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봄날 Apr 06. 2023

강물의 깊이를 재기 위해 두발을 모두 담글 필요는 없다

그놈의 밥타령


 가끔 트위터에 올린 글들을 읽으며 동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각과 트렌드, 그리고 요즘의 이슈와 라이프 스타일을 파악하곤 한다. 하루가 일 년처럼 빠르게 변해가는 시대의 흐름에 뒤처지지 않기 위한 내 나름의 작은 노력 중의 하나다. 세상에서 제일 편한 자세로 주말 오후시간을 보내며 트위터에 올라온 글들을 읽었다.


 어느 젊은 트위터리안이 올린 글에서 눈을 멈추고 스레드를 따라 넘기며 계속 읽었다. 내용은 그 트위터리안이 신부 측 하객으로 결혼식에 갔고, 신랑신부가 서로에게 쓴 편지를 읽고 난 후 분위기가 훈훈하게 주례를 시작했다고 한다. 신랑의 지도교수가 주례를 잘해 나가다가 갑자기 신부한테 “신부, 우리 신랑 아무개에게 맛있는 거 많이 만들어주고 밥 잘 차려주겠습니까 “하고 물었다고 한다.


장사도해상공원


 조금 전 신랑신부가 편지 읽을 때 사용했던 마이크를 갖다 달라고 하더니, 여기 하객들 앞에서 약속을 하라고 했다고 한다. 하지만, 신부는 마이크를 받아놓고 침묵으로 대신했다고 한다. 그 순간, 신랑이 마이크를 달라고 가져가더니 “제가 끼어들어서 죄송하지만 저와 신부 아무개는 각자 차려먹을 수 있고, 또한 서로에게 기쁜 마음으로 차려줄 수도 있겠지만 신부 아무개는 제 밥을 차려주려고 결혼하는 것은 아닙니다.”라고 말하며 분위기를 수습했다고 한다.



 그 뒤로 주례는 적어온 대본을 무사히 읽고 끝났고 그 트위터리안은 우리의 영웅이 신랑을 정말 잘 골랐다고 생각했으며, 그 후폭풍은 모르겠고 카톡 프로필을 보니 아직 신행 중인 거 같은데 행복하라며 축원하고 트위터 글을 마쳤다. 그리고, 그 글에 달린 댓글을 보니 신랑과 신부에 대한 칭찬과 우리나라 기성세대들이 비혼을 조장하고 있는 것이라는 댓글이 기억에 남았다.


 대학교수라는 지성인조차도 21세기를 살아가면서 여자만 꼭 밥을 해야 한다는 성역할 인식이 우리 사회의 저출산 환경을 대변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그 주례 교수는 지금쯤 자기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알기는 할까 궁금하다. 삼식이도 아니고 그놈의 밥타령, 지금은 보릿고개를 넘고 힘든 농사일을 하던 농경 시대도 아니거늘 꼭 하루 삼시 세끼를 먹을 필요는 없다.



 나 또한 코로나가 시작되고 재택근무를 하게 된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아이들에게 우리 부부가 공식적으로 하루에 점심 한 끼는 제공하지만 나머진 알아서 해결하라고 선언한 지 오래되었다. 요즘은 반드시 세끼를 먹을 필요도 없고 냉장고를 열면 먹을 게 차고 넘친다. 아내도 삼십 년 넘게 수고했을 뿐만 아니라 아이들도 성인이니 먹고 싶으면 배달을 시키든 직접 해 먹든 스스로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내 지인의 남편이 이혼전문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는데 언젠가 그 부인에게 들은 얘기라며 이혼할 때 남편 쪽에서 반드시 등장하는 똑같은 주장이 하나 있다고 말해주었다. 그 말이 부인한테 “ 네가 언제 나한테 따뜻한 밥 한 끼 제대로 해준 적이 있냐”라는 말이라고 한다. 누군가 곧 이혼을 전제로 하고 있다면 그 부인은 최소한 따뜻한 밥 한 끼는 해주어야 이혼소송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뉴스를 보니,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김영미 부위원장이 그간의 정책이 저출산 추세를 반전시키는 데 실패했다고 진단했다. 지난 15년간 280조 원을 투입했지만 결과적으로 초저출산 추세 반전에는 실패했다고 평가했다. 앞서 그 트위터리안이 올린 에피소드를 보면 우리 사회 전반의 저출산 문제가 어디서부터 비롯되는지 그 사회적인 근원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요즘의 MZ세대들을 보면 저출산을 고민하기보단 결혼은 고사하고 아예 연애조차 하지 않는 MZ세대가 65%에 이른다는 조사결과가 있었다. 멀리 사례를 찾을 필요도 없고 M세대, Z세대와 함께 생활하고 있지만, 아내나 나 또한 지금까지 아이들에게 결혼을 하라고 말해본 적이 한 번도 없다.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고 결혼이 하고 싶다면 몰라도 반드시, 또는 결혼을 위한 결혼을 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행복한 삶을 위해 결혼이 꼭 필요충분조건도 아니고 많은 해답이 있음을 알고 있으니까. 지금도 매년 20만 쌍이 결혼하고, 매년 10만 쌍이 이혼한다고 한다. 결혼이건 비혼이건, 굳이 어느 한쪽에 생각이 갇힐 필요는 없다.

 뭐든 남들이 정해 놓은 시기에 맞추지 말고 자기 인생의 시기에 맞추는 게 더 중요하지 않을까. 강물의 깊이를 재기 위해 두발을 모두 담글 필요는 없다. 결혼 역시 스스로 주어진 삶을 열심히 살아가면서 자연스럽게 어느 한쪽에 귀결되기를 바랄 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사소한 것들을 소중히 해, 삶의 버팀목이 될 테니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