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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날 Mar 10. 2023

사랑은 내가 선택하는 게 아니고 사랑이 나를 선택한다

영화, 단순한 열정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아니 에르노의 소설 ‘단순한 열정’이 영화로 만들어져 개봉했다는 뉴스를 보았다. 만화 영화 ‘슬램덩크’를 본 지 며칠 지나지 않아 조금 망설였지만 배운 사람으로서 지적 호기심이 발동했다. 그 영화는 하루에 한 번만 상영을 했고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영화의 플롯은 어린 아들과 함께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이혼녀이며 작가이자 문학교수인 앨렌, 그리고 그의 연인이자 러시아 대사관에서 일하고 있는 연하의 유부남이며 보안요원인 알렉산드르의 세상의 경계를 넘어선 두 남녀의 사랑에 관한 이야기이다.



  엘렌은 그 남자를 만난 지난 9월 이후로 매일 그를 기다리는 일상과 열병 같은 사랑의 열정에 혼란스럽기만 하다. 그리고 그녀는 스스로 통제되지 않는 감정과 육체적 탐닉으로 일상은 점점 무너지고 삶은 뒤틀리고 만다. 영화는 육체적 탐닉에 빠진 한 여성의 감정을 정확하고 섬세한 연출을 통해 보여주며 지독한 사랑에 빠진 그녀를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문득, 최근에 보았던 드라마 ‘사랑의 이해’(Jtbc)에서의 한 장면이 생각났다. 자신의 불륜 때문에 자식과 멀어진 아버지는 어느 날 딸의 질문에 그때 자신의 그 감정은 ‘막을 수 없는 것, 안 되는 걸 알면서도 멈출 수 없는 것’이었다고 고백하는 장면이다. 그 드라마는 총을 쏘고 서로 죽이고 죽는 홍콩식 누아르는 아니지만 등장인물 간에 서로의 감정이 얽히고설키면서 깊은 상처를 주고 치명적 내상을 입히니 치정 누아르라고 볼 수밖에 없었다.


남한산성


 단순한 열정, 우연히 만나 사랑에 빠진 한 남자만을 생각하며 ‘그를 향한 사랑은 내 삶에서 가장 사치스러운 순간이었다’고 표현하는 여주인공 엘렌을 이해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사랑이 아니라 육체적 탐닉 그 자체를 사랑하는 것이 아닐까 의문을 가졌다. 그 남자와 사랑에 빠진 후 매일 한 남자를 기다리고 생각하는 것 외에는 모든 일상의 삶이 그녀에게는 아무것도 아니다. 류근의 시 ‘어쩌다 나는’처럼.



 사랑의 감정은 단순한 열정이다. 누군가 나이가 들고 늙어가는 것은 지적 호기심과 열정이 사라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별로 궁금한 것도 없을뿐더러 설사 어떤 설렘이 있다한들 열정이 없으니 사랑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랑은 결과가 아닌 과정이다. 그리고 “한 남자, 혹은 한 여자에게 사랑의 열정을 느끼며 사는 것이 바로 사치가 아닐까”라는 소설 속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막을 수 없는 것, 안 되는 걸 알면서도 멈출 수 없는 것’ 그것이 사랑의 단순한 열정이다. 사실, 복잡한 열정은 없다. 프랑스가 아닌 아시아나 중동이었다면 ‘아니 에르노’는 노벨 문학상은 고사하고 돌팔매질에 살아남지 못했을 수도 있다. 세상을 선택해서 태어날 수는 없지만 만약 프랑스가 아니었다면 ‘경험하지 않은 것은 쓰지 않는다’는 그녀의 이런 불편한 진실을 우리는 만날 수 없었을 것이다.



 오래전 읽었던 파올로 코엘료의 소설 ‘불륜’과 아니 에르노의 소설 ‘단순한 열정’은 사랑이란 서로에 대한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열정이라고 말한다. 때로는 영혼마저 잠식해 버릴 정도의 지독한 사랑이 정신과 육체를 지배하고 일상을 무너뜨리고 만다. 물론, 그런 열병 같은 사랑이 계속 지속될 수는 없겠지만, 우리에게 좋은지 나쁜지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하지만 굳이 대답할 필요는 없다. 사랑은 내가 선택하는 것이 아니고 사랑이 나를 선택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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