 대학시절을 보냈던 나는 약간의 부채 의식과 함께 그가 성공하기를 응원해왔다. 하지만 그 엄혹한 시절,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도서관에서, 현장에서 또는 고시원에서 치열하게 생활했던 많은 사람들을 차별하지는 않는다. 다만, 우리들의 뜨거운 열정의 대상이 서로 달랐을 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의 노래를 들으면서 최근에 무언가에 저렇게 뜨거웠던 적이 있었는지, 아니면 어떤 것에 저렇게 열정적이었는지 돌이켜보게 되었다. 코로나 사태를 핑계 삼아 안전과 안락함에 집착한 결과, 어떤 대상에 대한 열정마저도 식어버린 느낌이 들었다. 1987년 민주화 운동과 이젠 배우로서 무대에 선 우현, 언제나 자신의 삶에 치열하고, 열정적인 그의 노래를 들으면서 짧은 순간이었지만 많이 반성했다.
물론, 나이가 들수록 감당할 수 없는 열정은 치명적인 노욕을 부르기도 하지만,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조금씩 세상살이에 열정을 상실해 가는 것이 아닌가 싶다. 무언가 대단한 것도, 어떤 새로운 것도 크게 흥미를 느끼지 못할 때가 있다.
하루도 빼놓지 않고 세상에서 일어나는 사건, 사고에 크게 놀라지도 않을뿐더러 유난을 떨지도 않는다. 자유는 더 늘었지만 열정은 조금씩 줄어들고 있는 느낌이 든다. 책은 적게 읽지만 텔레비전은 더 많이 본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뉴스는 더 적게 본다.
하지만, 아직도 매일매일 이런저런 꿈을 꾸고, 하루하루 이것저것 계획을 세우며 살고 있다. 가고 싶고, 보고 싶고, 하고 싶은 게 너무 많다. 누구라도 타고난 재주나 좋은 스펙이 없으면 뜨거운 열정이라도 불태워야 한다. 그 열정마저도 없으면 겸손하고, 눈치라도 있어야 한다. 내가 얻고자 하는 것만큼, 내 소중한 것을 내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등가교환의 법칙, 세상에 그저 주어지는 것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