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이 아무런 의미도 없는 단어일 때가 종종 있다

Fear or Love

by 봄날


아내가 쓰레기 분리수거를 다녀오는 길에 아파트의 중년 아주머니를 만난 얘기를 했다. 오랜만에 만난 그분이 반갑게 인사를 하면서 그 짧은 순간에도 왜 딸을 빨리 시집보내지 않느냐고 걱정을 했다고 한다. 또한, 그 얘기를 전하면서 최근에 읽은 어떤 글에서 첫 출산을 마친 며느리에게 시어머니가 산후 조리원에 찾아와서는 “내가 얼굴에다 힘주지 말라고 그랬지?”라고 말했다며, 오래전 출산의 기억을 소환해서 한참을 웃었다.


그때는 잘 이해를 못 했지만, 아내가 아이를 출산하고 후일담이라며 내게 해 준 말이 있다. 의사 선생님이 얼굴에 힘을 잔뜩 주고 있는 아내를 내려다보며 얼굴에 힘주지 말고 배운 대로 힘을 주라고 했다며, 처음 아이를 출산했을 때의 경험과 고통을 재미있게 말한 적이 있었다.



아마도 그 시어머니는 얼굴의 실핏줄이 터진 며느리를 보고 안타깝고 걱정스러운 마음에 그런 말을 했을 수도 있지만, 출산의 고통을 막 겪고 난 며느리가 듣기에는 많이 서운했을 것이다. 영화 ‘82년생 김지영’에서 명절 쇠러 부산까지 내려온 아들에게는 쉬라고 하면서 며느리에게는 은행에서 받은 사은품 앞치마를 선물로 주던 장면처럼, 사은품이라서가 아니라 존중받지 못하는 데서 오는 서러움이다.


어느 심리학자가 말하기를 이런 말들을 ‘개소리’로 정의하면서 “개소리가 나오는 순간은 할 말이 없을 때, 자신의 말을 검증할 사람이 없을 때, 소속감을 중시할 때, 모르는데 아는 척할 때다.라고 말했다. 듣고 보니 심하게 공감이 가는 말이라서 메모를 해둔 적이 있다. 내게 그런 순간이 오더라도 ‘개소리’를 시전 하지 않기 위해서다.


석파정


특히, 할 말이 없을 때가 더욱 그렇다. 요즘 세대들은 잘 모르겠지만 내가 함께 살아내고 있는 중장년 세대는 특별히 할 말이 없을 때, 가끔은 하나마나한 쓸데없는 ‘개소리’를 하는 버릇이 종종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어떻게 보면 오랜만에 만났을 때 반갑게 안부를 묻는 차원에서 하는 말 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심리학자가 규정한 몇 가지 경우에서 나오는 그런 말들을 ‘개소리’라고 정의한 것처럼, 특별히 할 말이 없을 때라도 갑자기 남의 딸을 빨리 시집보내라는 말은 매우 부적절하고, 사적인 영역인 것이다. 또한 결혼은 선택이고 부모가 통제할 수 없을뿐더러, 성인인 아이의 결정을 신뢰하고 존중하면 될 일이다.



아무튼 가끔은 무의식 중에 우리는 하나마나 한, 사실관계가 틀린, 또는 쓸데없는 ‘개소리’를 할 때가 종종 있다. 스스로 의식하지 않으면 아무런 진정성도 없을뿐더러, 진심을 느낄 수도 없다. 그때마다 듣는 사람 입장에서도 무조건 참고 넘어가는 것이 능사는 아닌 것 같다. 경우에 따라서는 올바른 사실관계나 예의가 아님을 지적해줄 필요가 있다.


특히 애정이 있는 사람과의 관계라면 더욱 그렇다. 힘들고 어려운 일일지라도 한 번쯤은 그런 과정을 거쳐야 서로 상대방에 대한 진심과 존중을 잃지 않을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상대방은 그런 ‘개소리’를 고칠 기회를 잃게 되고, 알게 모르게 서로의 관계에서 진정성은 사라지고 좋지 않은 감정만 계속 쌓여갈 뿐이다. 그리고 인내한 보람도 없이 언젠가는 결국 폭발하고 말 것이다.


서울 미술관

서로의 관계에서 정말 상대방을 존중하고 배려한다면 때로는 참기 힘든 말도 할 수 있어야 한다. 반드시 그 과정을 거쳐야만 그 관계는 한 단계 더 발전할 수 있다. 누군가를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무엇을 좋아하는지 보다 무엇을 싫어하는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보다 무엇을 하고 싶어 하지 않는지를 아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