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노래
작년 연말부터 우리의 정치 현실을 감안하면 뉴스보다는 오락, 예능 프로그램을 챙겨 보면서 한 번이라도 더 웃고, 세상의 변화를 받아들이며 재미있게 살기로 했다.
최근, 어느 글에서 읽었던 92세 할머니가 살면서 가장 후회했던 것이 “마지막에 웃는 놈이 좋은 인생인 줄 알았는데, 자주 웃는 놈이 좋은 인생이었어”라는 글을 읽고 더욱 확신이 섰다.
JTBC의 ‘뜨거운 싱어즈’에서 남자 출연자들만 모여 중창 무대를 만들기로 하고 선택한 곡, 조용필의 ‘바람의 노래’를 듣고 젊은 날의 사진을 보면서 그때의 자신에게 편지를 쓰는 장면이 있었다. 그중 특히, 배우 최대철의 편지가 인상적이었다. 20대 후반에 아내와 찍은 사진을 보고 그 철없던 시절을 회상하면서 그가 말했다.
배우의 꿈을 꾸며 가정을 돌보지 않고 극단에 다닐 때,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아내는 늦은 시간에도 그를 맞이하면서 꼭 “수고하셨어요”란 인사를 잊지 않았다고 했다. 어느 늦은 밤, 아내의 그 수고했다는 말에 어울리지 않게 밖에서 시간을 보내고 온 최대철은 아내의 그 인사말을 듣고 난 후 크게 뉘우쳤다고 했다. 거짓말과 약속을 지키지 않는 쓰레기 같은 자신을 소각장이 아닌 재활용하게 만든 아내에게 고마움을 표현해 훈훈한 감동을 주었다.
그의 얘기를 듣고 난 후 문득 아내를 바라보며 스스로를 돌아보았다. 격동의 80년대 중반에 대학을 졸업한 후, 막연히 외형 매출이 한국에서 최고인 그룹에 입사하고, 결혼하고, 생활인이 되었다. 몇 년 전세살이 후 한참 신도시로 개발되던 서울 외곽에 십 평대 후반의 내 집 마련을 하고 살았다. 직장생활은 어떤 꿈을 이루겠다는 생각보단 생계를 위한 것일 뿐이었다.
회사 생활은 생각보다 많이 힘들었고 다른 업종으로의 전직과 누구의 지시도 받지 않는 카페나 서점 같은 자영업을 곁눈질하곤 했다. 회사에서 받은 스트레스로 날카로울 때는 별일도 아닌 것으로 독박 육아와 가사노동에 지친 아내와 싸우기도 했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던 중, 또 아내와 부부싸움을 하고 며칠 후 먼저 화해를 청한 아내가 대화 끝에 말했다.
아내의 그 말을 듣고 너무 부끄럽고 창피해서 몸 둘 바를 몰랐지만 큰 깨달음을 얻는 순간이었다. 그 이후로 다른 일에 한눈팔지 않고 회사일에만 집중했으며, 쓸데없는 부부 싸움으로 아내를 더 이상 힘들게 하지도 않았다.
상처 없는 영혼이 어디 있겠는가, 모든 것은 금이 가기 마련이다. 하지만, 빛은 거기로 들어온다. ‘바람의 노래’처럼 누구라도 보다 많은 실패와 고뇌의 시간이 비켜갈 수는 없다. 담보할 수 없는 내일의 행복을 위해 오늘을 망치지 말고 매일매일을 닥치는 대로 행복하게 살아갈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작은 일에도 기뻐하고, 지금 누릴 수 있는 행복에 감사하면서 사는 게 최고의 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