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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날 May 18. 2023

누구도 누굴 함부로 대할 순 없다

무재칠시 (無財七施)


 계절이 바뀔 때만 되면 ‘나의 아저씨’(tvN, 2018), 나의 인생 드라마를 재방송해주는 채널이 있다. 채널을 돌리다가 우연히 또 보게 되었다. 파견직 사원인 이지안(아이유)이 임원진급심사위원회에 불려 가서 박동훈 부장(이선균)을 검증하기 위한 부정적 질문에 대답하는 장면이었다.


“배경으로 사람 파악하고 별 볼 일 없다 싶으면  빠르게 왕따 시키는 직장문화에서 스스로 알아서 투명 인간으로 살아왔습니다. 회식자리에 같이 가자는 그 단순한 호의의 말을 박동훈 부장님께 처음 들었습니다. 박동훈 부장님은 파견직이라고, 부하직원이라고 저한테 함부로 하지 않았습니다"


강화도 고려산, 진달래


 문득 오래전 기억이 떠올랐다. 그룹의 사업조정으로 관계사로부터 넘어온 신규사업의 실적이 지지부진하자 회사에서 해외비즈니스만 오랫동안 일해온 나를 구원투수로 투입했다. 그 신규 사업의 성공여부가 그룹 내 우리 회사의 신뢰와 관련된 중차대한 미션이었기 때문이었다. 회사의 기대와 입장은 이해할 수 있었지만 생소한 업무에 대한 두려움이 앞섰다.



 하지만, 그 신규사업부를 맡을 수밖에 없었고 국내사업의 새로운 도전에 직면했다. 빠른 업무파악과 매일 벌어지는 사고수습 때문에 눈코 뜰 새 없었다. 아내에게 도시락을 싸달라고 해서 점심때면 내 방에서 혼자 차가운 도시락을 먹었다. 몇 개월 후엔 밑반찬을 몇 가지 사무실 냉장고에 넣어두고 편의점에서 햇반을 사서 데워먹었다. 그 이유는 빨리 밥을 먹고 난 후 점심시간만이라도 혼자 조용히 쉬고 싶었다.



 방문을 열고 나와 모두 점심 식사를 위해 자리를 비운 사무실을 가로질러 햇반을 사기 위해 엘베를 타러 가곤 했다. 가끔은 텅 빈 사무실에 홀로 남아 일을 하고 있던 단기 파견 여직원과 눈이 마주칠 때가 있었다. 아마도 업무스킬이 필요한 일이었는지 사십 대 중반의 여성이었다. 그때 두어 번 웃는 얼굴로 “점심 안 드세요? “ 또는 ”편의점에 햇반 사러 가는데 뭐 필요한 거 있으면 사다 드릴까요? “하고 말했던 기억이 있었다.



 두어 달이 지난 후 외근을 마치고 오후 늦게 모두 퇴근한 사무실에 돌아왔는데 책상 위에 조그만 박하사탕이 든 동그란 케이스와 메모쪽지가 놓여있었다. 메모의 내용은 “오늘까지만 일하고 그만둡니다. 제가 지금껏 살면서 본 남자 중에 최고였습니다. 고맙습니다. 아무개 올림”이라고 적혀있었다. 하지만 그땐 왜 그런 메모를 남겼는지 깊이 생각해 볼 마음의 여유가 없어 그런가 보다 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다시 보게 된 드라마 ‘나의 아저씨’의 주인공 이지안이 앞서 말했던 그런 마음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아직도 그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 메모는 어쩌면 나도 괜찮은 어른 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누구도 누굴 함부로 대할 순 없다.


 언젠가 불가에서 배웠던 무재칠시중 화안시와 언시를 실천한 게 아닌가 싶다. 무재칠시 (無財七施), 말 그대로 재물 없이도 베풀 수 있는 일곱 가지를 말한다. 화안시(和顔施), 언시(言施), 심시(心施), 안시(眼施), 신시(身施), 좌시(座施), 찰시(察施)를 일컫는다. 이 일곱 가지를 생활에서 몸소 행하고 습관이 되면 행운이 따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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