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사는 것(WELL- BEING)
지난여름, 드라이브 겸 산책을 하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핸드폰을 들여다보던 아내가 묻는다.
“여보, 트위터서 본 어떤 부부 얘긴데 아내 생일날에 남편이 생일 선물로 특별히 카레라이스를 만들어 준다고 하더래요.”
“좋은 남편이네.”
“그런데 그 아내가 생각하기를, 그럼 난 매일 밥도 하고 카레라이스도 만들어주는데 남편한테 매일 생일선물을 해주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더래. 당신은 어떻게 생각해요?”
“응, 듣고 보니 그렇긴 하네. 우리 남자들이 무의식 중에 아내들의 수고에 대해 당연시하는 버릇이 생겼어, 우리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좋은 얘기네요.”
열심히 사는 건지는 몰라도, 바쁘게 생활하다 보면 아내 생일을 까먹는 경우도 있는데, 아내 생일을 기억하고 특별히 카레라이스를 만들어 준다는 남편을 뭐라 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딱히 그런 기특한 생각을 한 그 남편을 마냥 칭찬할 수도 없는 이 묘한 기분은 뭐지 하고 생각했다.
일만 하고 바쁘게 살 때는 이런 질문에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했다. 아내 생일에 카레라이스를 만들어준다는 착한 남편과 사는 그녀는 분명 행복한 사람일 것이라고만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들 중 당연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누군가의 소리 없는 헌신을 동반하고 있는 것이다.
나라를 구하거나 독립운동을 하는 것도 아닌데, 생계를 위해 치열하게 생활하는 동안에는 내게 중요한 일이란 모두 회사일뿐이었다. 매일의 일상에서 사소한 것들을 소중히 해야 삶을 이루는 버팀목이 된다는 것을 그땐 몰랐다. 이제 와서 아내와 남편, 두 사람 중에서 누가 더 힘들었냐의 문제 인식만으론 해결될 수 없다.
인생의 힘든 시절을 함께 살아냈던 서로에게 측은지심을 가져야 해결될 수 있다. 그렇다고 그녀들이 대단한 걸 바라지도 않지만 최소한 감사함은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처음과 달리 세상의 모든 관계는 곧 익숙해지고, 또한 당연해진다.
아내와 산책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는 다시 책을 읽거나 아이폰을 가지고 이것저것 글을 읽는다. 하지만 아내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저녁 준비를 하는 등 가사노동을 시작한다. 가끔은 힘에 부칠 때 도와달라고 부탁도 한다.
하지만, 또 가끔은 혼자 하다가 기운이 달리면 아내가 짜증을 내고 나서야 내가 무얼 잘못하고 있는지 깨닫고 함께 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잘못된 관성의 법칙이 작용한 탓이라고 핑계대기엔 너무 오래 살았고, 반성과 실천이 필요할 뿐이다.
최근 프랑스에서 한 정치인이 ‘가사 미분담 죄’ 신설을 제안한 가운데, 프랑스인 절반가량은 집안일을 게을리하는 것을 범죄로 규정하는 것에 동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여성은 50%, 남성은 44% 동의한다고 응답해 여성의 동의율이 남성보다 소폭 높았지만 아주 큰 차이는 아니었다고 한다. 남편의 가사 미분담 시 경찰에 신고하고, 조사 결과에 따라 재판에 넘겨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법이다.
자유, 평등, 박애를 외치는 프랑스에서 조차 남성의 가사노동 분담이 문제 되고 있지만, 그 내용은 우리의 형편과 큰 차이가 있으니 남성들이 스스로 합리화하기에는 쓸모가 없다.
지금도 프랑스에서 남성들은 적극 가사노동을 분담하고 있지만 여성들이 원하는 만큼 상대적으로 그 시간이 급속히 늘어나고 있지 않는데 초점이 있다.
또한, 프랑스 남성들 44%가 가사 미분담 죄 신설에 동의하고 있다는 것이다. 유사 이래로 이어온 성별 역할 분담이 급격한 산업화 시대를 거치며 여성들의 적극적인 사회진출과 성평등 인식의 확대로 인해 그 역할에 대한 회의와 모호함이 날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요즘은 오히려 여가부 폐지 논쟁에서 보듯 남성들에 대한 역차별이 문제가 되기도 한다.
특히, 가부장적 부모세대를 보고 자란 20,30대 남성에게서 더욱 그렇다. 그 생각에 전적으로 동의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 지금의 중장년 세대에게만큼은 현실성이 없는 먼 나라 얘기일 뿐이다. 가사노동을 함께하는 젊은 세대와 달리, 여성들의 희생으로 유지해온 가부장 문화의 기득권을 포기하지 못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스스로 의식하고 개선하려고 행동하고, 실천하지 않으면 매 순간 오랜 관성의 법칙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성적 잘 받으려면 공부해, 살 빼려면 운동해, 대화하려면 노력해. 원래 방법은 뻔해. 해내는 게 어렵지.”(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ENA), 문제는 실천이다. 노력하지 않으면, 나이 든다는 것이 성숙함을 보장하지도 않지만 또한 젊음이 새로운 변화를 보장하지도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