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진실
트위터에서 팔로잉하며 그의 글을 읽고 클래식 음악과 좋은 책을 고르는데 많은 참고를 하고 있는 어느 아파트 경비원분께서 트위터 글을 올리셨다. 그분처럼 퇴직하고 아파트 경비원으로 일하는 친구가 동료와의 갈등으로 경비원 일을 그만두었다고 했다.
아파트 경비원으로 근무한다고 하면 입주자의 갑질을 떠올리지만 실제로 현장에서 느끼는 가장 큰 어려움은 교대하는 동료와의 갈등이라고 한다.
문득, 지금의 아파트로 처음 이사 와서 만났던 매우 친절했던 경비원분이 생각났다. 출퇴근할 때마다 만나면 늘 먼저 반갑게 인사를 했다. 그분을 뵈면 덕분에 유쾌하게 하루를 시작할 수 있었다. 고마운 마음에 아파트 경비원분들께 명절 때면 회사 직급에 관계없이 늘 사례를 해왔지만, 특히 가정형편이 좋아진 이후로는 더욱 넉넉하게 감사의 인사를 했다.
이사를 온후 몇 년이 지난 어느 날, 그 친절했던 경비원분이 일을 그만두었다. 들리는 얘기로는 함께 교대하는 조금 무뚝뚝한 경비원 분과 많이 다투었다고 했다. 다툼의 이유는 자신과 달리, 그분이 아파트 주민들께 더 친절해서 사랑을 독차지한다는 불만에서 비롯되었다고 했다.
세상은 언제나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것이 사실인 것처럼 보였다. 그 사건 이후로도 얼굴을 익힐만하면 새로 부임한 경비원분이 바뀌곤 했다. 그처럼 세상은 언제나 내가 아는 것이 전부가 아니고 일부일 뿐이었으며, 내가 아는 것과 느끼는 것 사이에는 늘 갈등이 존재했다.
회사가 임대해서 사용하던 여러 빌딩 중, 내가 근무하던 빌딩에서 가장 높은 직급이 되었을 때 사무실을 청소하시는 아주머니들과 경비원분들께 명절은 물론이고 틈틈이 이것저것 특별히 챙겨드리곤 했다.
오래전 내가 함께 일했던 직장 상사가 늘 그렇게 하셨다. 다른 사람을 존경하는 것이 처세의 첫 번째 조건이지만, 그렇다고 그분을 특별히 존경하지는 않았다. 그분은 언제나 청소하시는 아주머니와 경비원분들께는 평소 우리한테는 좀처럼 보여주지 않았던 환한 미소와 상냥한 인사를 잊지 않으셨다.
돌이켜보면 ‘태도가 본질’이라는 말씀을 하셨던 것 같다. 언젠가 회사 후배로부터 우연히 청소하시는 아주머니들에 관한 불편한 진실을 알게 되었다. 가끔은 회사에서 용도가 없는 샘플이나 사은품을 이른 아침에 사무실에서 열심히 청소를 하고 있는 아주머니를 뵐 때면 드리곤 했다.
어느 날 회사 후배가 그런 나를 보고 말했다. 그 청소 아주머니에게 드려도 어차피 집에 가져갈 수 없고, 지하에 마련된 미화계 휴게실에 가져가서 제일 선임 아주머니에게 신고해야 한다고 했다. 그 선임 아주머니는 그렇게 모아진 상품들을 자신이 우선 챙기고 난 후, 나머지를 다른 청소 아주머니들께 배분해 준다고 했다.
잘 알지 못했던 불편한 진실을 알고 나서 이문열의 소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의 엄석대가 세상 도처에 있다는 슬픈 현실을 조금이나마 파악할 수 있었다. 그 후 항상 뽀글이 파마를 하고 양손에 금반지를 몇 개씩 하고 다니던 그 선임 청소 아주머니를 보면 엄석대가 생각났다.
그들만의 리그에서 존재하는 위계질서와 생활 방식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내가 이렇다, 저렇다 평가하고 판단할 일은 아니었지만 그런 사실이 너무 슬펐다. 어쩌면 우리가 살고 있는 모든 곳에서 흔하게 일어나고 있는 기득권 지키기의 민낯일지도 모른다.
내가 함께 생활하고 있는 세상에만 갇혀서 세심하게 주변을 돌아보지 못한 내 잘못인 것 같았다. 내가 팔로윙하고 있는 그 경비원분 말씀처럼 사람은 참 어렵고, 관계는 더 어렵다. 하지만 우리는 하느님 앞에서 모두 어린이이며 평등할 뿐이다.
나이를 먹으면서 나는 점점 사람을 잘 믿지 않게 되었다. 가장 변하기 쉬운 것도 사람이고, 가장 변하지 않는 것도 사람인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TV 화면에서 정치, 경제, 사회 분야의 많은 사람들이 순수했던 초심을 잃고, 자신의 이해관계를 위해 영혼을 팔고 있는 비루한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늙는 것은 슬퍼할 일이 아니지만, 정말 슬퍼할 일은 늙어서 부끄러움을 모르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좋은 모습일 때는 좋은 모습으로, 나쁜 모습일 때는 나쁜 모습으로, 지금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바라보려고 노력한다. 특히, 오래 함께 생활한 적이 없고, 내가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일수록 더욱 그렇다. 믿었던 사람에게, 기대했던 사람에게 실망하지 않기 위한 나만의 방어기제가 되었다. 기대가 없으면 실망도 없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