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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날 Jun 01. 2023

섬세하고 다정한 사람들이 잘 살았으면 좋겠어

연민


 오월의 주말 오후, 아파트 상가에 볼 일이 있어 나가는 아내를 수행하기 위해 따라나섰다. 상가 주차장에서 기다리는 동안 1층 로비 라운지에 네 곳이나 성업 중인 커피 가게를 바라보면서 걱정이 되었다. 일 년을 못 넘기고 문을 닫으면 또 새로운 가게가 간판을 바꿔서 들어서곤 했기 때문이다. 코로나 시대에 폐업을 하는 다른 업종에 비해 커피 가게는 오히려 더 많이 늘어났다는 뉴스를 보았다.



 네 곳의 커피 가게 중 가장 경쟁력이 낮아 보여 응원이 필요한 가게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잔 주문해서 마시고 있는데 일을 마친 아내가 내려왔다. 그리곤 상가 담벼락에 활짝 핀 장미꽃을 보더니 갑자기 올림픽 공원 장미광장에 산책을 가자고 말했다. 하지만 잘 조성된 장미정원은 아내의 기대와는 달리 오월 중순이라 그런지 여러 종류의 장미꽃이 이제 막 피어나기 시작했을 뿐이었다.


 그렇다고 실망하고 바로 돌아설 아내가 아니라는 걸 익히 알고 있기에 작약과 찔레꽃 그리고 미쓰김 라일락이 피어있는 공원의 들꽃 정원으로 발길을 돌렸다. 공원 반대편으로 연결된 다리를 건너려는데 초입에서 사람들이 다가가도 죽은 듯 가만히 움직이지 않고 있는 새끼까치 한 마리를 발견했다.



 오래된 플라타너스 나무 위에 앉은 어미까치가 이쪽저쪽으로 내 주변을 맴돌며 요란하게 짖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안쓰러웠던지 아내는 새끼까치에게 다가가 쪼그리고 앉아서 보도블록 턱을 넘지도, 날지도 못하고 있던 새끼까치를 턱을 넘겨 숲 속으로 돌려보내주었다. 그리고 내게 다가와 나는 연습을 하던 새끼까치가 땅에 떨어진 후 정신을 잃어 어미까치가 위협을 느끼고 그 난리를 친 모양이라고 말했다.


찔레꽃

 세상의 모든 엄마들은 아빠보다 더 세심하고 용감할 때가 있다. 그게 바로 새끼들이 위험에 처할 때이다. 조금 전에도 아빠까치가  나무 위에서 주변을 경계하긴 했지만 어미까치처럼 정신없이 요란스럽게 울진 않았다. 들꽃 정원 산책을 마치고 주차해 둔 차로 돌아가는 길에 다시 그 다리 옆의 숲 속을 살펴보았지만 새끼까치는 온 데 간데없고 어미까치만 조금 전보다는 다소 안정된 소리로 울고 있었다.



 아마도 둥지에서 나는 연습을 하다 떨어져 다친 새끼까치를 숲 속에 숨겨두고, 난생처음 겪는 공포에 떨고 있는 새끼까치를 안심시키느라 “괜찮아, 쫄지 말고 힘내, 엄마 여기 있어!!!”하고 소리치는 것 같았다. 산책을 마치고 집에 돌아왔지만 잠자리에 누워서도 그 까치 가족을 마음에 담고 있었다.


 문득, 오래전 보았던 둘리 만화의 매사 까칠한 고길동에게 연민을 느끼기 시작하면 나이 먹은 것이라는 말이 생각났다. 자주 연민을 느낀다는 것은 나이 먹었다는 증거니까, 이제 받아들여야 한다.



 요즘은 영화나 드라마에서 마음 아픈 장면들을 보기가 불편해지는 경우가 많다. 얼마 전에는 가난한  아이들이 주인공인 이란 영화, ‘천국의 아이들‘(2001)을 다운로드해 놓고 역경을 헤쳐가는 모습이 불쌍하고 가슴이 아플 것 같아 시청을 계속 미루고 있다. 불쌍하고 가련하게 느낀다는 연민 때문이다. 주말이지만 조금 이른 잠자리에 들었다. CBS FM,  ’꿈과 음악사이‘를 무선이어폰을 끼고 들으면서도 머릿속으로는 올림픽공원의 그 새끼까치를 계속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산책 중에 발견한 올림픽공원의  넓은 마당에 설치하고 있었던 야외 가설무대를 보고 유월에 잠실로 온다던 브루노 마스(Bruno Mars)의 공연과 순간 착각을 해서는 아내에게 얼마 전 티켓팅에 실패했던 좋아하는 팝가수라고 말했다. 또한 오래전 회사비전 발표 때 피날레로 그 노래 길이만큼의 짧은 동영상을 만들어 그의 히트곡 ‘Just The Way You Are’를  BGM으로 사용했던  일화를 아내에게 소개했다.


붓꽃

 그러고 보니 그 노래가사처럼 그렇게 있는 모습 그대로 그녀의 모든 것을 사랑했던 연인을 다른 남자에게 보낸 후 슬픈 독백처럼 들리는 그의 노래, ‘When I Was Your Man’의 가사에서 또 한 번 연민을 느낀다. 더불어 동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살아있는 모든 것들에 연민의 마음을 갖는다. 언제나 섬세하고 다정한 사람들이 잘 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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