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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날 Apr 21. 2020

우리는 네가 지난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다

직장생활과 자기 관리


 세상에 비밀은 없다. 하지만 어리석거나 교만한 사람들은 비밀이 있다고 믿고 행동한다. 그 순간부터 인생은 위험에 빠지기 쉽다. 살아오면서 스스로의 경험으로부터 나오는 자기 확신에 찬 신념일 수 있다. 누구나 그런 자기만 알고 있는 비밀 한두 개는 가지고 있다. 자기만 알고 있는 비밀은 대개가 좋은 비밀, 선한 의도를 가진 비밀일 확률이 높다. 의리를 지켜준다던 지, 내 입을 벗어나는 순간 타인에게 피해가 간다던지 하는 아마도 누군가를 배려하는 비밀일 것이다. 어쩌면 나 혼자만 알고 있는 것은 비밀이 아니고 사실일 뿐이다. 내 입을 떠나 그 누군가 함께 공유하거나 내가 한 행동을 누군가와 함께 알고 있는 것이 비밀일 것이다.



 회사 일을 할 때도 마찬가지다. 업무추진비로 결제하는 법인카드를 쓸 때가 있다. 업무추진 해당자나 일정 직급이 되면 업무 추진 시 회식, 접대 등 법인카드를 사용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진다. 물론 직급별로 사용 한도가 주어진다. 그 범위를 넘어서면 추가 결재를 받아 사용한도를 늘리고 사용해야 한다. 가끔은 법인카드를 사용할 경우가 아닌 개인 용도로 사용하고 회사로부터 징계를 당하는 경우가 있다.


 법인카드를 내줄 때는 직원을 신뢰하여 기본 가이드라인 내에서 사용할 것이란 믿음이 있고, 또한 그 사용에 대해서 대개는 한도를 넘지 않으면  특별히 집행에 대해 규제를 하거나 일일이 들여다보지는 않는다. 그래서 그런지 스스로 자율관리가 안 되는 경우가 가끔 있지만, 결제시스템의 기술발전 덕분이 아니더라도 모두 다 알고 있다. 비밀은 없다. 당신이 잘 나갈 때는 그냥 두지만 결정적인 순간에는 그 이유로 잘릴 수도 있다.



 회사 일을 추진하는 경우에 있어 법인카드를 사용할 수 있는 경우를 규정하고는 있지만, 일일이 예시하지는 않을뿐더러 할 수도 없다. 업무추진비 사용은 회사와 나와의 상호 신뢰에 기반한다. 업추비를 사용할 때 잘 판단이 되지 않는 경우와 경계가 있을 수 있다. 그런 경우에는 첫째 업무추진비를 사용해서 회사가 이로워지는가, 둘째 내가 업추비를 사용한 이 경우가 신문에 대문짝 만하게 나와도 부끄럽지 않고 떳떳하게 말할 수 있는가 하는 경우엔 무방할 것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설사 훗날 문제가 되더라도 그 사용 당시 내가 회사의 이익을 위해 내린 결정에 대해 당당하게 소명하면 된다. 그리고 책임질 일이 있으면 내가 책임지면 되니까 억울할 일도 없을 것이다.


  비밀은 없다. 회사 생활을 하면서 내가 한 일을 누구나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일한다면 오랫동안 조직생활에서 존버 할 수 있을 것이다. 혼자만 죽어라고 일하는데 알아주지 않는다고 억울해할 필요도 없고, 남들은 죽어라 일하는데 나만 운 좋게도 욜로(YOLO) 생활을 즐기며 여유만만 생활한다고 좋아할 필요도 없다. 산타 할아버지처럼 조직은 누가 열심히 일하고, 누가 일하는 척하는지 다 알고 있다. 시간의 문제일 뿐, 당신이 회사에서 지난여름(?)에 한 일을 모두 알고 있다. 당신 수준에서만 모른다고 생각할 뿐, 더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고 있으면  매의 눈처럼 시야는 더 넓어지고, 귀는 더 얇아져 많은 소리를 듣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세상을 만만하게 생각하는 교만을 멀리하는 것만큼, 위험에서도 멀어질 수 있다.


 어린 시절이나 학교에 다닐 때 부모님이 알면 난처한 경우, 우리는 가끔 작은 거짓말로 부모님을 잘 속였다고 생각할 때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 부모가 되어 자녀들을 키워 보면 알 수 있다. 자녀교육에 있어 대세에 큰 지장이 없을 경우 그냥 모르는 척해주어 자녀들의 체면을 살려주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자녀들의 눈빛만 봐도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을 정도로 애정을 듬뿍 쏟으며 생활하고 있기 때문이다.


감은사지 삼층석탑



“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 나오는 한 구절이다. 나의 경우, 애들이 아기일 때 아내는 아이가 울면 똥을 쌌는지 아니면 배가 고픈지 아이의 우는 소리만 들어도 알아맞히곤 했다. 아내가 설거지를 하는 동안 내게 맡겨놓은 아이가 울면 나는 정반대로 알아듣고 배고픈데 기저귀를 갈려고 하고, 똥을 쌌는데 우유 젖꼭지를 물리곤 해서 아이를 더 자지러지게 울려서 아내에게 구박을 받곤 했다.


  세상에 비밀이 없다고 생각하면 우리는 스스로 더 겸손하고 착하게, 성실하게 살아갈 수 있다. 기대 이상의 요행을 바라지도 않고, 내가 노력한 만큼 이상의 더 많은 것을 욕망하지도 바라지도 않는다. 내가 한 일이나 타인에게 기대 이상을 바라지 않으니, 실망할 일도 상처 받을 일도 없다. 내가 행한 일이나 남들에게 내가 내어준 것 이상을 기대할 때 상처를 받는다. 굳이 말하지 않을 뿐, 표현하지 않을 뿐 우리는 당신이 지난여름에 한 일을 모두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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