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봄날 Mar 30. 2023

사소한 것들을 소중히 해, 삶의 버팀목이 될 테니까

자유의지


 아내는 거실에 앉아 똑바른 자세로 눈을 감고 음악을 듣고 있다. 난 부엌으로 가서 설거지를 하기 위해 거실 책상에서 일어나 그 앞을 뒤꿈치를 들고 조용히 지나간다. 어떤 사람은 가정의 평화, 생존의 몸짓이라고 말하지만 난 그저 설거지를 할 뿐이다. 설거지는 설거지고 빨래는 빨래다. 특별히 무슨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다.



 부엌에 딸린 라디오를 켜고 음악을 들으며 싱크대에 쌓인 설거지를 하고 나면 마음이 맑아진다. 손끝에 느껴지는 그릇의 뽀드득뽀드득한 느낌이 좋다. 아내가 들을세라 조용히 설거지를 하지만 가끔은 그릇이 부딪힐 때면 멀리서 아내가 설거지를 하느냐고 묻고는 이내 부엌으로 달려오고는 한다. 이깟 설거지가 머시라꼬.


석촌호수


 아내는 내가 가사노동을 할 때 나만 혼자 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겠다는 나름의 원칙이 있다. 오래도록 독박 가사노동을 해온 아내의 습관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나 또한 별다른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아내가 그냥 밥 하기 싫다고 말하면 밥하고 반찬 만들고 두 끼 정도는 거뜬히 식탁을 차릴 수 있는 수준이 되었다. 가만히 앉아서 밥 얻어먹고살지 않겠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하지만, 시키기 전에는 하지 않는 것도 있다. 빨래를 베란다에 열고 개기는 하지만 세탁기에 먼저 돌리지는 않는다. 그리고 쓰레기분리수거는 혼자서 하지 않는다. 반드시 함께 내려간다. 마찬가지로 특별한 이유는 없다. 지금까지 한 번도 음식물쓰레기봉투를 들고 엘베를 탄 기억이 없다. 아내는 내가 음식물쓰레기봉투를 들고 엘베를 타는 게 싫다고 했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뭐 대단한 게 없다. 특별한 의미를 갖다 붙이니까 그런 거지, 그냥 그렇게 각자 저마다의 생각으로 하루의 삶을 살아갈 뿐이다. 하지만 그런 소소한 일상의 삶을 소중히 해야 한다. 결국 그게 삶을 이루는 버팀목이 되기 때문이다. 행복은 스스로의 자유의지로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사는 것이다.  그리고, 남에게 의존하며 행복하려 하지 않는 것이다.



"근데 할매, 사람은 살면서 어디까지가 힘든 거고, 어디까지가 행복한 걸까?" "그야 간단하지. 얻어먹고살면 행복한 거고, 먹여 살려야 되면 힘든 거지. 그러다 보면 날씨도 좋고, 하늘도 맑고, 바람도 잘부는 죽기 딱 좋은 날이 온다. 그때까지가 힘든 거야." 언젠가 읽은 글이 생각난다. 그 할머니의 말씀처럼 과연 얻어먹고 살면 행복할까, 아니면 먹여 살려야 되면 정말 힘든 걸까.



 내가 내린 결론은 얻어먹고 산다고 행복한 것도 아니고, 먹여 살려야 한다고 반드시 힘든 것도 아니다. 누군가의 일방적인 희생을 전제로 한 행복은 지속 가능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정말 힘든 것은 스스로의 자유의지로 살지 못하는 것이 힘든 것이다. ’슬기로운 감방생활‘처럼 자유의지로 생활할 수 있는 것이 없으면 아무리 얻어먹고 산다 해도 행복할 수가 없다.



 사람들은 대개 스스로가 불행할 때는 남한테 신경을 쓰는 경향이 있다. 반대로 내가 행복할 때는 자신한테 집중하는 버릇이 있다. 그처럼 행복할 때는 설거지 하나를 해도 그 설거지 자체에 집중한다. 행복이라는 게 뭐 막 대단한 거 같지만 그런 사소한 거 하나에도 집중을 한다. 지금 이 순간, 그런 사소한 것들이 누군가에게는 가장 그리운 일상일 테니까. 그처럼 행복은 단순한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모두에게는 쉬어갈 곳이 필요합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