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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날 Jul 26. 2024

새는 나뭇가지가 아니라 자신의 날개를 믿는다

7.27 휴전협정 기념일과 파리 올림픽 개막


최근, 남북한의 긴장 상황이 점점 가속화되고 있는 느낌이다. 남북 정상이 만나 기적적으로 이루어낸 ‘9.19 군사합의’를 북한이 먼저 파기를 선언했고, 우리 또한 효력정지를 선언했다. 그리고 접경지역 주민 등 대부분의 국민들이 긴장완화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자제를 바라지만, 일부 과격한 탈북민단체는 계속 대북풍선을 살포했고, 그에 대응한 북한의 오물풍선 맞대응이 계속되고 있다.



그와 더불어 백령도, 연평도등 서북도서에서 해상 포사격 훈련을 군사합의 이후 처음 실시했다는 뉴스가 있었으며, 또한 최근엔 휴전선 근처에서도 포사격 훈련을 실시했다고 한다. 남북한 군사합의가 유효했다면 그 민감한 지역에서 상호 군사훈련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것도 남북한의 정치 지형상 시기적으로 매우 민감한 때와 장소에서 상호 간 이런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더욱더 우려를 하는 것이다. 지금도 북한은 대남 오물풍선을 날리고 있고, 그에 맞대응해 이젠 휴전선에서 전면적 대북확성기를 틀고 있다.


캠프 그리브스 가는 길



 언젠가 보았던 영화, ‘강철비’(2017)에서 주인공 곽철우(곽도원)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분단국가 국민들은 분단 그 자체보다 분단을 정치적 이득을 위해 이용하는 자들에 의하여 더 고통받는다”라는 말이다.


 북한은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외부와 단절한 채 주민들을 통제하기 위한 수단의 하나로 남북분단 자체를 이용하며 삼대에 걸친 세습을 하고 있다. 한 탈북민의 표현을 빌리면 북한 주민들은 얼굴에 랩을 씌운 채 간신히 숨만 쉬고 있는 형편이라고 한다.



 상식적인 판단에 의하면 경제력, 군사력등 모든 전쟁에 필요한 지표를 따져보면 북한은 게임이 되지 않는 비교 수준이라 바보가 아닌 이상 질게 뻔한 전쟁을 일으킬 리 없다는 게 중론이다. 하지만, 늘 그렇듯 싸움이란 이성적 사고로 하는 것은 아니다.


최소한 자존감이 바닥을 치는 상황일 때는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너 죽고 나죽자식의 싸움을 해야 할 때가 있다. 그래서 북한의 비대칭 전력, 즉 핵무기, 생화학무기등이 무서운 것이다. 코로나 사태를 돌아보면, 만약 오물풍선에 생화학무기가 담겼다면 어쩔 것인가.



74년 전 6.25 전쟁으로 군인과 민간인 포함 남북한의 사망자수가 300만 명이라고 한다. 70년 동안 휴전 중이니 아직도 사실 공식적으로는 전쟁 중이다. 하지만 참혹했던 전쟁을 잊은 지 오래고, 우크라이나 전쟁을 강 건너 불구경 보듯 한다.


 최근 서로의 필요에 따라 중국이상으로 급속하게 북한정권은 러시아의 푸틴 정권과 협력하고 상호 정상방문을 통해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맺고 있어 우리는 물론, 한반도의 현상 유지를 바라는 중국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고 있다.


자유의 다리


 러시아와 협력 후 나날이 발전하고 있는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실험을 바라보며, 우리 또한 러시아가 레드라인을 넘을 경우 그 반대급부로 러시아와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에 전쟁무기를 공급할 수도 있다고 발표했다. 또한, 철저히 자국의 이해에 따라 움직이는 국제관계를 보면서도 누가 누굴 믿는다는 말인가.


 러시아나 중국이든, 미국이나 일본이든 구한말 우리의 역사를 돌아보면 그 교훈을 찾을 수 있다. 만약 트럼프가 다시 대통령에 당선되고, 그의 제안처럼 김정은과 뉴욕에서 양키스팀 야구를 함께 보는 날이 오면 집회 때마다 성조기를 흔들던 분들은 새되는 것 아닌가.




나무에 앉은 새는 가지가 부러질까 두려워하지 않는다. 새는 나무가 아니라 자신의 날개를 믿기 때문이다.


류시화,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중에서


몇 년 전 무능한 젤렌스키 정권이 추락한 지지율을 만회하고자 NATO가입을 운운하며 전쟁 속으로 그들의 국민을 끌어 들일 줄은 설마설마하며 지켜보았지만, 결국 말폭탄 끝에 러시아 푸틴이 침략하도록 만든 꼴이 되었다.


북한 또한 장기제재에 따른 내부불만을 돌리고자 국지도발하면 그 후과는 또 어떡할 것인가. 우크라이나 사태가 결코 남의 일 같지 않은 이유는 뭘까. 함부로 전쟁을 말하는 사람들은 아래 글을 읽어보고 경각심을 갖기 바란다.  




