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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날 Apr 14. 2023

“의리 있게 살고 까불지 말자”

진주난봉가


 통영국제음악제(TIMF)에 참석하기 위해 통영에 일주일 간 내려가 있었다.  봄비가 장마철 소나기처럼 내리던 날, 여행일정에 따라 낮엔 가까운 도시 진주의 진주성을 둘러보기 위해 출발했다. 전날 밤부터 내리기 시작한 봄비는 그날도 하루종일 세차게 내린다는 일기예보를 듣고 예상은 했지만 윈도브러시의 속도가 역부족일 정도로 앞이 잘 보이지 않아 정속주행을 할 수밖에 없었다.



 예년보다 일찍 피기 시작한 벚꽃은 장대비를 맞고 빗물과 섞여 떨어지고 있었고, 벚나무들은 이제 연둣빛 이파리를 드러냈다. 진주까지 가는 길의 대전통영 간 고속도로의 좌우에는 벚나무들이 참 많았다.

함께 타고 가던 아내는 봄비가 내리는 날의 로맨틱한 드라이브를 즐기는 듯했다. 기분이 좋았는지 대학시절에 학교 앞 막걸리집에서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취하면 늘 마지막에는 진주난봉가를 불렀다는 얘기와 함께 그 시절의 희미한 추억을 회상하기 시작했다.


촉석루, 진주성


 안전운전을 위해 크루즈 주행 세팅을 해놓고 차량스피커로 연결된 유튜브에서 쇼팽의 녹턴을 듣고 있던 나는 아내의 소중한 추억을 지원하기 위해 급히 진주난봉가를 검색해서 크게 틀어주었다.



울도 담도 없는 집에서 시집살이 삼 년 만에 

시어머니 하신 말씀 얘야 아가 며늘 아가

진주낭군 오실 터이니 진주남강 빨래 가라


진주남강 빨래 가니 산도 좋고 물도 좋아

우당탕탕 빨래하는데 난데없는 말굽소리 

곁눈으로 힐끗 보니 하늘 같은 갓을 쓰고

구름 같은 말을 타고서 못 본 듯이 지나더라 

흰 빨래는 희게 빨고 검은 빨래 검게 빨아 

집이라고 돌아와 보니 사랑방이 소요하다 

시어머니 하신 말씀 얘야 아가 며늘 아가 

진주낭군 오시었으니 사랑방에 나가봐라 


사랑방에 나가보니 온갖가지 안주에다 

기생첩을 옆에 끼고서 권주가를 부르더라 

이것을 본 며늘아가 아랫방에 뛰어나와 

아홉 가지 약을 먹고서 목매달아 죽었더라

이 말 들은 진주낭군 버선발로 뛰어나와 

내 이럴 줄 왜 몰랐던가 사랑 사랑 내 사랑아

화류정은 삼 년이고 본댁정은 백 년인데

내 이럴 줄 왜 몰랐던가 사랑 사랑 내 사랑아 

내 이럴 줄 왜 몰랐던가 사랑 사랑 내 사랑아

어화둥둥 내 사랑아


(진주난봉가 가사 전문)



 그 노래가사처럼 과거 우리나라 여성들의 힘든 삶을 표현한 노래를 남녀 친구들과 함께 부르면서 술기운 때문이었는지 눈물을 글썽이곤 했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갑자기 긴장하면서 화제 전환을 위해 스킬을 시도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하지만, 아내는 좋은 기분 탓이었는지 그 옛날 찌질했던 남자들에 대한 비난의 불똥이 다행히 나한테까지 튀지는 않았다.


 진주 남강변에 도착할 때까지 진주난봉가 얘기는 그렇게 이어졌고, 아내는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지금과는 다른 삶을 살아보고 싶다고 말했다. 그리고, 우산을 쓰고 진주성을 한 바퀴 산책하는 동안 아내는 많은 것을 질문했고 나는 전용 운전기사를 뛰어넘어 인간 시리(siri)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진주는 오래전 비즈니스 때문에 한두 번 왔던 기억이 있었지만 임진왜란 3대 대첩 중 하나이며 김시민 장군이 이끈 진주대첩의 역사적 현장인 진주성은 처음 둘러보았다. 진주성의 아픈 역사와는 달리 의기 논개의 사당이 있는 촉석루에서 내려다본 남강의 풍경은 짧은 내 언어로는 달리 표현할 말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무척 아름다웠다.  


 임진왜란 중 일본군은 첫 번째 진주성 공격에서 대패한 후, 일 년 만에 다시 십만 대군을 이끌고 와서 두 번째만에 함락시켰다. 그 후 촉석루에서 벌어진 축하연에서 승리에 도취해 까불던 카토 키요마사의 부장, 게야무라 로쿠스케를 끌어안고 남강에 투신한 의로운 여인 논개의 초상 앞에서 앞선 방문객이 피워놓은 향내를 맡으며 두 손 모아 감사의 기도를 올렸다.



 누가 뭐라 해도 한국은 조상 대대로 우리 어머니들의 피, 땀, 눈물 어린 노고와 함께 경제와 문화가 번창한 나라가 되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음악제는 저녁에만 참석하면 되었기에 어느 날은 또 유람선을 타고 장사도해상공원을 둘러보았다. 그때 단체관광을 오셨던 똑같은 뽀글이 파마를 하신 어르신들을 보고도 깊은 존경심과 함께 동일한 생각을 했고, 앞으로 그녀들이 행복한 여생을 보내기를 바랐다.



 그런데 한 가지 궁금한 것은 왜 우리나라 어르신들은 대개 여자는 여자끼리, 남자는 남자끼리만 단체관광을 다니는지 모르겠다. 특히, 나이 들고 남자끼리만 몰려다니는 단체 여행은 보기도 좋지 않을뿐더러 더러 낮술을 드시고, 시끄럽게 떠들며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경우도 있다. 나 역시 여러 동창들이 제주도나 해외 운동여행을 제안하지만 그런 이유로 아직까지는 잘 버티고 있다.



 또한, 그 뽀글이 파마 어르신들처럼 아내 또한 그동안 치열한 육아와 교육, 집안살림을 꾸려왔음을 알기에 항상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세찬 봄비에 온몸이 젖은 채로 진주성을 둘러보고 난 후, 성문 앞에 있는 유명 식당에서 민물장어구이를 아내에게 대접하고는 억수같이 내리는 빗줄기를 뚫고 다시 묶고 있는 통영의 호텔로 돌아왔다.


 그리고, 저녁 음악회에 가기 전 잠깐 쉬는 동안 “의리 있게 살고 까불지 말자”라고 건물 외벽에 붙여놓았던 그 장어집 주인장의  현수막 슬로건이 자꾸 생각났다. 우리의 삶은 우리의 생각이 만들고, 삶이란 누군가와의 아름다운 추억을 쌓아가는 일이다.





출처, 인터넷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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