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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저녁과 겨울과 노년이 평온해야 한다

진부함

by 봄날


저녁 뉴스를 보다가 매관매직 혐의로 특검에 출석하는 모 피의자를 보았다. 지난 불법 비상계엄 이후 몇 달 전에 구성된 3대 특검의 활동결과, 속속 드러나고 있는 그 실체적 진실을 뉴스를 통해보면서 그동안 나라가 망해가고 있었다는 것을 실감했다.


또한 특검이 구성되고 두 달 조금 넘는 기간이었지만 매관매직등, 너무 많은 범죄 사실이 계속 드러남에 따라 이제 조금 피로감이 생길 정도지만 역사적 진실을 밝히려고 휴일을 반납하고 수사를 하는 사람들의 노고를 생각하면 배부른 소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저녁 뉴스에서는 피의자들이 늘 멀쩡하게 있다가도 소환조사에 예의 그 휠체어를 타고 나타나는 광경을 보고 실소를 금치 못했다. 그런 모습은 이미 많은 기업인 및 정치인들의 소환 모습과 함께 꾀병으로 합리적 의심이 들 수밖에 없는 진부한 모습이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는 특검 소환을 앞두고 ‘아무것도 아닌 사람’도 멀쩡히 대형 병원에 걸어 들어가서 입원하고, 며칠 후 휠체어를 타고 퇴원해서 그 유명 병원의 신뢰도를 하락시켰다. 30대까지는 생긴 대로 놀고, 40대부터는 논대로 생긴다는 속설이 일리가 있을 때가 있다.



어디 그뿐인가. 그 뉴스에 따르면 모 종교단체를 이끄는 모 총재는 불법정치자금공여 혐의로 특검 소환을 받자 얼마 전에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입원했던 그 병원에 갑자기 입원을 타진했으나 지난 여론 때문에 거절당했다고 했는데, 최근 뉴스에선 결국 그 병원의 특실에 입원했다는 소식이 있었다.


이제 세계적인 문화강국의 위상에 맞게 그런 진부한 모습 말고, 좀 더 창의성 있는 소환모습이 새로 개발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어느 여배우가 사랑했던 그 감독의 부인 전화를 받고 ”남편 관리 잘하시지 그러셨어요? “라고 말했을 때, 그 부인이 “얘, 어디서 그런 진부한 대사를 읊고 있니?”라고 했다는 세간의 이야기가 있다.


흙토담골, 경기도 퇴촌


지금 K-문화가 세계를 평정하고 최근엔 케데헌(케이팝데몬헌터스)이 넷플릭스 역사상 세계최고의 뷰를 자랑했던 ‘오징어게임’을 누르고 벌써 2.7억만 뷰를 기록했다. 외국에선 어린아이부터 어른까지, 그 창조적인 한국의 과거와 현대, 서울의 남산타워와 궁궐 및 성곽이 공존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전 세계 시청자들을 매료시키고 있다. 그 덕분에 거기에 나오는 호랑이캐릭터(더피)등, 그 굿즈와 실물을 보겠다고 국립중앙박물관의 외국인 관람객이 차고 넘친다.



그런 한국 문화의 창조성은 어디 가고 몇십 년째 그따위 진부한 소환모습을 보이는지 모르겠다. 범죄의 사실 여부를 떠나 너무 부끄럽고 자존심 상하는 일이 아닌가. 그 정도 용기가 없으면 차라리 조용하게 잘 먹고 잘 살면 되지 않나 묻고 싶다.


더 기함을 한 모습은 그 매관매직에 관련된 당사자는 멋진 슈트를 입고 한 손에는 플라스틱 빨대가 꼽힌 테이크아웃 투명음료컵을 들고 특검에 출석했다. 그게 멋있어 보인다고 생각해서 그러는 걸까, 아니면 그만큼 당당하다는 걸 보여주려고 그러는 걸까.



최근에 사면을 받고 출소한 모장관이 몇 년 전 아침 출근할 때마다 슈트에 백팩을 메고 한 손엔 커피용 텀블러를 들고 출근하는 모습이 상당히 멋져 보이긴 했었다. 물론 그 후임 장관 역시 멋진 슈트를 입고 테이크아웃 커피컵을 들고 청사로 출근하곤 했다.


하지만, 커피용 텀블러야 자신의 취향인 커피를 집에서 내려 들고 출근할 수 있지만, 집에서 차량을 타고 출근하는데 텀블러가 아닌 테이크아웃 커피컵을 들고 출근하는 것은 조금 납득하기 어려웠지만 굳이 뭐 그리하려면 못할 것은 없었다.



슈트에 백팩을 메고, 음료컵을 들고 MZ세대를 흉내 내는 것처럼 보였지만, 오히려 그런 트렌드의 수용성에 높은 점수를 줄만했다. 변화는 발전이니까. 패션에서 가장 중요한 옷 입기의 기본은 T.P.O, 즉 때(TIME)와 장소(PLACE), 그리고 경우(OCCASION)에 맞게 옷을 입는 것이다.


옷은 멋있게 입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누군가의 초대에 응한다거나, 조문을 가거나, 아니면 드레스코드가 있는 파티 또는 그 계절과 날씨등에 알맞게 입어야 하는 것이다. 물론 옷이 사람을 돋보이게 해야지, 그 옷이 사람을 지배해서는 안 된다. 즉, 옷밖에 안 보인다는 뜻이다.



특검에 소환받는 사람이 슈트는 문제가 아니지만 그 많은 카메라기자가 지켜보는 가운데 그가 슈트차림에 테이크아웃 음료컵을 들고 출두하는 진부한 모습은 창의적이지도 않지만, 때와 장소, 경우에 맞지 않는 것이라 너무 생경한 모습이었다.


그 모습이 특별한 이유가 있다한들 좋은 모습도 아니고 과유불급이다. 누구라도 옷 입는 것이 촌스러운 것은 용서가 되지만, 마인드가 촌스러운 것은 용서가 안된다. 아무튼, 인간은 저녁과 겨울과 노년이 평온해야 하는데 잘 견뎌내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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