어머니께 보내는 편지



어머니! 나는 사람을 죽였습니다. 그것도 돌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10여 명은 될 것입니다. 저는 2명의 특공대원과 함께 수류탄이라는 무서운 폭발 무기를 던져 일순간에 죽이고 말았습니다. 수류탄의 폭음은 저의 고막을 찢어 놓고 말았습니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에도 제 귓속은 무서운 굉음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어머니, 괴뢰군의 다리가 떨어져 나가고, 팔이 떨어져 나갔습니다. 너무나 가혹한 죽음이었습니다. 아무리 적이지만 그들도 사람이라고 생각하니 더욱이 같은 언어와 같은 피를 나눈 동족이라고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하고 무겁습니다.


어머니! 전쟁은 왜 해야 하나요. 이 복잡하고 괴로운 심정을 어머니께 알려드려야 내 마음이 가라앉을 것 같습니다.


저는 무서운 생각이 듭니다. 지금 저 옆에는 수많은 학우들이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듯, 적이 덤벼들 것을 기다리며 뜨거운 햇볕 아래 엎디어 있습니다. 저도 그렇게 옆디어 이 글을 씁니다. 괴뢰군은 지금 침묵을 지키고 있습니다. 언제 다시 덤벼들지 모릅니다. 저희들 앞에 도사리고 있는 괴뢰군 수는 너무나 많습니다. 저희들은 겨우 71명뿐입니다. 이제 어떻게 될 것인가를 생각하면 무섭습니다.


어머니와 대화를 나누고 있으니까 조금은 마음이 진정되는 것 같습니다.


어머니! 어서 전쟁이 끝나고 어머니 품에 안기고 싶습니다. 어제 저는 내복을 제 손으로 빨아 입었습니다. 비누 내 나는 청결한 내복을 입으면서 저는 한 가지 생각을 했던 것입니다. 어머니가 빨아주시던 백옥 같은 내복과 제가 빨아 입은 그다지 청결하지 못 한 내복의 의미를 말입니다. 그런데 어머니, 저는 그 내복을 갈아입으면서, 왜 수의를 문득 생각했는지 모릅니다.


어머니, 어쩌면 제가 오늘 죽을지도 모릅니다. 저 많은 적들이 저희들을 살려두고 그냥은 물러갈 것 같지가 않으니까 말입니다. 어머니, 죽음이 무서운 것은 결코 아닙니다. 어머니랑, 형제들도 다시 한번 못 만나고 죽을 생각 하니, 죽음이 약간 두렵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저는 살아가겠습니다. 꼭 살아서 돌아가겠습니다. 왜 제가 죽습니까, 제가 아니고 제 좌우에 엎디어 있는 학우가 제 대신 죽고 저만 살아가겠다는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천주님은 저희 어린 학도들을 불쌍히 여기실 것입니다.


어머니, 이제 겨우 마음이 안정이 되는군요. 어머니, 저는 꼭 살아서 다시 어머니 곁으로 달려가겠습니다. 웬일인지 문득 상추쌈이 먹고 싶습니다. 그리고 옹달샘의 이가 시리도록 차거운 냉수를 한없이 들이키고 싶습니다.

아, 놈들이 다시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살아서 다시 또 쓰겠습니다.

어머니 안녕! 안녕!

아, 안녕이 아닙니다.

다시 쓸 테니까요, 그럼...



이우근

1950년 8월 10일 쾌청



 몇 년 전 겨울, 임진각을 방문하고 케이블카를 타고 DMZ내에 있는 옛 미군기지 캠프 그리브스를 둘러볼 때, 오래전에 보았던 영화, ‘포화 속으로’(2010)의 모티브가 되었던 이 편지 글을 보았다. 고작 16세였던 학도병 이우근이 포항지역에서 마주했던 전쟁의 현장에서 고향의 어머니를 사무치게 그리워하며 써 내려간 편지였다. 이미 그 영화도 보았던 터라 그의 어머니께 부치는 편지를 읽고 목이 메었다.


임진강 독개다리


그 편지를 마칠 때쯤, 이우근은 다시 밀려오는 인민군들과의 치열한 전투 끝에 어머니께 부치지도 못한 그 편지를 가슴에 품고 적군의 총탄을 맞고 사망하고 말았다. 같은 언어, 같은 피를 나눈 동족끼리 죽고 죽일 수밖에 없는 그날의 전쟁 속에서 고뇌하는 어린 학생의 편지를 읽고, 우리가 누리는 일상의 평화에 대한 소중함을 다시 한번 되새겼으면 하는 의미에서 이 편지를 소개했다. 7월 27일, 휴전협정 기념일인 내일부터 평화의 제전, 파리 올림픽이 개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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