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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날 Aug 10. 2024

영화 파일럿, 여자에게는 늦고 남자에게는 빠르다

영화, 파일럿


 말복을 향한 본격적인 무더위가 시작된 날, 최근 개봉한 한국영화 ‘파일럿’(2024)을 보았다. 계속된 무더위에도 에어컨을 틀지 못하고 소리 없이 돌아가는 선풍기로 버텼다. 하지만 평창 대관령음악제를 다녀온 이후 실내온도가 33도가 넘어가자 근검절약하는 생활이 몸에 배어 에어컨 돌아가는 소리가 싫다는 아내는 오후 3시부터 실내온도를 29도에 맞추고 에어컨을 틀어주기 시작했다.



일본 영화 ‘평일 오후 3시의 연인’(2019)의 만남처럼, 이제 그 시간이 되면 자율적으로 에어컨을 틀면서 에어컨을 발명한 캐리어님이 천국에서 평온하게 생활하기를 기도했다. 여름철 더울 땐, 가끔은 집 앞 쇼핑몰에 가서 영화도 보고, 맛있는 것도 먹으면서 무더운 오후시간을 보내는 것도 한여름의 즐거운 일상이다. 작년 여름엔 무려 4일 연속 그렇게 영화를 봤다. 장로(장기적으로 노는 사람)들은 여름이 제일 힘들다.



 오래전 해외출장길에 읽었던 신영복 선생의 편지모음 에세이, ‘감옥으로부터의 사색’(돌베개)이라는 책에서 재소자들에게 제일 힘든 게 여름철이라고 했던 말이 생각났다. 여름철에는 좁은 감옥에서 사람들의 체온 때문에 인간을 증오하게 되는 경험을 하게 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반드시 미운 것보단 짜증이 쉽게 나기 때문일 것이다. 무더운 여름에는 서로 더 많은 배려와 존중의 시간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글로렌스, 용인 에버랜드


 사실 무더위는 물+더위라는 말로 무척 덥다는 줄임말이 아니라 습도가 매우 높은 더위라는 뜻이다. SNS의 뉴스를 둘러보다 새로 개봉한 영화 ‘파일럿’에 대해 명망 있는 이동진 영화 평론가가 ‘호흡이 짧은 드라마에 산발적인 개그다발‘이라는 짧은 평과 함께 5점 만점에 2.5점을 주었다고 했다. 그 평점에 앞서 영화의 플롯이 여장남자라는 진부한 스토리에 대한 선입견 때문에 보고 싶지 않았다


동방생명연수원(산속, 현 삼성생명)


 하지만, 그 영화 ‘파일럿’ 후기 중에 '여자에게는 늦고 남자에게는 빠르다'는 평이 회자되고 있다는 기사를 읽었다. 갑자기 무슨 얘긴가 궁금하기 시작했고 아내에게 그 기사를 전하면서 함께 보러 가지 않겠냐고 동의를 구했다.


 무더운 날씨 탓인지 아내의 취향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좋다고 말했다. 영화 평론가의 평가는 참고만 할 뿐 언제나 결정은 내가 하는 것이니까. 시간부자인 장로는 궁금하면 보고, 읽고, 듣고, 가고, 먹는다. 인간은 지적 호기심을 잃을 때 늙는다.


능소화와 공작새


 항상 작품성이 높은 영화만 볼 수도 없지만, 재미있고 없고, 작품성이 있고 없고의 판단은 나의 취향과 스타일에 따를 뿐이고, 그때그때 달라질 수 있으니까 개념치 않는다. 다행히 영화를 보는 내내 그 영화 평론가의 말처럼 작품성과 몰입도는 낮았지만 계속되는 다발성 개그에 아내가 그렇게 많이 웃는 모습은 근래 처음 봤다. 이유불문, 그래서 영화 ‘파일럿’은 내게 재미있고 유쾌한 영화로 기억될 것이다.



”한국 사회를 담은 건 겉모습뿐이 아니다. 한정우의 아내는 '경단녀(경력단절여성)'로, 바쁜 남편 대신 독박육아를 하고 시어머니의 칠순 잔치 장소까지 알아보고 예약한다. 평소 육아에 소홀한 나머지 아들이 발레에 관심이 많다는 점을 모르는 아빠의 모습까지도 2024년의 한국 사회 현주소 그대로다.”(오마이뉴스)라는 기사에서 알 수 있듯, 영화 ‘파일럿’은 고단한 삶을 살고 있는 우리 청년세대의 고민을 과감 없이 온전한 그대로 담은 코미디이다.



이 영화를 보고 난 후 실제관람객 기준, 남성들의 영화평(남 7.09/여 8.8)은 대체적으로 좋지 않았다.

영화에서 여승무원을 ‘꽃다발’로 비유하는 성희롱의 인식문제와 여성 한정미(조정석)로 겪은 차별에 대한 공감의 정도가 이 영화평을 양극단으로 나눈 게 아닌가 생각했다. 영화 속, 괴로운 한정우는 술에 취해 엄마에게 전화를 걸지만 엄마로부터 ‘쪽팔리게 살지는 말자'라는 대답을 듣는다. 그 대답이 이 영화가 주장하고 싶었던 말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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