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봄날 Dec 22. 2023

결과만으로 모든 과정을 미화할 수는 없다

영화, 나폴레옹


 하루종일 겨울비가 내리던 날, 아내와 함께 영화 나폴레옹(2023)을 보고 왔다. 영화 글래디에이터(2000)를  만든 리들리 스콧 감독과 그 영화에서 열연했던 호아킨 피닉스가 다시 호흡을 맞추고 만든 영화라는 믿음이 있었다. 또한 나폴레옹이라는 역사적 인물과 최근에 ‘이슬람학교‘(1,2권, 이희수)에서 읽었던 이슬람제국의 지배를 끝내는 서막이 된 그의 이집트 정복이야기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영화는 첫 장면부터 프랑스 대혁명을 배경으로 분노에 찬 시민혁명군이 루이 16세와 그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를 서슬 퍼런 단두대에 올리고 처형하는 잔인한 화면으로 차마 보기 힘든 충격을 주었다. 사실 나는 18세기말의 그 시대 배경이 궁금했지만 그런 비인간적인 끔찍한 장면을 마주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다. 이유불문 나는 모든 야만적인 인간의 행태를 반대한다.



 그 영화의 첫 시작부터 참혹한 장면을 마주했지만 문득 그 순간,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를 끝까지 목숨을 걸고 지켰던 근위대인 스위스 용병들을 떠올렸다. 하지만 그 영화 어디에도 그 두 사람을 마지막까지 사수했던 스위스 용병 800명의 모습은 없었고 성난 군중들만 클로즈업했다. 내가 그 스위스 용병들의 희생을 기리기 위한 스위스 루체른(Luzern)의 ‘빈사의 사자상’을 본 것은 회사 후배의 카톡 프로필을 통해서였다.


롤링힐스호텔, 화성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후배의 카톡 프로필에는 루체른에서 직접 촬영한 그 ‘빈사의 사자상’을 올려놓고 있었다. 그 쓰러진 사자상을 보면서 조금 특이한 모습에 관심을 가졌지만 그 연유는 알지 못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른 후 우연히 스위스 루체른여름음악축제에 관심을 가지면서 신문기사를 읽다가 뒤늦게 그의 프로필 사진이 스위스 루체른의 ‘빈사의 사자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 후배의 깊이를 이해할 수 있었다.


출처, 인터넷 이미지


 그 ‘빈사의 사자상’은 내용을 알고 보면 전투에서 입은 상처로 쓰러져 죽음에 이른 용맹한 사자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 이야기는 1789년 10월,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나고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와네트 부부는 ‘베르사유 궁전’을 떠나 파리 시내에 있는 ‘튈르리 궁전’으로 거처를 옮겼을 때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몇 년 후 그들이 탈출을 시도했을 때 분노한 시민혁명군이 1792년 튈르리 궁전에서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와네트를 끌어내리기 위해 총공격을 했다. 시민혁명군에 포위당해 더 이상 가망이 없음을 알고 루이 16세는 끝까지 자신을 지키기 위해 싸우던 스위스 용병들에게 퇴각하라고 명령했다. 하지만 그 용감한 800명의 스위스 용병들은 죽음을 알았지만 물러설 수 없었다.



 만약 그들은 자신들이 도망간다면 더 이상 비겁한 스위스 용병을 고용할 곳은 없을 것이며, 끝까지 프랑스 국왕부부를 지킨다면 용감하고 충성스러운 스위스 용병의 명성과 함께 후대까지 계속 그 일을 통해 생계를 유지할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바로 그 슬픈 역사와 함께 스위스 루체른의 그  ‘빈사의 사자상’은 프랑스 대혁명 때 시민 혁명군에 끝까지 저항하다가 전멸한 800명의 스위스 용병을 추모하기 위해 만든 작품이다.



지금은 세계최고의 부유한 나라로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더불어 부러움을 사고 있지만, 상처 없는 영혼이 어디 있겠는가. 오래전 그런 스위스조차도 먹고살 길이 없어 산악지형에서 단련된 강인한 체력을 바탕으로 유럽의 많은 나라들에 생계유지를 위해 용병을 수출하고 먹고살았던 것이다. 지금도 그 유래에 따라 바티칸 교황청을 스위스용병들이 지키고 있음은 물론이다.



 우리나라 또한 일본제국주의에 나라를 잃고 만주, 하와이, 쿠바 등지로 가난을 뒤로하고 돈을 벌기 위해 이주노동을 떠났었다. 또 1950년 한국전쟁을 겪고 폐허위에서 다시 60,70년대 미국, 독일, 사우디 등으로 이주노동을 떠난 아픈 역사를 가지고 있다. 물론, 지금은 우리나라의 일부 몰지각한 고용주들이 이주노동자들을 한겨울 엄동설한에 비닐하우스와 움막에서 재우고 있지만. 누구나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면 과거를 반복할 수밖에 없다.



 영화 ‘나폴레옹’에서 그 스위스 용병의 처절한 전투장면은 없었지만, 기대이상으로 나폴레옹이 직접 지휘했던 이집트 정복, 러시아 원정, 아우스터리츠 전투, 워털루 전투 등, 많은 전쟁씬이 리들리 스콧 감독의 엄청난 스케일로 연출되어 지루할 틈이 없었다. 또한 역사적인 결과로 포장된 영웅 나폴레옹이 아닌 좋은 말로는 너무도 인간적인, 아니 찌질한 나폴레옹을 호아킨 피닉스가 빈틈없이 연기해 주었다. 결과만으로 모든 과정을 미화할 수는 없다. 그리고 미화해서도 안된다.

매거진의 이전글 짙은 어둠도 작은 불빛 하나에 물러서고 만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