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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날 Nov 10. 2024

화살은 심장을 관통하고, 말은 영혼을 관통한다

좋은 말/예쁜 말


 가을이 오고 찬바람이 불면서 아내와 함께 여행사를 이용할 일이 생겼다. 출발 하루 전인데 안내문자가 없었다. 매사 정확한 것을 좋아하는 아내는 내게 재차 확인해 보라는 주문을 했다. 급기야 여행사에 두 번, 세 번째 전화를 했다. 하지만, 죄송하다며, 또 똑같은 변명을 하길래 언성이 높아지고 말았다.


그 순간, 나이 먹고 이건 아닌데 하고 후회했지만 이미 쏜살일 뿐이었다. 옆에 있던 아내가 갑자기 내게 어른으로서 부끄럽지 않느냐며 질책했다. 여행시즌이니 여행사 담당자도 너무 바쁠 것 아니냐며 이해는 못해줄망정 나이 어린 사람에게 왜 언성을 높였냐며 나를 책망했다.


제주올레걷기축제(월령선인장군락지)


 한편, 거듭 재촉한 건 아내였기에 억울했지만 항변하지 않고 현명한 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아내와 늙으면 아무것도 필요 없고, 그저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귀여운 노인’으로 늙는 것 밖에 답이 없다고 다짐했던 일이 있었다.


자존심의 꽃이 떨어져야 인격의 열매를 맺을 수 있다. 하지만, 이번 일로 그동안의 노력이 물거품이 되었다. 어찌 보면 그동안 아내가 누름돌 역할을 잘 해준 덕분에 그나마 인간답게 사는 것은 아닌지, 많이 반성했다.



누름돌


어쩌다 강가에 나갈 때면 어머니는

모나지 않은 고운 돌을 골라 정성껏 씻어 오셨다 


김치의 숨을 죽여 맛을 우려낼 누름돌이다

산밭에서 돌아와 늦은 저녁 보리쌀을 갈아낼 확돌이다 


밤낮 없는 어머니 손 때가 묻어 반질반질한

돌멩이들이 어두운 부엌에서 반짝였다


그런 누름돌 한 개 있어 오늘 같은 날

마음 꾹꾹 눌러 놓으면 좋으련만

난 여직 그런 누름돌 하나 갖질 못했구나.

 

김인호


길 위의 음악회(블리스 앙상블)


 문득, 트윗에서 읽은 글이 생각났다. “여자도 살다가 힘이 들 때면 지갑에 있는 남편 사진을 꺼내 봅니다. 내가 이것도 사람 만들었는데 세상에 못할 일이 어디 있겠나 “하고 자신감을 갖는다는 글이었다. 아내 입장에서 보면 나 또한 그런 남편이 아니었을까

스스로를 돌아보았다.


분명한 것은 그동안 값나가게 살진 못했어도 아내 덕분에 후지게 살진 않았다는 것이다. 아내는 어릴 때 부모님으로부터 좋은 말 대신 예쁜 말을 많이 듣고 자랐음이 틀림없다. 말을 예쁘게 한다는 것은 생각이 예쁘다는 뜻이니까.


제주올레 14코스


 언젠가 아내가 트윗에서 읽었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어떤 사람이 어릴 때 부모로부터 좋은 말을 많이 듣고 자란 탓에 오히려 불안이 생겼다는 이야기였다. 그 사람이 어릴 때 그의 어머니는 매일 그에게 좋은 말을 너무 많이 했다고 말했다.


“좋은 말로 할 때, 밥 먹어”, “좋은 말로 할 때, 씻어”, “좋은 말로 할 때, 공부해”등등. 이 이야기처럼 지금 이 순간에도 아이를 존중하기보단 좋은 말을 너무 많이 사용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감귤밭


 인간은 태도가 본질이고, 겉으로 드러난 태도의 기본은 인사를 잘하는 것과 말을 예쁘게 하는 것이다. 어디선가 읽었던 글 중에 다음과 같은 글이 있었다.

"말을 꺼내기 전에 그 단어들이 세 개의 문을 거치도록 하라. 그 말이 사실인가? 꼭 해야 되는 말인가? 친절함이 있는가? “ 인간은 생각하는 것이 적으면 그만큼 더 떠들게 되는 법이다.


 사회생활을 마친 후, 한동안 말이 하기 싫어 미리 정해진 모임이 아니면 사람들을 만나지 않았다. 또한 사람 목소리가 듣기 싫어 클래식만 들었다. 그동안 예의 그 사회성이라는 이름으로 쓸데없는 말을 너무 많이 하고 살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또 모임에 가면 잘 놀고 집에 돌아와 후회하길 반복했다.


협재해수욕장길


 지난날, 열정이 넘쳐서 그저 포옹이 필요한 사람에게 쓸데없는 훈계질이나 하지 않았는지 가끔 후회될 때가 있다. 또한, 은연중에 가르치려 드는 것을 소통이라고 착각하는 꼰대짓을 하진 않았는지 뒤돌아 볼 때가 있다. 화살은 심장을 관통하고, 말은 영혼을 관통한다는 말이 있다.


 혹시, 누군가 그런 일을 겪었다면 그 선의를 헤아리고 너그럽게 용서해 주길 바란다. 묵언하심(默言下心), 소설가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말을 배우는 데는 2년이 걸리지만, 침묵을 배우는 데는 평생이 걸린다 “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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