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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날 Mar 02. 2023

열심히만 산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영화, 다음 소희


 영화 ‘다음 소희’가 매우 주목할만한 올해의 영화라는 소개를 보았다. 몇 번 그 영화에 대한 얘기를 듣긴 했지만 궁금했던 차에 검색을 해보고는 영화를 보겠다는 결심을 거두어들이고 말았다. 줄거리를 알고 나서는 나는 이 영화를 도저히 가슴 아파서 못 본다는 결론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한주가 지나고 어느 날, 늦은 오후에 아내가 문득 그 영화를 보겠느냐고 물었다. 집 앞 영화관에 예매를 하고 있으니 보고 싶으면 함께 가자고 말했다. 결국 나는 아내에게 보고 나면 마음 아플 텐데 괜찮겠느냐고 반문하고는 같이 보러 가겠다고 말했다.


에바 알머슨 전시회, 전쟁 기념관


 '다음 소희'(2023, 감독 정주리)는 2017년 실제 전주에서 일어난 사건을 모티브로 만든 영화다. 콜센터로 현장실습을 나가게 된 여고생 소희(김시은)가 겪게 되는 사건과 그녀의 죽음에 의문을 품는 형사 유진(배두나)의 이야기다. 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 초청작이었고, 제75회 칸영화제 '비평가주간 폐막작'으로 선정되었다.


 어른들의 무관심과 이기심, 그리고 구조적으로 잘못된 현장실습 제도에 대책 없이 내던져진 특성화고 학생들이 무방비 상태로 상처받고 영혼이 파괴되어 가는 모습을 주인공 소희의 관점과 생을 마감한 소희의 흔적을 따라가는 형사 배두나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영화였다.



 영화를 보는 내내 이른 생을 마감할 수밖에 없었던 소희를 바라보며 세상에 대한 분노를 참기가 어려웠다. 두 시간이 넘는 러닝타임이었지만 군더더기 없이 잘 만들어진 영화이기에 마지막 엔딩크레디트가 올라가기 시작했을 때에야 영화가 끝난 줄 알았다. 주변을 둘러보니 대부분의 여성관객들은 자리를 뜨지 못하고 울고 있었다.


  무한 경쟁사회에 대책 없이 내몰린 이 시대의 많은 소희들을 보면서 과연 우리 사회가 앞으로 다음의 소희가 나오지 않게 할 수 있겠는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오늘도 뉴스에서는 출산율이 0.81에서 0.78로 떨어졌다며 우리 사회의 절망과 소멸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국가나 사회로부터 보호받지 못하고 안전을 담보할 수 없다고 느끼게 된다면 그 결과는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닐까.



  언젠가 어느 프로그램에서 한국과 일본을 씨름과 스모를 통해 비교한 적이 있었다. 씨름은 둘 중에 하나가 먼저 모래밭에 쓰러져야 끝난다. 반면, 스모는 동그랗게 쳐진 테두리 안에서 밖으로 밀려나면 지는 경기이다. 우리에겐 갑질이 있고 일본은 집단 따돌림, 즉 이지메가 있다. 우리는 선을 넘는 오지랖이 있고 일본은 선을 넘으면 안 되는 민폐문화가 있다. 하지만 공통점은 강자에겐 약하고 약자에겐 강하다는 것이다.


 트위터에서 읽은 글 중에 딸이 어느 회사에서 인턴을 하는데 팀장에게 구박을 받고 집에 돌아와서 우는 걸 보고, 다음날 출근할 때 딸의 손목에 칠천만 원짜리 손목시계를 부적으로 채워 보냈다는 얘기였다. 많은 댓글 중에는 그 팀장이 그 시계를 못 알아보면 어쩌겠냐는 걱정도 있었지만 그게 효과가 없을 것이란 댓글이 하나도 없는 걸 보고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리 줄거리를 찾아보고 마음 아파서 못 보겠다는 생각을 했던 나는 영화를 보고 난 후 오히려 이런 좋은 영화를 만들어준 정주리 감독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오래전 스크린쿼터제에 반대하는 영화인들이 데모를 하면서 가장 우려했던 영화의 다양성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맨날 돈과 폭력을 소재로 한 천만 영화보다는 영화의 존재이유를 설명하기에 무리가 없었다.



 영화인들이 언제나 사회의 올바른 방향성을 제시하는 선봉에 서있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 영화를 보고 난 후 다시 한번, 열심히만 산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영화 속 배두나(형사 유진)의 대사, “힘든 일을 하면 존중받으면 좋을 텐데 그런 일을 한다고 더 무시해“라는 말이 아직도 귓가에 맴돈다. 불의에는 참고 불이익에만 분노하는 우리에겐 선물 같은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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