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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날 May 26. 2023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보이나니,

부석사 이야기


 며칠 전 오후에 가끔씩 들리곤 하는 도서관에 들렀다. 서고에 꼽힌 책을 둘러보다가 우연히 이상문학상 수상집을 모아놓은 것을 발견했다. 그중에서도 2001년 수상집 ‘부석사’(신경숙)와 2004년 수상집 ‘화장’(김훈)이 눈에 띄었다. 그리고 받침대가 있어 다리를 뻗을 수 있는 자리에 비스듬히 누워서 읽기 시작했다.


 매년 발행되는 이상문학상 수상집은 빠짐없이 구매해 읽어온지라 이미 그 내용을 알고 있었지만, 다시 읽어보았다. 부석사는 지난 봄맞이 여행으로 다녀온 여운이 아직 가시지 않았고, 김훈의 ’화장‘(2015, 임권택)은 영화로 만들어져 배우 안성기의 열연과 김규리의 매력적인 연기가 기억에 남았기 때문이다.


무량수전, 부석사


 영주 부석사는 여러 번 다녀왔지만 신경숙의 소설부석사의 주인공처럼 눈 내리는 겨울에는 가본 적이 없었다. 새해 1월 1일, 실연의 상처를 지닌 두 남녀가 그날 오후에 그들이 사는 오피스텔로 찾아오겠다는 각자의 불편한 사람들을 피해 우연히 여자의 제안으로 부석사를 찾아 떠나며 전개되는 이야기이다.


돌배나무, 무량수전 앞


 소설에서 말했듯이 부석사는 여느 사찰처럼 산속이 아닌 봉황산 산등성이에 있다. 일주문을 지나 오르는 부석사의 양옆에는 탱자나무 울타리로 둘러싸인 사과밭이 있어 혹자는 사과꽃이 필 때가 제일 아름답다고 했다. 학교에서 배웠던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 무량수전과 김삿갓이 올라 소백산맥을 내려보며 부석사의 아름다운 경치를 노래한 시가 안양루에 걸려있다.


안양루, 부석사


 그 무량수전 왼쪽 뒤에는 커다란 두 개의 바위가 겹쳐있는 부석이 있고, 지금도 그 두 바위의 밑은 바늘에 뀐 실을 넣어 빼낼 수 있어 이름 그대로 두 돌이 떠있는 것이 분명하다고 한다. 또한 부석사의 뒤편 언덕에는 조그만 선묘각이라는 사당이 있다. 이 선묘각은 부석사를 창건한 신라시대 의상과 선묘의 전설이 사실임을 알려줄 뿐만 아니라 선묘 낭자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위로하고 기린다.


선묘각, 부석사


 당나라로 유학을 떠났던 의상대사는 하숙을 하며 불교의 발전을 위해 열심히 용맹정진했다고 한다. 마침 그 하숙집에는 선묘라는 아름다운 낭자가 있었고, 선묘 낭자는 의상대사의 기품에 반해 그만 혼자 짝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그렇게 어느덧 세월은 흘러 의상대사는 유학이 끝나고 인사도 없이 돛단배를 타고 신라로 향했다. 나물을 캐다 돌아온 선묘 낭자는 이 사실을 뒤늦게 알고 마지막 인사를 하기 위해 바닷가 절벽으로 내달렸다고 한다.


상사화, 부석사


 하지만, 이미 돛단배는 멀리 떠나가고 있었고 매우 낙담한 선묘 낭자는 그만 절벽에서 뛰어내렸고, 영혼만이라도 그와 함께하기를 바랐다고 한다. 비바람이 몰아치는 황해를 무사히 건널 수 있도록 용이되어 돛단배를 탄 의상대사를 보호했다. 신라로 귀국한 후 영주에 부석사를 창건하려고 할 때 동네 건달들의 텃세에 시달릴 때 그 부석의 바위를 들어 올려 건달들을 내쫓을 때도 선묘 낭자가 도왔다고 한다.


부석, 부석사


 신경숙의 소설, 부석사의 두 남녀 주인공들도 여행은 함께 떠나지만, 그 부석처럼 각자 지난 사랑의 상처만 더듬을 뿐 서로 다가서지 못하고 겉돌기만 한다. 낭떠러지 앞에서 길을 잃고 부석사에서 들려오는 종소리와 함께 내리는 함박눈에 덮여 가는 차속에 갇히고 소설은 그렇게 끝이 난다. 하지만, 결국에는 사랑의 결실을 이루지 않았을까 미루어 짐작해 보았다. 물론, 사랑의 아픔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선묘 낭자의 도움이 있었을 것이라고 믿는다.


낙산사, 양양


 의상대사는 훗날 다시 강원도 양양 바닷가에 낙산사를 창건했고, 그 절의 대웅전 뒷벽에는 의상과 선묘 낭자의 사랑의 전설이 두 개의 벽화로 그려져 있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유홍준의 문화유산답사기) 여행하기 좋은 신록의 계절, 내일이 부처님 오신 날이다. 치열한 일상의 삶 속에서 사랑의 힘을 믿는 모든 사람들과 또한, 사랑에 상처받은 모든 사람들이 부석사에서 쉼을 얻고 위로받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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