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 관리
어느 날 십 년 동안 아무 소식이 없던 지인으로부터 아들이 장가를 간다는 모바일 청첩장이 왔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무엇을 하고 살아왔는지 아무도 것도 모른다. 특별한 도움을 준 기억도 없고 특별히 신세를 진 기억도 없는 함께 어울려 아는 지인일 뿐이다.
사회생활을 오래 하다 보면 이런 애매한 경우가 점점 많아진다. 그냥 모른 척하자니 찝찝하고 축의금을 보내자니 생뚱맞다. 부의금을 보내야 할 경우는 더 많아진다. 요즘은 코로나 때문에 조문이 어려운 분을 위해 배려한다며 문자나 카톡에 친절하게도 계좌번호까지 안내한다. 심지어 해외출장이나 여행 중에도 카톡이 울려 깨어보면 부고인 경우가 많다. 해외 로밍 음성안내서비스를 해도 소용이 없다. 모바일 간편 결재 앱을 이용해 축의금이나 부의금을 보내고 다시 잠든다.
언젠가 축의금과 부의금 문제로 얘기를 하던 중 후배가 공감하면서 자신의 기준이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면서 얘기를 해주었다. 후배의 기준은 학창 시절의 친구들은 예외로 하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만난 지인들의 경우에는 최근 7년 동안 한 번이라도 만난 적이 있는 지인이나 최근 5년 동안 문자나 카톡으로 한 번이라도 안부를 나눈 지인들에게만 축의금과 부의금을 보내거나 조문을 한다는 것이다. 나름 일리가 있는 것 같아 몇번 따라 해 보긴 했지만 그때그때 애매한 경우가 많아서 흐지부지 되고 말았다. 관계 관리는 자연 과학이 아니고 사회과학이라 절대적인 정답은 없고 케바케, 상대에 대한 존중과 진정성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생활하면서 갈까 말까 할 땐 가는 것이 맞고, 살까 말까 망설일 땐 사는 것이 맞는 경우가 많았다. 해외 출장 중 시간을 내서 시내를 둘러보다 보면 마음에 드는 상품을 발견할 때가 있다. 하지만 가격이 너무 비싸서, 이미 가지고 있는 건데 또 산다는 게 합리적 소비가 아닌 것 같아서 구매하지 않고 발길을 돌려 본 경험이 누구나 있을 것이다. 귀국 편 비행기를 타는 순간 아니, 공항 체크인 카운터를 통과하는 순간부터 후회 막급일 때가 많다. 사람이나 일, 물건은 소중한 기회와 인연이 닿는 경우가 그리 흔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고 모든 인연을 다 챙길 필요도 없고 그래서도 안된다.
살면서 가끔은 어떤 일, 또는 선택에 있어 어떻게 해야 할지 망설여질 때가 많다. 연애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사귀고 있는 사람과 결혼을 할까 말까 하고 확신이 없으면 하지 않는 것이 맞다. 해외여행 가서 마음에 드는 물건을 살까 말까 할 때는 사는 게 후회를 안 한다. 누구에게 사과를 할까 말까 망설여질 때는 그 사과는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조문을 갈까 말까 망설여질 때는 조문을 다녀오는 것이 맞다. 삶에 반드시 정답은 없지만, 어떤 일에 있어 망설여질 때는 사실 대개 스스로 그 정답은 이미 알고 있지만, 이런 저런 이유로 망설여 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미련, 욕심, 남의 시선, 게으름, 이해관계 등으로 인해 자기 합리화를 하고 정반대의 선택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러면 반드시 후회하게 된다. 사회적 인간으로 생활하는 우리는 언제나 마음 가는 대로 사는 것이 꼭 정답은 아니기 때문이다. 마음은 철없는 아이들처럼 수시로 변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한다. 마음이 일어나는 것을 차분하게 살펴보고 바라보면서 철없는 아이들을 놀이터에서 지켜보는 엄마처럼 그 마음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 물론, 처음 살아보는 인생사, 그때그때 쉽지는 않지만 자꾸 자꾸 연습해야 한다. 내 마음의 주인이기를 포기해서는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