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계
문학평론가 황현산 교수의 책, ‘사소한 부탁’(난다)을 읽다가 우리의 현실과 함께, “반지성주의가 지배하는 국가에서 가장 일상적인 고통은 말이 안 되는 소리를 지당한 소리처럼 날마다 듣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고통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크다. 누가 2+3=7이라고 날마다 말하는데, 당신은 입 다물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 보라”는 선생의 트윗 글을 떠올렸다.
무더위에 잠시 책을 내려놓고, TV채널을 돌리다가 우연히 내가 좋아했던 역사 강사 설민석이 ‘강연자들’(mbc)이란 프로그램에서 강의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가 진행했던 우리의 역사 강의는 오랫동안 인기예능프로그램을 뛰어넘었지만, 몇 년 전 그의 논문표절 의혹이 제기되어 모든 방송을 하차했기에 아쉬움이 남았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겐 미래가 없기 때문이다.
그 ‘강연자들’이란 프로그램의 주제가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고 성공한 사람들의 강연이었지만, 오히려 사회자인 오은영 박사의 강연이 더욱 인상 깊었다. 한계(限界)의 사전적 의미는 “사물이나 능력, 책임 따위가 실제 작용할 수 있는 범위. 또는 그런 범위를 나타내는 선“이라고 한다. 오은영박사는 오히려 한계는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지키는 것이라며, 엘리베이터는 한계중량 초과 시 경고음이 울리고 멈춘다고 말했다.
이 세상 어느 분야든, 초인적 능력이나 초인적 인내심을 발휘해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고 성공한 사람들을 우리가 따라야 할 롤모델로 제시한다. 때로는 알게 모르게 우리에게 스스로 자괴감이 들게 만들 때가 많이 있다. 또한,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렇게 결과만 합리화되는 사회적 가스라이팅과 함께 무한 경쟁의 세계로 내몰리고 있는 것이다.
지금은 안타깝게도 방향보다는 속도가 더 중요한 시대가 되었다. “지금 어디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어디로 가느냐이다 “라는 어느 대리운전 광고문구가 떠오르는 건 왜일까. 사실, 최선과 노력은 복권을 사는 것과 같을 뿐, 누구의 성공은 그의 환경과 그가 최선을 다해 만든 기회의 응답일 뿐이다. 한계극복은 일상적인 표현의 수사일 뿐이고, 열심히 해도 안 되는 것은 안된다. 때로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아닌, 나한테 맞는 일을 찾아야 할 때가 있다.
가끔 어이없는 자동차 사고가 나면 대개 급발진이라고 주장하는 사고들 중 운전자 과실로 밝혀지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자신의 운전능력과 자신이 운전하는 자동차의 기계적 한계를 아는 것이 대단히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나는 운동을 갈 때 함께 가는 것보단 혼자 운전하며 음악을 듣고 가는 것을 더 선호한다.
한편, 아내는 시끄러운 음악 듣지 말고 차소리와 계기판을 보며 운전하라고 잔소리를 한다. 오랫동안 남이 운전해 주는 회사 차를 타고 다닐 때는 카톡을 ‘읽씹’하는 경우가 없었지만, 지금은 내가 운전하며 신호 멈춤에서 아내에게 출발 카톡을 보낼 때면 어김없이 읽고 답장이 없다.
처음엔 아내에게 불평했지만 혹시 운전 중 카톡을 보다 사고 낼까 걱정되어 내가 보낸 카톡에 답장을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 후 내가 하고 싶은 말만 짧게 카톡을 보내고 답장을 기대하지 않으니 운전에 집중할 수 있었다. 그처럼 아내는 나의 운전실력에 대한 한계를 충분히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자동차와 자신의 한계를 정확히 알고 자신이 제어 가능한 최대속도를 넘지 말고 운전해야만 안전할 수 있다. 그처럼 우리도 먼저 자신의 한계를 제대로 아는 것이 더 중요하다. 우리 스스로의 한계를 제대로 알 수 있는 방법은 무슨 일이든 자신의 최선을 다해봐야 알 수 있다. 그리고, 남들과 비교하지 않고 자신의 삶의 속도를 분명히 지키는 것, 그것이 최선의 삶이다.
자신의 한계를 극복했다는 많은 사람들을 보았지만 우리가 착각하는 것일 뿐, 그 사람들은 정확히 자신의 한계를 잘 몰랐을 뿐이다. 한계극복은 일상적인 표현의 수사일 뿐이다. 어쩌면 그 사람들은 자신의 최선과 함께 자신의 한계를 극복한 게 아니라, 그 한계의 경계를 더 확장했을 뿐이다. 평소 안전운전을 하려면 우리가 운전하는 자동차의 계기판과 차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또한, 우리가 몸에서 보내는 신호에 귀를 기울여야 건강한 삶을 유지할 수 있다. 뭐든 자신이 버틸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서면 공황장애, 뇌졸중, 우울증 등등 우리의 몸은 고장 나기 마련이고, 우리에게 마지막 경고를 보낼 수밖에 없다. 우리를 멈추게 하는 것은 결국 대단한 것들이 아니다. 남들과 비교하지 말고 자기답게,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이 최선이고, 최고의 삶이라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