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행복의 속도
오래전, 회사생활이 타성에 젖을 때쯤, 일본의 조각가 세키 긴테이의 ‘불량하게 나이 드는 법'(나무생각)이라는 책을 읽었다. 그 책 속의 한 구절, “살아가는 일에 프로는 없습니다. 그래서 프로 같은 얼굴로 살아가는 사람을 믿어서는 안 됩니다. 살아가는 일에는 모두가 아마추어일 뿐입니다. 살아가는 일에서 타성에 빠지지 않는 것은 스스로에게 익숙해지지 않는 것입니다. 마음 깊은 곳에 있는 새로운 자신을 만나려고 하는 행위입니다"라는 글이 나의 마음을 움직였다.
그 글처럼 내가 새로운 자신을 만날 수 있는 방법은 가끔 트레킹을 하면서 사색을 하는 것이다. 몇 년 전, 우연히 박혁지 감독이 연출한 다큐멘터리 영화 ’ 행복의 속도‘(2021)를 봤다. 일본 도쿄에서 100km 멀리 있는 군마현의 오제국립공원에서 10km 정도 떨어진 산장에 해발 1500m의 오제습지로 이어진 나무 목도를 따라 식자재나 음료 70~80kg을 등에 지고 매일 왕복 20km 정도를 나르는 봇카(ぼっか, 짐꾼)들의 삶을 다룬 영화였다.
일본 트레킹을 떠나기 전에 그 영화를 다시 봤다.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거의 매일 그에게 맡겨진 짐을 나르며 아이들을 키우고 생활하는 봇카들의 삶을 소재로 ‘행복의 속도’란 무엇인가 사색해 볼 수 있는 영화였다. 그 영화에서 주인공이었던 어느 봇카가 했던 말 중, 맡겨진 짐을 나르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이 감당할 할 수 있는 만큼 자신의 속도를 지키는 게 관건이라고 말했던 것이 인상적이었다.
반대로, 가장 힘들 때가 맡겨진 짐을 언제까지 시간을 정해놓고 가져다 달라고 부탁받았을 때라고 말했다. 즉, 다른 사람들의 속도에 맞추어 길을 가는 것이 제일 힘들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 오제 트레킹을 나섰던 이유는 그 영화의 제목처럼 행복의 속도와 삶의 의미를 찾는 그레이트 헝거(Great Hunger)는 아니었고, 단지 그 영화 속의 오제습지와 목도길이 궁금했을 뿐이었다. 그리고, 산속 고원에 있어 우리의 봄날 같은 날씨라기에 폭염도 피할 겸 미리 예약해 놓았었다.
사실, 자신의 삶이 불행한 사람은 남들의 삶에 관심이 많지만, 정작 행복한 사람은 남들의 삶에 별 관심이 없다. 그 영화 ’ 행복의 속도‘의 짐꾼 봇카처럼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속도를 유지하며 자신의 삶에 집중하기 때문이다. 그 봇카들 역시 유난히 긴 오제습지의 겨울 때문에 6개월 동안만 짐을 나르고, 11월부터 시작되는 기나긴 겨울을 각자 그들만의 방식으로 봄날을 기다리며 행복하게 생활할 뿐이다. 삶은 하늘이 주신 것이고 행복은 내가 만들어 가는 것이니까.
어쩌면 그 긴 겨울은 거친 숨을 돌리고 다시 그 일터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봇카들의 커렌시아(Querencia, 안식처) 일 것이다. 삶 또한 그저 빨리만 가는 속도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 봇카들처럼 끝까지 무사하게 주어진 짐을 목적지까지 나르는 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인생과 비슷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누가 뭐라 하든 자기만의 삶의 속도와 무게를 지키는 것이 중요한 이유이다. 꽃도 자기 색깔을 스스로 고를 수 없지만, 각자 모두 자기만의 색깔로 빛이 나는 법이다.
박혁지 감독은 이 영화 '행복의 속도‘에서 속도란 반드시 느리고 빠르고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무게나 방향으로 대체될 수 있으며, 매일 같은 길을 걸으며 힘든 짐을 지고 가지만, 단 하루도 똑같은 길이 없음을 이야기하는 봇카 이가라시상의 말에 감명을 받아서 이 영화를 연출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 영화를 통해 각자의 삶의 방향과 무게에 대해 스스로 질문하기를 바란다고 이야기했다. 고통은 나눌 수 없지만 행복은 함께 나눌 수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